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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을 보행친화 도시로 <26> 사상 하강·상강선대길

고가다리 아래엔 꽃·나무들 세상 … 잿빛 공장지대의 변신

  • 오광수 기자 inmin@kookje.co.kr
  •  |   입력 : 2019-06-27 18:42:59
  •  |   본지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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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서 손 꼽히던 공장밀집지역
- 이주노동자 다문화 특화거리서
- 사상로 향하는 구간 보행로 없어

- 낙동강 제방 축조 전 포구였던
- 덕포동 들어서니 할배·할매당산
- 매년 음력 12월1일 제사 지내와

- 삼락천 사상생활사박물관엔
- 하동보다 유명했던 재첩 등
- 이곳 사람들 생업 등 흔적 전시

부산도시철도를 타고 사상역에 내리면 한마디로 복잡하다. 경전철 사상역으로 가는 길도 너무 멀다. 그러다가 3번 출구로 나온 뒤 뜻밖의 풍경과 만났다. 반전이었다.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경전철 괘법르네시떼역으로, 삼락생태공원으로 향하는 길. 경전철 고가구간 아래에 꽃과 나무들의 세상이 펼쳐졌다. 천수국, 꽃 베고니아, 샐비어, 창포, 느티나무…. 노랑과 빨강의 꽃들이 무미건조할 것 같은 도시의 교각 아래 풍경을 바꿔놓았다. ‘당신, 참 애썼다. 토닥토닥’ 등의 팻말도 화단 곳곳에 보인다.
   
부산 사상광장로 공원. 애초 부산김해경전철 고가다리 아래 콘크리트 공간이었으나 백양산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녹지 축인 가로공원으로 거듭났다. 김성효 전문기자 kimsh@kookje.co.kr
■ “더는 회색지대가 아니다”

사상은 오랜 기간 부산에서 손꼽히는 공장지대였다. 지금도 그렇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주노동자가 사상에 많이 산다. 서부버스터미널에서 삼락생태공원 쪽으로 향하다 보면 하이마트와 이마트 사이 골목으로 ‘다문화 특화거리’가 있다. 이곳에는 크고 작은 ‘아시안 마트’와 식당이 모여 있다. 베트남 인도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등의 현지 음식을 내놓는 식당과 할랄 식품 등을 파는 가게들이다. 그 사이에 다문화나눔터도 있는데, 이주 노동자 등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낯선 한국 생활에 적응하도록 돕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곳이다.

   
다문화 특화거리를 지나 괘법LH아파트 단지 끝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꺾는다. 사상로로 향하는 이 구간에는 보행로가 없다. 길 좌우로 주정차 금지선만 선명하게 보일 뿐이다. 사상로에 닿으면 사상시장 쪽으로 건넌 뒤 다시 덕포파출소 맞은편 횡단보도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서 간다. 사상초등학교로 가는 길이다.

사상초등학교의 옛 이름은 1910년 문을 연 사립 명진학교. 지역 유지들이 신학문 교육을 통한 구국운동의 하나로 세웠다. 이를 기념해 교문에 세운 돌기둥이 ‘명진학교 석주’다. 애초 교문 양쪽에 하나씩 2기를 세웠는데, 하나는 없어졌다. 남은 돌기둥 하나도 ‘사립명진학교(私立明進學校)’ 가운데 ‘사(私)’ 자는 깨어져 보이지 않는다. 마을의 개울에 걸쳐진 디딤돌로 쓰이다가 뒤늦게 발견돼 1986년 지금의 사상초등학교 본관 앞 화단으로 옮겨졌다. 사상초등학교는 한때 100학급에 6000명이 넘는 학생이 다닌 적도 있는데, 훗날 학장·모라·감전·삼덕·괘법·덕포초등학교 등 6개 학교가 여기서 분리돼 나갔다. 사상지역 초등학교의 ‘종가’인 셈이다.

사상초등학교 교문을 나서 왼쪽으로 돌아간다. 사상로에 도착하기 직전 하강선대(下降仙臺)가 있다. ‘하강선대 어울림 공원’으로 꾸몄지만, 민원이 제기되면서 공원은 일시 폐쇄돼 있다. 이곳에서 사상로를 따라가면 덕포시장 맞은편에 ‘덕포동 바위언덕’이, 여기서 더 올라가면 도시철도 덕포역 옆에 상강선대(上降仙臺)가 있다.

■ 추억 샘 솟는 “재첩국 사이소”

덕포동에는 예부터 주민들이 풍요와 평안을 빌던 당산이 2개 있는데, 하강선대의 것을 할매 당산으로, 상강선대에 있는 것은 할배 당산으로 부른다. 매년 음력 12월 1일 신선이 내려와 목욕하며 쉬어 갔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여기서 ‘상·하’는 옛 덕포 마을의 상리와 하리에서 비롯됐다. 상리 사람들은 할배 당산에서, 하리 주민들은 할매 당산에서 각각 제사를 지냈다.

두 강선대와 바위언덕을 낀 덕포(德浦)는 낙동강 제방을 쌓기 전까지 배가 드나들던 포구였다. 덕포의 옛 이름은 ‘덕개’로, 이는 ‘언덕이 있는 포구’라는 뜻이다. 강선대와 바위언덕 주변에는 마을이 형성됐고 주민들은 어업과 농업을 생업으로 삼았다. 덕포동 바위언덕은 커다란 암반으로, 예전에는 소나무와 팽나무 등이 숲을 이뤘다.

바위언덕에서 ‘복이 있는 덕포시장’으로 건너간다. 이곳에도 ‘아시안 마트’가 있다. 베트남 쌀국수와 채소를 비롯해 ‘느억맘’이란 생선 발효 액젓 등을 판다. 시장을 빠져나오니 삼락천이다. 삼락천 19호교 건너편으로 아담하고 예쁜 건물이 서 있다. 사상생활사박물관이다. 낙동강과 함께 살아온 사상 사람들의 역사와 생업 등을 만나는 공간이다. 전시공간에 ‘재첩동이 이고 가는 장삿길’이 눈에 띈다. 지금은 재첩이라면 ‘하동 재첩’을 떠올리지만, 과거 재첩의 본고장은 부산이었다. 낙동강 하구인 사상구 엄궁·감전·삼락동에서 재첩이 많이 났다. 이곳의 아낙들은 밤새 끓인 재첩국을 양철통에 담아 머리에 이고 구덕령을 넘어 대신동으로, 대티고개를 넘어 부민·아미동으로 가 팔았다. 이들이 외쳤던 “재첩국 사이소”는 아침을 깨우는 소리였다. 괴정동과 동아대 구덕캠퍼스를 잇는 대티터널 윗고개는 그래서 ‘재첩 고개’로 불렸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삼락생태공원으로 넘어가 천천히 둘러보는 것도 좋다.

오광수 기자 inmin@kookje.co.kr

※공동기획:부산시·국제신문·(사)걷고싶은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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