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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부마항쟁 보고서 2 <7> 실태조사서 드러난 ‘아픔’

‘국가폭력’ 트라우마로 망가진 삶 … 대인관계도 생계도 막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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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자 88명 심층 면접 보고서
- 고문후유증에 29명 신체적 고통
- 절반 이상은 스트레스 ‘위험군’
- 보상금 수령 28% … 액수 제각각
- ‘꼬리표’ 탓 사회적 제약 악순환
- 참가자 대부분 경제형편 어려워
- 지원금 받아도 생계유지에 급급
- 진상 규명·보상 체제 개편 절실

1979년 10월 유신정권은 민중의 손에 무너졌다. 당시 거리로 나선 부산 마산의 시민 대부분은 평범한 학생 노동자 상인 등이었다. 엄혹했던 시대, 하루하루 살아가기조차 쉽지 않았던 이들이 철옹성 같은 독재 권력에 맞섰다. 성난 시민의 항쟁은 정권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후유증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남았다. 누군가는 정신적·신체적 고통에 여전히 괴로워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항쟁에 참여한 사실이 오랜 세월 낙인과 족쇄로 작용했다.

   
국제신문은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이 ㈔10·16부마항쟁연구소에 의뢰해 작성한 ‘부마민주항쟁 관련자 실태 조사 보고서’를 단독 입수했다.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회로부터 항쟁에 참여한 것으로 인정받거나 구금 기록 등이 있는 88명을 심층 면접 조사한 결과다. 보고서는 부마항쟁 주역이 현재 처한 사회·경제적 현실을 분석한 첫 번째 기록으로 의미가 크다. 조사 결과 대부분 40년 전과 다르지 않는 영세한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그날의 트라우마와 싸우고 있는 고달픈 현실도 확인됐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대한 여정’을 알린 주역이 40년이 흐른 지금 어떤 삶을 사는지 보고서를 통해 들여다봤다.

■세월이 지워주지 못한 상처

“1979년 10월 17일 남포동 시위에 참여한 후 다음 날 새벽 귀가했다. 아랫집 지인과 바둑을 두고 있는데, 경찰이 찾아와 ‘잠시만 가자’고 했다. 영도경찰서 소속이란 걸 밝히지도 않고 불법 연행했다. 집에서 1㎞가량 지나서부터 차 앞자리에 앉은 사람이 워커발로 차기 시작했다. ‘박정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며 구타했다. ‘인간 박정희는 존경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외의 부분은 존경하지 못하겠다’고 대답하니 계속 두들겨 팼다. 그 이후 내 인생이 전부 꼬였다.”

“진압봉으로 머리와 왼쪽 어깨를 5, 6차례 맞았다. 잡히면 죽는다는 생각이 들어 필사적으로 무학산으로 도망쳤다. 산속에서 어깨가 부러진 고통을 견뎠다. 다음 날 아침 몰래 집으로 돌아갔지만 잡힐까 두려워 병원에도 못 갔다.”

보고서에 담긴 고문·폭행의 기억 중 일부다. 응답자 중 49명이 아직도 당시의 고통에 괴로워했다. 20명은 국가 폭력 탓에 여전히 두통·악몽·트라우마에 시달린다고 했다. 폭행과 고문 후유증으로 신체적 고통을 겪는 사람도 29명이나 됐다.

트라우마는 대인 관계의 어려움으로 이어진다. 응답자 중 17명은 ‘대인 관계에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 유치장 등에서 나온 이후로 한정하면 31명으로 늘어난다. 이들은 “가까운 사람과의 대화는 괜찮지만 잘 모르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게 되고, 대화를 하더라도 오래 지속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 밖에도 응답자들은 “부마민주항쟁과 관련되었다는 것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10월이 되면 잠을 못 잔다. 일을 하다가도 갑자기 눈물이 날 때가 있다 ” 등의 증상을 호소했다.

신체적 문제 또한 대인 관계를 망치는 데 일조한다. 한 응답자는 “시력을 잃어서 사람을 못 알아본다. 하지만 내가 건방져서 모른 척 하는 줄 알고 있는 경우가 많고, 그런 오해가 쌓이다 보니 대인관계가 안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사라지지 않은 고통의 기억 탓인지 많은 응답자(58.6%)가 심각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고 답했다. 스트레스지수를 통해 개인별 스트레스 정도를 확인한 결과 ‘고위험군’이 23명, ‘위험군’이 28명이었다.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방법으로는 막연히 ‘진정되기를 기대한다’는 응답이 56건(52.9%)로 가장 많았다.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한다(52.8%)’ ‘잊으려고 노력한다(50.6%)’는 응답도 많았다. 보고서는 “트라우마와 스트레스 치료를 위한 ‘트라우마 치유센터 설립’이 절실해 보인다”고 제언했다.

■경제적 어려움에도 지원 적어

   
“취업이 확정됐으나 곧 취소돼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공기업 취업에 제약이 심했다” “엑스레이에 장애가 나타나 변변한 회사에 취직하지 못했다” “주로 장사와 영업사원 등을 전전하다 지금은 삶에 애착이 별로 없다”

10·16의 주역들은 엘리트 계층이 아닌 평범한 대중이었다. 이들의 경제적 상황은 평범하거나 그보다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항쟁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갖가지 사회적 제약에 부딪히기까지 했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며 대부분이 60대 이상의 장·노년으로 접어들었다. 은퇴를 준비하거나 이미 경제 활동을 중단해 생계의 어려움은 점차 커지고 있다.

