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라시대 때부터 동래온천 기록
- 1930년대 들어 대중적 관광지로
- 당시 유명했던 여관인 봉래관
- 동래관광호텔 거쳐 농심호텔로
- 도심 속 쉼터인 금강공원엔
- 이주홍·최계락·이영도 등
- 부산 대표 작가들 시비·문학비
부산도시철도 1호선 온천장역에서 내린 뒤 중앙대로 건너편 홈플러스를 지나 허심청으로 향한다. 이 구간에는 보행로가 없다. 허심청과 호텔농심 사잇길 왼쪽으로 꺾어가면 ‘스파 백학가든’이 있다. 우리나라 공중목욕탕의 대표 주자 동래 온천과의 만남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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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동래구 온천1동 동래별장. 이곳에 100여 년 전 동래 온천의 목욕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돌탕이 있는데, 건물 외관은 일본식 건축 양식이 돋보인다. 김성효 전문기자 kimsh@kookje.co.kr |
동래 온천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신라 신문왕 3년(683년) ‘재상 충원공이 동래 온천에서 목욕했다’(삼국유사 권3)는 내용이다. 고려시대에는 이규보 등 당대 유명 문인들이 동래 온천을 다녀갔고, 1459년(세조 5) 태종 이방원의 장남이자 세종대왕의 형인 양녕대군이 동래 온천으로 떠나려고 하자 세조가 경상도 등 여러 도의 관찰사들에게 후하게 대접하고 잔치도 베풀라고 지시한 기록이 있다.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가르침을 받은 유학자 한강 정구 선생이 1617년(광해군 9) 신병치료 차 많은 제자와 함께 30일간 동래 온천에 머물렀던 ‘사건’도 있었다. 당시 경상감사 윤훤이 정구 선생 일행을 직접 영접했고, 동래부사 황여일은 일행이 많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임시가옥을 추가로 짓는 등 온갖 편의를 제공했다.
■ 동래별장, 근현대사 아픔 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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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천장 스파윤슬길 조형물. |
1930년대 동래 온천은 특권층뿐만 아니라 일반 서민도 즐겨 찾는 대중적인 관광지가 된다. 전차 운행 등 교통수단이 정비되자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여관과 공중목욕탕이 늘어났다. 이 무렵 온천장을 대표했던 여관은 봉래관인데, 넓은 정원에 낚시와 뱃놀이를 즐기던 인공연못까지 갖췄다. 이후 동래관광호텔로 바뀌었다가 1985년 ㈜농심이 호텔을 인수하면서 지금의 호텔농심이 됐다.
호텔농심에서 온천장교차로 쪽으로 가는 길에 ‘할아버지상’이 있다. 유럽 신사풍 모자를 쓴 한복 차림이다. 원래 100m 떨어진 전차종점 앞(현 부산은행)에 서 있었다. 1926년 전차의 온천장 연장 개통을 기념해 세워졌다가 1968년 전차궤도 철거 때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길은 스파윤슬길로 이어진다. 옛 온천극장 앞에서 온정개건비(溫井改建碑)가 있는 용각에 이르는 87m 구간. 온천의 ‘스파’와 ‘달빛이나 햇빛에 비쳐 반짝이는 잔물결’이란 우리말 ‘윤슬’이 합쳐진 이름이다. 온정개건비는 동래부사 강필리가 1766년(영조 42) 동래 온천의 낡은 건물을 고쳐 지은 공적을 기려 세운 것이다. 당시 동래부는 동래 온천을 관리하는 주체이기도 했다.
동래별장으로 향한다. 이 구간에도 보행로는 없다. 동래별장은 땅 투기에 탁월한 재능을 지녀 일제강점기 당시 부산 3대 부자로 꼽히던 하자마 후사타로가 별장으로 지었던 것이다. 해방 이후 미군정청 집무실로, 6·25전쟁 때는 부통령의 관저로 쓰였고, 1965년 고급 요정으로 바뀌었다. 이후 휴폐업을 거듭하다가 2000년 10월부터 한정식, 야외 결혼식 등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동래별장에는 100여 년 전의 목욕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돌탕이 있다. 타일 탕도 2개나 있었다고 한다.
■ 금강공원서 만난 차밭골 전설
동래별장을 지나 금강공원으로 오른다. 금강공원은 동물원과 식물원, 케이블카를 갖춰 ‘1970년대에는 절정기를 맞아 연간 100만 명이 방문했다’는 부산의 명소 중 하나다. 학교 소풍의 단골 장소였다. 추억의 사진첩에 나오는 장면. 지금은 옛 명성을 잃고 도심 속 쉼터 공원에 만족하고 있지만, 그래도 금강공원은 금강공원이다.
금강공원에서 현대시 시비의 주인공들을 만나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금강공원 정문에서 공원사업소 방면 맨 왼쪽으로 걸어가면 ‘이주홍 문학비’를 만나고 여기서 금어사 입구를 지나 ‘일제만행희생자위령비’ 앞에서 그대로 직진하면 ‘최계락 시비’, 오른쪽으로 꺾으면 ‘이영도 시비’를 잇달아 볼 수 있다. 동화와 단편소설로 등단한 이주홍은 동요와 동시, 희곡, 소설은 물론 수필을 잘 썼고, 부산아동문학회를 창립했다. 이영도 시조시인의 오빠 역시 국어 교과서에 작품이 실린 이호우 시조시인이다. 마흔의 나이로 요절한 최계락은 동시인이자 언론인이었다. 그는 국제신문 문화부장, 정경부장, 편집부국장을 지냈다. 그래서 작품 ‘꽃시’가 새겨진 최계락 시비는 1971년 7월 국제신문과 부산문인협회가 함께 세웠다.
금강공원에서 차밭골을 빼놓을 수 없다. 예전에는 금정산을 중심으로 광활한 차나무 군락지가 있었는데, 차나무 밭이 부산 북구 만덕동에서 온천장, 남산동을 거쳐 경남 양산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지금도 금강공원 내 금어사, 임진동래의총과 맞닿은 금정사 옆에 차나무 단지가 남아 있다. 은혜를 갚은 차나무 신의 이야기를 담은 차밭골 전설도 전해진다. 이번 여정은 금강공원 부산민속예술관에서 마친다.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가 운영하는 이곳은 중요무형문화재 동래야류, 부산시 지정 무형문화재인 동래학춤 동래지신밟기 동래고무 동래한량춤 등을 전승·공연하는 공간이다.
오광수 기자 inmin@kookje.co.kr
※공동기획:부산시·국제신문·(사)걷고싶은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