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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부마항쟁 보고서 2 <3> 그날의 불씨를 댕긴 사람들

가발 제조업체 여공 187명의 농성, 유신독재체제 종말 도화선이 되다

  • 국제신문
  • 신심범 임동우 기자
  •  |  입력 : 2019-09-10 19:13:21
  •  |  본지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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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영주 무리하게 사업 확장하고
- 자금 유용 겹치며 회사 경영난
- 인원 감축 이어 폐업 절차 진행

- 여공들 회사 정상화·생존권 요구
- 신민당 당사 들어가 농성 투쟁
- 경찰 난입해 강제 진압 과정서
- 노조 간부 김경숙 씨 추락 사망

- 당시 여당인 공화당과 유정회
- YH 노동자 보호에 앞장섰던
- 야당 김영삼 총재 의원직 제명
- 부산·마산 시민 분노 폭발하며
- 박정희 유신체제 종언 고해

“어떻게 해서 데모가 일어났나.”(부산 영도경찰서 경찰관)

“최근 정부 시책이 관용을 베풀지 않아 불만이 터졌다.”(이동관 씨)

“무엇 때문에 불만을 품었나.”(경찰관)

“금년(1979년) 들어 일어난 YH무역 농성, 신한민주당 김영삼 국회의원 제명 등 일련의 사건은 본인뿐 아니라 학생이라면 어느 정도 불만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이 씨)
   
1979년 8월 서울 마포구 도화동 신민당사에서 YH무역 노동자들이 농성을 하고 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제공
이동관 씨의 설명과 당시 경찰 피의자 신문 조서를 종합해 재구성한 대화다. 이 씨는 1979년 10월 17일 부마민주항쟁 때 동아대 시위를 이끈 주역 중 한 명이다. 경찰은 이 씨의 배후에 시위를 부추긴 세력이 있다는 자백을 받아내려 했다. 그 해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숨지기 전까지 경찰은 입맛에 맞는 말을 얻어내려고 무자비한 고문을 자행했다.

이 씨는 “유신 정권은 신민당사에서 농성 중이던 YH무역 여공들을 폭력으로 진압했고, 그 과정에서 김경숙(당시 21세) 열사는 목숨을 잃었다. 정권은 야당 총재(김영삼)를 제명시키기도 했다”며 “학생과 시민 모두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일련의 사건이 부마항쟁에 영향을 줬다”고 회상했다.

■여공의 절규, 시민을 일으켰다

   
경찰 강제 진압 과정에서 숨진 김경숙 씨.
1979년 10월 부산 마산 시민이 유신 정권에 맞서 항쟁에 나섰을 때 YH무역 노조위원장 최순영 씨는 경찰에 구속된 상태였다. YH무역 여공 187명은 그 해 8월 9일부터 신민당사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은 일방적으로 폐업을 선언한 회사에 정상화를 요구했다. 8월 11일 경찰은 신민당사에 쳐들어가 폭력으로 여공들을 끌어냈다. 최 씨는 집회를 주동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받았다.

최 씨는 12월 25일 풀려났고, 그제야 부마항쟁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최 씨는 “유신 독재정권을 향한 국민의 불만이 치솟았지만, 막걸리를 마시다가 대통령 욕만 해도 잡혀가는 어려운 시절이었다”며 “그런 시기에 용기를 내 항쟁에 나선 건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YH무역은 1979년 3월 기준 40억5000만 원의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회사는 폐업을 예고했다. 여공들은 회사의 정상화를 요구하며 공장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그러나 곧 들이닥친 경찰에 의해 내동댕이쳐졌다.

폐업을 철회하겠다고 약속한 사장은 그 해 8월 6일 다시 폐업을 공고했다. 같은 달 9일에는 기숙사를 폐쇄했고, 10일까지 퇴직금과 해고 수당을 받아 가지 않으면 법원에 공탁하겠다고 압박하기도 했다. 최 씨는 “1960~1970년대 우리나라 경제 성장은 여성 노동자를 착취해 이뤄졌다. 1979년 당시 우리는 경제 상황이 변했다는 이유로 헌신짝같이 버려졌다. 회사는 여성은 가장이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대로 내쫓으려 했다. 그러나 우리는 집안을 책임지는 가장이었다. 그대로 회사를 나갈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가발 제조업체인 YH무역은 1966년 노동자 10명으로 운영을 시작했다. 설립자 장용호 씨가 자기 이름 영문 이니셜로 사명을 지었다. YH무역은 정부의 수출 지원을 받으며 1970년 종업원 4000명이 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수출 1000만 달러를 달성한 장 씨는 철탑산업훈장도 받았다.

