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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을 보행친화 도시로 <27> 대저 근대문화 유산길

곳곳에 일본식 건축물… 일제강점기 수탈의 역사 대변

  • 오광수 기자 inmin@kookje.co.kr
  •  |   입력 : 2019-07-11 19:17:52
  •  |   본지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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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토지 약탈위해 日농민 이주
- ‘악명’ 높은 대저수리조합 세워
- 한국인 동원해 낙동강 제방공사
- 곡창지대인 김해평야도 만들어
- 해방 후 농민들이 조합 비문 쪼아

- 당시엔 ‘대저 배’ 전국적 유명세
- 공황로 일대 일본식 가옥마다
- 배 보관했던 창고 갖춰져 있어

부산도시철도 3호선 강서구청역에서 내린다. 강서문화원을 나서자마자 만나는 도로에서 오른쪽 낙동강 쪽으로 꺾어 걷다 보면 ‘강서도시재생열린지원센터’(도시재생센터) 건물이 서 있다. 이번 ‘대저 근대문화 유산길’을 압축해서 설명하는 공간이다.
   
부산 강서구 대저동 부산 강서고교 뒤편 일본식 가옥. 지붕과 창호 등 원형이 잘 보존돼 2012년 근대건조물로 지정됐다. 김종진 기자 kjj1761@kookje.co.kr
도시재생센터는 원래 ‘대저수리조합’이었다. 간판만 바뀌었을 뿐 일본식 건물 양식은 그대로다. 도시재생센터 건물 앞 ‘대저수리공사기념비’ 앞면을 보면 ‘경상남도’라는 글자 외에 나머지는 훼손돼 읽을 수 없다. 취재에 동행한 최원준 시인은 “일제강점기 대저수리조합의 악명이 높았다. 해방 후 성난 농민들이 비문을 쪼아서 훼손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 대저수리조합와‘대저 배’ 사연

   
옛 대저수리조합 건물(위)과 부산시농업기술센터 근처 일본식 가옥.
조선이 자주권을 잃은 1905년부터 일본인들은 대저동 일대 낙동강 삼각주를 점유하기 시작했다. 일제는 1908년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설립한 뒤 조선의 토지 약탈을 위해 일본 농민에게 이민을 장려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이어 1916년 대저수리조합을 세워 낙동강에 제방을 쌓고 곳곳에 배수로를 놓았다. 김해평야 시대의 시작이다. 오직 이민 온 일본인 농민을 위해서였다. 1934년 서낙동강에 대저·녹산수문이 생긴 뒤 거대한 곡창지대가 들어섰다.

일제강점기 대저동 일대는 ‘배 농사’로도 유명했다. 당시 ‘대저 배’는 구포장에 모아졌다가 일명 ‘구포 배’로 전국에 팔려나갔다. ‘대저 배’는 추석 전 수확하는 것과 겨울에 저장해 이듬해 출하하는 품종으로 나뉘었는데, 월동 배는 과육이 단단해도 달고 아삭아삭한 식감이 좋았다고 한다. 대저동 일본식 가옥들의 ‘배 창고’는 월동 배를 저장하던 곳이다.

도시재생센터 앞 ‘금수현 음악의거리’는 신장로(新長路)다. 지도상에는 대저로. 1933년 강서구 대저동과 북구 구포동을 잇는, 동양에서 가장 긴 구포다리(1060m)가 건설되면서 이 다리와 연결된 ‘신장로’도 깔렸다. ‘새길이 생겼다’는 뜻의 ‘신작로(新作路)’로 불리다가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김해평야, 수리조합, 구포다리와 구포역…. 일제의 토지 수탈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길은 이어진다. 공항로 대동사거리 ‘으뜸마을’ 표지석에서 왼쪽으로 돌아 부산시농업기술센터를 지난 뒤 더 걸어가 ‘공항로 1309번길’로 접어든다. 공항로 1309번길 17에 일본식 가옥이 자리 잡고 있다. 지붕 위에 지붕을 얹은, 전형적인 일본식 ‘중층 지붕’이다. 기와지붕의 가로 선이 부드럽게 휘어진 우리나라 기와집과 달리 일자형이다. 창문 밖에 두꺼운 널빤지를 덧댄 ‘눈썹 창’과 비늘 모양의 벽이 있다. 다다미방인 안방에서 밖을 내다볼 수 있는 둥근달 모양의 ‘월창(月窓)’을 갖췄다. 집 마당에는 월동 배를 보관했던 ‘배 창고’가 있다. 창고 뒤편은 원래 배 농장이었다고 한다.

■ 일본식 가옥, 왜 이렇게 많을까

“수령 100년이 넘은 소나무와 향나무, 대밭이 있는 곳은 일본식 가옥이 있었거나 있는 곳이라고 보면 돼요.” 공항로 1309번길 82의 일본식 가옥을 보러 가는 길에 최원준 시인이 설명했다. ‘82’ 가옥 역시 향나무 등으로 정원을 잘 가꿔 놓았다. ‘82’ 가옥에서 부산 강서고교 쪽 골목으로 접어들면 근대건조물로 지정된 ‘양덕운 씨 가옥’(공항로 1309번길 96-15)이 있다. 1930년 일본인 농민이 지은 목조 건물로, 소나무와 오솔길이 있는 정원은 압권이다. 일본식 팔작지붕과 창호 등의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이 집 역시 뒤편에 배 창고가 있는데, 창고 위에 집을 지은 형식이 독특하다.

부산 강서고 정문, 대상초등학교 후문을 지나 대저1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오른쪽으로 꺾는다. 남해고속도로 굴다리(출두교) 3개와 통일무궁화공원을 지난 뒤 미래자원 맞은편 마을버스 정류소에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이동철 호흡법 클리닉’ ‘한국무궁화연구원’이란 간판이 나란히 붙어 있는 일본식 가옥이 있다. 예전에는 노송 몇 그루가 있는 일본식 정원을 유지했지만, 지금은 그 자리에 무궁화 화단이 조성돼 있다. 가옥의 원형은 비교적 잘 보존돼 있는데, 이 집의 뒤쪽 역시 배 농장이었다고 한다. 이곳도 무궁화 농원으로 바뀌었다.

길을 되돌아가 신촌수문을 왼쪽으로 끼고 직진한다. 가는 길에 일명 ‘도단집’으로 불리는 일본식 함석집(박홍목 씨 가옥)이 있는데, 이곳도 배 창고를 갖추고 있다. 다시 길을 재촉하다가 공항로에 닿기 직전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우회전한다. 이어 남해고속도로 굴다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아름드리 노송들이 있는 일본식 목조 가옥과 만난다. 1926년 일본인 농민이 지은 ‘낙동강 칠백리 식당’으로, 근대건조물로 지정돼 있다. 1991년 주택에서 일반음식점 용도로 바꿨다. 현재 음식점은 인근에 새로 지은 건물로 옮겼다. 정원에 웃자란 풀에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대저 배’를 보는 듯하다.
   

오광수 기자 inmin@kookje.co.kr

※공동기획:부산시·국제신문·(사)걷고싶은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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