통계 분석은 이 같은 사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은 1979년 당시 학생(56.8%)이었다. 근로자( 27.3%)와 자영업 및 무직(각 5.7%)이 뒤를 이었다. 2019년 현재는 자영업에 종사하는 응답자사람이 23명(26.1%)으로 가장 많았다. 아직 근로자로 일하거나 일을 그만둔 응답자가 각각 25%를 차지했다. 무직자 비중이 높다는 것은 이들의 생활 수준이 예전보다 더 나빠졌다는 걸 의미한다. 실제 자신의 생활 수준을 주관적으로 평가하는 물음에서 ‘중의 하’라고 답한 응답자가 32명(39%)으로 가장 많았다. ‘중의 상(29.3%)’과 ‘하(26.8%)’라고 답한 사람도 많았다. 반면 ‘상’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4명(2.4%)밖에 없었다.

이들 대부분은 1979년 당시의 생활 수준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은 40년 전에도 자신의 경제적 여건이 ‘중의 하(36.5%)’나 ‘중의 상(30.6%’또는 ‘하(30.6%)’였다고 생각했다. 전체 응답자의 67%(59명)가 빚을 지고 있고, 이들 중 절반 이상(62.7%)는 채무가 부담된다고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 응답자는 “부마항쟁 당시 가게를 개업하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고문을 당해 몸이 망가졌다. 이후 계속 힘든 시기를 보내며 기반을 잡을 시기를 놓쳤고, 현재까지도 아주 어렵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항쟁 관련자 대부분은 정부 보상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받는다 해도 액수가 많지 않았다. 항쟁 관련자가 받는 보상금 대부분은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의거한 생활지원금이나 상이보상금이다. 구금에 따른 형사보상금이나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을 통해 받는 손해배상금 등을 수령하는 경우도 있다. 모든 사례를 통틀어 응답자 중 항쟁과 관련한 보상금을 받은 사람은 25명(28.4%)에 불과했다. 생활지원금으로 250만 원 정도를 책정받고도 생활 수준이 높다는 이유로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 사례도 있었다.

이들이 받은 보상금은 평균 3603만 원이다. 그러나 적게는 70만 원에서 많게는 1억5700만 원까지 편차가 매우 컸다. 상·하위 10%의 극단치를 제외하면 평균 수령액은 2628만 원까지 줄어든다. 생활 수준별로 보상금 평균값을 비교해보면 ‘하’에 속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평균 4049만 원을 수령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극단치를 뺀 평균 수령액은 되레 ‘상’ 집단이 3000만 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때 ‘하’ 집단은 2634만 원에 그쳤다. 수령한 보상금의 용처를 묻는 질문에 ‘생계’를 꼽은 응답자가 11명(44%)으로 가장 많았다. ‘부채 상환(24%)’이라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특히 ‘하’ 집단의 응답자 12명 중 10명은 생계비 또는 부채 상환에 보상금을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10·16부마항쟁연구소 정광민 이사장은 “항쟁 참가자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편이었고, 지금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항쟁 관련 보상 체계가 확대 개선될 필요성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자랑스러운 기억… 진상규명 최우선

정신과 신체, 경제적 후유증에도 응답자 대부분(76명·86.3%)에게 부마민주항쟁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자랑스러운 기억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항쟁 참여 사실의 자긍심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 중 가장 많은 50명(56.8%)이 ‘아주 자랑스럽다’고 답했다. ‘자부심은 있다’는 응답자도 26명(29.5%)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6년 5·18기념재단이 5·18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이들을 대상으로 한 자긍심 분석 조사 결과보다 높은 수치다. 당시 5·18민주화운동 참여 사실을 긍정적으로 기억한 응답자는 전체의 81.3%였다.

참여자들은 향후 정부가 중점을 둬야 하는 정책으로 ‘진상 규명(47명·27.6%)’을 1순위로 꼽았다. ‘경제적 배상·보상(25.3%)’과 ‘명예 회복(23.5%)’ ‘생활 지원(11.2%)’ ‘기념관 건립(10.6%)’ 등에 관한 기대감도 나타냈다. 여기에는 박근혜 정부 시절 출범한 규명위원회가 ‘엉터리 진상규명보고서’ 파문을 낳는 등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응답자 대부분은 항쟁과 관련한 지금까지의 정부 정책을 ‘잘못했다’고 평가했다. 진상 규명 부분에서는 응답자 중 46명(52.3%)이, 관련자 보상에 대해서는 64명(72.7%)이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기념사업 또한 53명(60.3%)이 잘못했다고 답했다. 홍순권 규명위원장은 “조사 참여자의 바람처럼 온전한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지속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신심범 임동우 기자 mets@kookje.co.kr

-끝-

폭행 후유증(육체적 질병)에 대한 주요 응답

- 감기 걸리고 중이염이 생겼는데 치료를 못 받아 계속 악화, 결국 한쪽 고막이 고름 때문에 손상됨
- 오른쪽 회전근개가 끊어져 수술은 했지만 힘쓰는 일을 못하게 됐고, 정신건강마저  황폐해짐
- 현재까지 허벅지 신경 마비로 불편한 생활을 하고 있음
- 허리를 못 쓰게 되었고, 척추 5·6·7번에 나사못 고정수술을 하였음

 

현재의 대인관계 대한 주요 응답

- 사회적으로는 ‘부마사태 주동자’라는 시선이 좋은 의미가 아닌 채 작용함
- 당시의 극심한 고문과 폭행에 대한 트라우마로 많은 사람과 이야기 나누기 힘듦
- 대인기피증을 극복하고자 자영업자로서 다수 지역단체에 가입하여 노력하고 있음
- 청력이 약해져 보청기에 의존. 자주 보는 분들은 아니까 괜찮은데, 인간 관계가 좁을 수밖에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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