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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길 <72> 사천 ‘김동리 학원 가던 길’

다솔사 편백숲·곤양천 둑길 … 김동리 문학의 뿌리가 된 20리

  • 이완용 기자 wylee@kookje.co.kr
  •  |   입력 : 2019-06-23 18:44:28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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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청년 김동리, 형 김범부따라
- 독립운동의 거점 다솔사서 기거
- 만해 한용운 선생 주례로 결혼도

- ‘광명학원’ 교사로 한글 가르치러
- 매일 봉계마을까지 6년여간 왕복
- 소설 ‘등신불’ ‘황토기’ 바탕 돼

경남 사천시 곤명면 다솔사는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만해 한용운, 주지 최범술, 한학자 김범부 선생 등이 독립운동을 도모했던 역사를 지닌 사찰이다. 특히 김범부 선생의 동생이자 소설가로 나중에 예술원 회장을 지낸 김동리 선생이 20대의 젊은 나이에 10여 년을 기거하며 사설 학교 교사를 했던 곳이다.
   
다솔사 초입 편백숲에 설치된 보행 덱. 편백과 아름드리 소나무가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울창하게 자라나 청량감을 준다.
다솔사에 있을 때 김동리 선생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다. 등단은 했지만 일이 없는 그에게 교사라는 직업이 생겼다. 또 이곳에서 만해 한용운 선생의 주례로 소학교 교사인 김월계 씨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으며 소설도 꾸준히 발표했다. 소설 ’‘등신불’의 영감도 이곳에서 만해 선생과 형님 김범부의 대화에서 얻었다.

김동리 선생은 숙소인 다솔사 안심료에서 광명학원이 있는 봉계마을까지 10리 길(4㎞)을 걸어 다녔다. 1937년 다솔사 주지 최범술 선생이 설립했다가 일제가 ‘기미가요’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1942년 강제로 폐교할 때까지 6년 여를 다녔다.

■등신불 영감 얻은 다솔사에서

   
사천시는 스토리텔링으로 이런 역사적 소재가 있는 길을 꾸몄다. 곤명면 체육회도 ‘김동리 학원 가던 길’로 정하고 5년 전부터 해마다 걷기 행사를 하고 있고, 지역주민은 풀베기와 주변 청소 등을 하며 손님을 맞는다. 지난 15일에도 450여 명의 주민이 참가한 걷기 행사를 열어 성황을 이뤘다.

다솔사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우선 김동리의 숙소가 있던 안심료를 찾았다. 4칸의 한옥인 안심료는 초막 같은 분위기다. 낮은 마루에 4개의 방문이 깔끔하게 줄지어 서 있다. 누가 어느 방에서 언제까지 거처했는지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오른쪽 맨 방이 김동리의 방으로 알려졌다. 주차장에서 올라왔던 길 사이로 내려가면 인근에 묘를 쓰지 못하도록 한 ‘어금혈봉표’라는 문구가 새겨진 바위를 만난다. 편백과 아름드리 소나무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자란 다솔사 입구는 언제 찾아도 시원하다. 깨끗하게 정비된 약수터 물은 찻물로 사용하면 좋다며 인근 주민들이 줄을 서서 받아간다. 기념품 가게나 음식점, 찻집 등이 드문드문 들어서 있다.

다솔사 주차장에서 여기까지 1㎞ 가량은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2차로인 아스팔트 도로이긴 하지만 차량통행이 적고 주변의 농촌풍경이 아름답다. 그러나 다솔사 초입인 신산마을에서 광명학원이 있는 봉계마을까지 3㎞는 다르다. 같은 2차로이지만 남해나 하동 진교 방향에서 진주 쪽으로 운행하는 차량이나 진주에서 하동 옥종이나 북천면 지역을 운행하는 자동차가 모두 이곳을 통과하기 때문에 교통량이 많은 편이다. 여기에다 요즘 같은 농번기에는 농기계도 많이 다니는데도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는 인도가 없어 불편하다. 그러나 김동리 선생이 6년 여를 다녔던 길이었기에 길을 따라 김동리가 돼 보는 것도 괜찮다.

■6년여를 다녔던 광명학원

광명학원 터는 경전선 철도 폐도부지 바로 옆인 봉계리 산 44쯤 된다. 곤명파출소 뒤쪽으로 30여 m만 올라가면 나온다. 밭으로 일궈 놓았으나 채소나 곡식을 심는 데 어려움이 있는지 꽃나무를 심었다. 이 광명학원은 사설 교육기관이지만 배우는 학생이 일제가 세운 인근의 소학교보다 많아 눈엣가시였다. 그러다가 일본국가인 ‘기미가요’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1942년 폐교됐다. 김동리는 낮에는 50여 명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밤에는 20여 명의 젊은이를 상대로 한글과 가감승제(산수) 등을 가르쳤다. ‘등신불’이나 ‘황토기’ 등의 대표작도 이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완성했다고 한다. 그 뒤 일제에 의해 광명학원이 폐쇄되고 김범부 선생이 경찰에 구속되자 절필을 선언했다. 이후 사천읍에서 양곡 배달을 하며 생활하다 해방이 되자 이듬해 서울로 갔다.

■호젓하고 편안한 둑길

   
경남 사천시 곤명면에서 열린 김동리 학원 가던 길 걷기 행사에서 주민 450여 명이 곤양천 둑길을 걷고 있다.
광명학원 터를 둘러봤다면 이번에는 다솔사까지 곤양천 둑길을 걸어보자. 곤명농협 앞에서 둑길을 내려가면 운치가 그만이다. 햇빛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이 없어 여름에는 걷기에 어려움이 있지만 봄에는 둑 오른쪽의 매화나무가 길손을 반기고 여름에는 왼쪽의 곤양천이 시원함을 더해준다. 500m를 걷다 보면 하천 건너에 100m도 더 되는 낭떠러지가 삼국지에 나오는 ‘적벽’을 연상시킬 정도로 우뚝하다. 300m를 더 가다가 머간마을 앞 오천교를 만나면 다리를 건너 반대편 둑길을 걸어야 한다. 같은 방향으로는 둑길이 이어지지 않아 낭패를 겪는다. 머간마을 끝에서 조장마을까지 900m는 마을 사람도 잘 다니지 않을 정도로 호젓하다. 길가의 풀이 키만큼 자라기도 해 긁히거나 상처가 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조장마을에서 다시 다리를 건너 평촌마을 입구의 평촌교까지 1.3㎞를 내려갔다가 추동마을 앞 들판을 지나 다솔사로 돌아가면 된다. 왕복 8㎞를 천천히 구경하며 걷다 보면 3시간30분가량 걸린다.

곤명면 부면장 조수옥 씨는 “우리 문학계의 큰 어른인 김동리 선생이 청년기를 보냈던 길이여서 문학적 감성을 되살리는 산책길로 만들어 가고 있다”며 “다솔사 명상길과 함께 사천 최고의 걷고 싶은 길이 될 수 있도록 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완용 기자 wyle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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