장 씨는 가족과 함께 미국에 이민을 가 YH무역이 만든 가발을 수입해 되파는 회사를 차렸다. 호텔과 백화점도 지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정부의 산업정책 기조는 중화학공업 육성으로 선회했다. 가발 제조업은 사양산업이 됐다. 그런데도 YH무역은 다른 회사를 인수하는 등 무리하게 기업을 확장했다. 회사 자금을 유용하기도 했다. 장 씨에 이어 사장이 된 그의 동서 진동희 씨는 1970년 노동자의 상여금이라며 빼돌린 돈 10억 원으로 1973년 대보해운을 세웠다. 장 씨는 1973년 미국에서 외상으로 300만 달러어치의 YH무역 가발을 사고도 3년 넘게 돈을 주지 않았다.

YH무역 여공들은 농성할 수밖에 없었다. 최 씨는 “집회를 하려고 미국 대사관을 비롯해 여러 곳을 통해 알아봤다. 농성장으로 신민당사를 선택한 건 야당이 우리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생각에서였다”면서 “당시 야당 한 의원이 국회에서 ‘경찰이 YH무역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끌어내렸다’고 질타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부마민주항쟁 당시 YH무역 노조위원장이었던 최순영 전 국회의원.
신민당은 여공들을 도우려 국회 보사위원회 소집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그 해 8월 11일 새벽 2시께 경찰 1000여 명이 당사를 진압하는 폭력으로 되돌아왔다. 최 씨는 “우리는 농성 중이던 당사 4층 창틀에 매달려 ‘어떤 놈이든 오면 떨어져 죽겠다’고 버텼다”며 “설마 제1 야당 당사에 경찰이 들어오겠느냐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경찰이 들이닥쳤다”고 회상했다.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여공 김경숙 씨가 목숨을 잃었다. 김 씨는 당사 지하실 입구에서 왼쪽 팔목 동맥이 끊기고, 타박상을 입은 채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다. 경찰은 자살이라고 발표했다. 2008년에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김 씨의 자살은 조작됐다고 확인했다.

학계는 YH무역 농성 사건이 부산 마산 시민의 민심을 건드린 것으로 분석한다. 부마항쟁의 시작을 알린 1979년 10월 16일 부산대 시위 때 정광민 씨가 뿌린 선언문의 ‘폐정 개혁안’에도 ‘YH무역 사건과 같은 반윤리적 기업주 엄단’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여기에 유신 독재정권을 향한 불만, 경공업 비중이 컸던 부산 경남의 어려운 경제 상황 등이 맞물려 부마항쟁은 ‘학생운동’이 아닌 ‘시민항쟁’으로 확대됐다.

경남대 이은진(사회학과) 명예교수는 “YH무역 농성 사건, 김영삼 총재 제명 등은 당시 내적인 의식화가 축적되던 부산 마산지역 노동자·시민을 행동에 나서게 한 촉매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부당한 탄압에 들끓은 부산 경남

   
서울 마포구 도화동 옛 신민당 당사 터에 건립된 한 오피스텔의 전경.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문정수 이사장은 YH무역 농성 사건 당시 신민당 총무국장이었다. 총무국장은 당의 살림을 책임진다. 문 이사장은 “1979년 8월 9일 오전 출근할 무렵 새벽에 공장에서 출발한 여공들이 당사에 왔다. 근처에 ‘진고개’라는 식당이 있었는데, 거기서 여공들에게 끼니마다 밥을 배달시켰다. 당직자까지 더해 한 끼에 300인분 정도였는데, 돈이 많이 드니까 나중에는 국회의원 부인들을 동원해 밥을 지었다. ‘이러다 살림 거덜 나겠다’는 농담 아닌 농담도 나왔다”고 소개했다.

