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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의 빈곤 <3> 가난의 그늘 ②교육빈곤

‘개천의 용’ 안나오는 시대 … 흙수저 학생에 상위권은 ‘넘사벽’

  • 국제신문
  • 하송이 박호걸 기자
  •  |  입력 : 2019-09-16 18:55:25
  •  |  본지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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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과서로 하는 나홀로 학습
- 중·고등학생 되면 한계 뚜렷
- 빈곤가정 성적 상위권 학생들
- 학원비·교재비 부담 느끼거나

- 주변 독려 없어 지레 포기하기도
- 소득 따른 중학생 수학점수 격차
- 2005년 6.63점 2014년 7.58점
- 가정환경따라 정보·기회 박탈
- 갈수록 공고해지는 ‘수저계급론’
   
◇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교육지원사업에 참여한 학생들의 말

“교재비 4만 원이 없어서 친구한테 책을 빌려 밤새 타이핑 해 제본했죠. 무료 인터넷 강의로 성적 상위권으로 올리는 거요? 솔직히 진짜 불가능해요.”

-엄마의 아르바이트로 삼남매를 뒷바라지했던 주은이네

“엄마가 모아놓은 돈 다 털어서 해운대 쪽 학원을 잠시 다녀봤는데 학원비가 너무 비싸서 결국 두 달 만에 그만뒀어요. 절실했지만 다닐 수 없었어요.”

-아픈 엄마와 단둘이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가는 정호네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의 국회 청문회 검증 과정에서 ‘수저계급론’에 불이 붙었다. 교수 부모의 ‘보이지 않는 손’이 딸의 진학 과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혹은 순식간에 수많은 젊은이를 박탈감으로 내몰았고, 검증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교육은 빈곤층이 계층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돕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출신 대학이 개인의 역량을 가늠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꼽히는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도 과거엔 적지 않은 ‘개룡남’이 탄생했고, 이들 상당수는 교육 사다리를 타고 빈곤의 대물림 악순환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개룡남’은 이제 갈수록 ‘전설’이 되고 있다. 부모의 소득과 정보에 따른 교육 격차는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고등학교를 거치는 10대에게 있어서 교육 빈곤은 ‘난 아무리 해도 안 돼’라는 열패감의 원인이 된다.

■“사교육 없으면 안 돼요”

   
수민이(가명·17) 아빠는 젊은 시절 대기업에 근무하다, 시골 생활을 정리하고 부산으로 온 할아버지와 함께 2000년대 초반 숙박업소를 운영했다. 이 시기를 즈음해 아빠는 엄마를 만났고, 이듬해 수민이가 태어났다. 처음엔 집안 사정이 나쁘지 않았지만 숙박업소 운영이 생각만큼 잘 되지 않으면서 빚이 쌓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빚은 카드 5장으로 돌려 막아도 역부족일 정도로 불어났다. 결국 수민이 부모는 숙박업소를 정리하고 빚을 짊어진 채 어린 수민이를 안고 강서구 단칸방으로 왔다.

아빠는 지인 공장 등 여기저기서 일을 했지만 빚이 워낙 많았던 터라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지적장애가 있는 엄마는 수민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더군다나 2년 뒤에는 수민이 동생까지 생겼다. 수민이는 초등학생일 때부터 집에 없는 엄마와 아빠를 대신해 또래보다 발육이 느린 동생을 챙겨야 했다. 공부에 흥미가 있었지만 사교육은커녕 공부에 전념할 시간도, 공간도 늘 부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민이는 중학교 때까지는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벽에 부딪혔다. 첫 모의고사에서 전교 10등으로 밖으로 밀려난 게 시작이었다. 이후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야속하게도 성적은 나아지기는커녕 뒷걸음질 쳤다. 떨어지는 성적 앞에서 수민이는 속수무책이었다. 조언을 해줄 사람도, 진로를 함께 고민할 사람도 없으니 그나마 있던 자신감마저도 사라졌다. 요즘엔 꿈인 한옥건축가가 되지 못할까봐 불안하다.

“고등학교에 가니 성적 좋은 친구들은 다 학원을 다니고 선행(학습)을 해오더라고요. 과학이나 국어 같은 건 그래도 할 만한데, 수학은 학원 안 다니니까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어요.”

국제신문은 지난 2일부터 6일까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부산지역본부의 교육지원사업을 거쳐간 8명을 인터뷰했다. 현재 대학생이 된 이들은 “혼자서 공부해 좋은 대학에 가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중·고등학생이 되면 나홀로 학습의 한계가 뚜렷하다고 했다.

지난 2일 인터뷰에 응한 주은(가명)이도 수민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평범했던 주은이네는 아빠가 보증을 잘못 서면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야외에서 일을 하던 아빠가 사고로 얼굴을 크게 다치면서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그 대신 엄마가 대형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주은이 삼 남매를 키웠다.

