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사일과 거리 멀던 젊은 부부
- 남편 제의로 부산생활 접고 귀농
- 친정·시댁 친척 도움 무색하게
- 수박·토마토 농사 연이어 실패
- 2016년 말 토마토 시설농 집중
- 경매시장 출하·SNS 홍보 통해
- 판로 개선하며 매출도 좋아져
- 작년부터 스마트팜 방식 도입
- 농장 경영자 과정 다니며 공부
- 밀양기술센터 청년 창업농 선정
- 올초 日 수출 시작… 농장 세워
- “농업조합 만들 것” 도전 계속
귀농 귀촌은 10여 전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면서 사회현상이 됐다.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을까. 경제 불황기와 맞물리면서 새로운 형태로 변신하고 있다는 게 농업전문가들의 평가다. 이제 귀농은 젊은 세대의 몫이 되고 있다. 새로운 산업으로, 직장으로서 농업의 가능성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20, 30대가 주도하는 귀농은 대체로 부산, 창원 대도시 인근의 값싼 농토를 찾아 이른바 ‘돈이 되는’ 시설하우스 농사에 매진하는 형태다.
고지연(여·35), 송남원(37)씨 부부도 그런 대열에 합류한 예다. 흙 한번 만진 적 없는 고 씨 지만 남편을 요청을 받아들여 밀양에 정착했다. 선진 농법을 익히며 부농의 꿈을 일궈가는 주부 농부의 도전기를 들여다 봤다.
■낯선 농사일에 뛰어든 어촌 처녀
| |  |
| 고지연(35·왼쪽) 송남원(37) 부부와 아들 지원(6살) 군이 경남 밀양시 초동면 토마토 재배 비닐하우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고 씨는 전복으로 유명한 전남 완도가 고향이다. 중학교를 마친 그는 부친을 따라 제주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대학을 나오고 국내 굴지의 화장품 제조사에 근무했다. 때 마침 제주 한 리조트에 근무하던 남편 송 씨를 만나 연애를 했다. 2014년 남편이 직장을 부산으로 옮길 때 결혼을 하고 신접살림을 광안리 한 아파트에서 시작했다. 그 때만해도 고 씨는 평범한 전업주부로 살 줄만 알았다.
그런데 남편은 회사가 어려워지자 고 씨에게 슬쩍 ‘귀농을 해보면 어떨까’라며 뜻밖의 제안을 했다. 밀양 초동면에 비교적 크게 농사를 짓는 남편의 큰 이모의 도움을 받아 귀농하자는 제안이었다. 고 씨는 “우리 부부 모두 농사일과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남편은 결심이 선 것 같아서 ‘모 아니면 도’라는 생각으로 찬성했다”고 말했다.
부부는 2014년 9월 밀양시 초동면으로 이사를 갔다. 빈집을 구하기도 만만치 않아 친정 아버지와 남편, 고 씨가 집을 지었다. 그 덕분에 1억 넘게 들 비용을 절반으로 줄였다. 그래도 정착하기는 쉽지 않았다. 남편은 식구를 먹여 살리느라 벌초 대행, 농산물 선별작업 등 궂은 일을 마다 하지 않았다.
■주부 농군, 토마토와 인연을 맺다
| |  |
| 고지연 씨 부부가 수확한 토마토로 만든 식물성 유산균 제품. |
어떤 작물을 재배할까 고심하던 부부는 누군가 수박 농사를 권유하자 그 길로 달려갔다. 그 때만해도 혹독한 시련을 겪을 줄은 몰랐다. 고 씨는 “수박 농사를 지으려고 2015년에 남편 큰 이모의 땅 4620㎡(1400평)를 빌려 비닐하우스 7동을 세웠다. ‘밭떼기’ 거래를 하면 동당 400만~500만 원 정도는 수입이 들어온다고 철썩 같이 믿었는데, 결과는 한참 못 미쳤다”고 털어놨다. 고 씨가 재배한 수박은 제대로 여물지 않아 2800만 원 받아야 할 것을 1100만 원 밖에 받지 못했다. 경험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수박 농사에서 실패를 맛본 부부는 한 농산물 유통사업자의 소개로 토마토 농사에 도전했다. 창업자금 1억1000만 원을 연 2% 금리로 대출받은 게 두 번째 도전의 시작이었다. 부부는 2016년 2월 3960㎡(1200평)를 빌려 토마토 비닐하우스 5동을 완공했다. 고 씨는 “2016년도 6월 말부터 수확했다. 첫 수확 치고는 품질이 좋았는데, 시장 상황이 안 좋아 값이 폭락했다. 납품을 받은 회사도 대금을 빨리 안 줘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고 돌아봤다.
이웃 전문가의 조언으로 2016년 12월부터 수확한 토마토를 대구 경매시장에 출하하면서 사정이 조금씩 나아졌다. 이 때 판로의 중요성을 깨달은 고 씨는 스스로 판매 경로를 다양화 하는 데 주력했다. 고 씨는 “카카오스토리 등 SNS에서 우리 토마토를 홍보하고, 공동구매를 성사시키려고 많이 노력했다. 2017년부터는 매출이 좋아져서 보람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부농의 꿈 실현에 다가서다
| |  |
| 가족 모임을 하며 농사 정보 등을 교류하는 경남 밀양시 초동면 귀농인들. |
부부는 지난해부터 농사법을 ‘스마트팜’ 방식으로 확 바꿨다. 이전에는 토마토를 땅에 심었는데, 지금은 공중에 띄워 두고 호스로 영양분을 공급하는 양액 재배로 바꿨다. 수분이나 영양공급이 자동으로 이뤄지고, 이런 상황을 휴대전화로 실시간 확인할 수 있어 시간도 돈도 절약하게 됐다. 농사 지식도 날로 늘어 토마토 수확량이 예년보다 1.5배 늘었다. 지난 1월부터는 경남무역을 통해 일본 수출 길을 뚫으면서 안정적인 판로도 확보했다.
이제는 제법 베테랑 농군 ‘티’가 나지만, 고 씨는 여전히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지난해 경상대 농장경영 분야 최고경영자(1년) 과정을 수료했고, 농사 규모를 더 키우려고 농지 4950㎡ 를 더 임대해 토마토 농장을 일궜다.
이런 노력 덕분에 지난 1월에는 밀양시농업기술센터가 ‘청년 창업농’으로 선정했다. 고 씨는 앞으로 남편, 지인과 함께 농업조합법인을 설립해 생산과 유통에 힘을 모아 함께 부농이 되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기 시작했다.
고 씨는 “농사는 그저 고생하는 일 이라는 편견을 깨버리고 싶다. 성실하게 도전하면 수입이 큰 좋은 직업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다. 젊은 세대도 과감하게 농사에 도전해보길 권한다”고 말했다.
박동필 기자 fee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