문 이시장은 부마항쟁의 단초가 1979년 5월 30일 신민당 전당대회에 있었다고 했다. ‘선명 야당’을 내세운 김영삼 총재가 당권을 잡으면서 불씨가 지펴졌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김 총재는 ‘유신 정권 규탄’과 ‘민주 회복’을 내세웠다. YH무역 여공들이 당사를 찾아오기 전에 문익환 목사, 고은 시인, 이문영 교수가 상도동을 방문해 여공들을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했다”면서 “신민당에 대한 기대가 없었다면 재야 인사가 상도동을 찾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옛 신민당사 터에 설치된 표시물.
1979년 10월 4일 김영삼 총재는 여당인 민주공화당과 유정회에 의해 의원직을 제명당했다. 그 해 9월 16일 뉴욕타임스가 김영삼 총재와 진행한 인터뷰를 보도한 게 이유가 됐다. 인터뷰에서 김 총재는 “내가 미국 관리들에게 ‘미국은 박 대통령에 대한 공개적이고 직접적인 압력을 통해서만 그를 제어할 수 있다’고 말하면, 미국 관리들은 ‘한국의 국내 정치에 관여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이것은 말이 안 된다. 지상군 3만 명이 파견돼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에 앞서 9월 8일 유신 정권이 신민당 원외 지구당 위원장을 포섭해 김영삼 총재의 직무 정지 가처분 신청을 낸 것이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김영삼 총재 제명에 화가 난 신민당 의원 66명과 민주통일당 의원 3명은 10월 13일 집단 사퇴서를 제출했다. 이에 공화당과 유정회는 신민당 의원을 가려서 사퇴시키는 ‘사퇴서 선별 수리론’을 내세웠고, 이는 김영삼 총재의 정치적 기반인 부산 경남 시민의 공분을 샀다.

문 이사장은 “5·30전당대회로 선명 야당이 대두된 상황에서 벌어진 총재 제명 사건, YH무역 여공에 대한 혹독한 탄압, 악덕 기업가의 근로자 착취 등 정치·사회 영역에서 불만이 폭발해 유신 독재 권력에 항거하는 부마항쟁이 일어났다”고 강조했다.

YH무역 여공들과 생활한 40시간은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문 이사장은 “산업화 폐해가 막 생길 무렵이다. 제1 야당으로서 문제를 수용하고 대변해야 했다. 야당에 대한 믿음에 YH무역 여공들이 최후의 보루로 당사를 찾은 것 아니겠느냐”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이어 “국회 보사위원회를 열어 수습하려 해도 소집이 안 됐다. 정권 차원의 해명도 없었다. 국회의원들이 당사를 떠나면 경찰이 어떤 일을 벌일지 몰라 여공들은 4층, 김영삼 총재는 2층 총재실에서 함께 밤을 샜다. 이틀간 정부 관계자들과 해결책을 마련하려고 했지만, 정부는 강경 진압 방안만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이 당사로 들이닥친 8월 11일 새벽에는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경찰은 공중에서 내려와 창문을 부쉈다. 1층에서도 진입을 시도했다. 여공들은 이리저리 도망쳐야 했다. 처참히 끌려나가는 여공들에게서 자신의 처지를 본 듯 ‘진고개’ 식당에서 음식을 배달하는 여성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문도 돌았다. 문 이사장은 “스무 살 정도 되는 시골 아가씨였다. 어린 나이에 일하러 왔으면 집안 사정이 여공들과 다르지 않았을 거다. 언니뻘 되는 여공들이 사흘간 농성하는 모습, 끝내 진압당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게 되지 않았을까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부마항쟁은 유신 정권을 끝낸 계기가 됐지만 그 후계인 군부가 다시 집권하고, ‘유신의 딸’이 집권하면서 부마항쟁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채 가려졌다”며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데 큰 역할을 한 부마항쟁의 위대한 업적이 이제라도 제대로 평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심범 임동우 기자

YH 무역 사건~부마민주항쟁 주요 사건 개요

일시

 

내용

1966년

 

YH 무역 설립

1970년

 

노동자 4000명의 기업으로 성장

1975년

 

노동조합 설립

1979년 

3월 30일

경영난을 이유로 첫 폐업 공고

 

4월 13일

폐업에 반대하며 농성 돌입. 경찰에 의해 해산

 

5월 30일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김영삼 승리

 

8월 6일

폐업 재공고

 

8월 9일

여공 187명 신민당사에서 농성 돌입

 

8월 11일

경찰 2000명 투입해 노동자 연행. 김경숙 열사 사망

 

8월 13일

신민당 일부 의원 김영삼 총재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 제출

 

9월 8일

서울지법, 가처분 신청 인용

 

9월 16일

뉴욕타임즈, “미국 개입해야” 김영삼 인터뷰 보도

 

10월 4일

국회, 신민당 김영삼 총재 제명

 

10월16일

부마민주항쟁 발발

 

10월26일

김재규, 박정희 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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