주은이 역시 중학교 때까지는 혼자서 공부할 만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이내 한계에 부닥쳤다. 무료 인터넷 강의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유명 강사의 강의는 인터넷이라 할지라도 한 과목에 30만 원은 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교재비만 해도 한 권에 4만 원이었거든요. 돈이 너무 많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친구에게 학원에 두고 왔다고 거짓말하고는 문제집 빌려선 밤새워 타이핑해 제본해서 썼죠. 무료 인터넷 강의로 성적 상위권으로 올리는 거요? 솔직히 진짜 불가능해요.”

아픈 엄마와 단둘이, 기초생활수급비로 살아온 정호(가명) 역시 “사교육이 필요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정호는 “고등학교 올라가서 성적이 밀리니까 엄마가 모아놓은 돈 다 털어서 해운대 쪽 학원을 잠시 다녀봤는데 학원비가 너무 비싸서 결국 두 달 만에 그만뒀다”며 “잘하는 친구들은 다 과외 받고 학원 다녔다. 나도 절실했지만 다닐 수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건널 수 없는 강-경제적 지원

소득에 따른 교육 격차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문제는 갈수록 그 수준이 심각해지는 데다 단순한 교육비 차이를 넘어 정보의 격차, 인맥 유무 등으로 점차 확대된다는 점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이 2017년 내놓은 ‘교육 격차 실태 종합분석’에서는 학교급별 소득계층에 따른 교육 격차 추이를 분석했다. 특히 학습과정과 기회의 격차에 초점을 두어 2003년부터 2014년까지 변화 양상을 살펴봤다. 그 결과 소득계층별 수학 성취도 격차가 해를 거듭할수록 심화됐다. 특히 중학생의 경우 2003~2005년 조사에서 월 소득 200만 원 미만과 600만 원 이상의 수학 학업성취도 차이는 6.63점이었으나 2012~2014년 조사에서는 그 격차가 7.58로 커졌다.

계층에 따른 사교육 격차 역시 중·고등학교가 초등에 비해 더 컸다. 보고서에서 2012~2014년 조사 대상자의 수학 사교육 참여 비율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초등학교는 월 소득 200만 원 미만과 600만 원 이상의 참여 비율 차이가 32.1% 포인트였으나 중학교는 40.5%포인트, 고등학교는 36.1%포인트였다. 이 같은 차이는 실제 성적으로 이어져 중학교 단계에서 사교육에 의한 학업 성취도 차이가 가장 크게 나타났다.

학습 시간 역시 소득별로 달랐다. 2012~2014년 조사에서 월 소득 600만 원 이상 고등학생의 수학 학습 시간은 8.77시간으로 조사된 것에 비해 200만 원 미만은 6.25시간에 그쳤다. 빈곤가정에서는 수민이처럼 아직 학생인데도 가족을 돌보는 일을 떠맡거나 부모의 부재로 사실상 방임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이 같은 환경이 학습 시간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학생의 학업성취 변동에 미치는 영향’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부모의 지위에 따라 중학교 1학년과 고등학교 3학년 때의 학업성취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살펴봤더니 국어 과목의 경우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중·상위권 유지 집단’ ‘성적 상승 집단’에 속할 확률이 높았다. 대학 진학 역시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기타 4년제 대비 상위권, 서울 4년제 대학 진학 항목에서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 효과가 가장 두드러졌다. 좋은 대학일수록 진학에 부모의 역량이 영향을 끼쳤다는 의미다.

동의대 구은미(보육가정상담학과) 교수(한국아동권리학회장)는 “일반적인 가정은 부모가 학부형 모임 등을 통해서 입시 정보를 얻고, 주변의 자극도 받는다. 하지만 저소득 가정은 그런 환경 자체가 차단된다”며 “따라서 본인이 지독하게 열심히 하지 않는 이상 이 같은 격차를 넘어서기 힘들고, 이 같은 차이 때문에 다 포기해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건널 수 없는 강-심리적 지지

물질적 지원을 넘어 ‘심리적 지지’에 있어서도 차이가 두드러진다. 빈곤가정 아동은 물질적 빈곤과 더불어 진학 과정을 함께 의논할 대상이 없는 점이 아쉽다고 토로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 모두 혹은 한 명이 없거나, 있더라도 교육에 대한 열의와 관심이 떨어져 수민이처럼 아동이 혼자서 모든 걸 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광주과학기술원 김희삼 교수는 2017년 낸 ‘사회이동성과 교육격차’에서 교육 격차의 원인을 물질적 능력에 따른 사교육의 차이와 함께 아동기적 환경에서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즉, 가정환경과 부모의 교육 관여 정도, 양육 관행이 10대 시기의 성적을 결정짓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제신문 인터뷰에 참여했던 어린이재단 교육사업 대상자 모두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있는 것이 좋은 성적을 내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부모의 사업 실패와 이혼을 거치면서 빈곤가정이 되었지만 교육사업 지원 등을 통해 2년 전 최상위권 대학에 진학한 민준(가명)이는 “나를 지지해주고 받쳐주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 안정감을 주었고, 성적을 올리는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하송이 박호걸 기자

※ 기획: 국제신문,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 후원: (주)경성리츠 올집

※ 동영상 유튜브 ‘비디토리’ 검색. 후원문의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부산지역본부 (051)505-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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