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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공작소-양산 ‘황산 베랑길’ <상> 물금 황산역의 영화

나루와 역… 영남물류 대동맥 ‘황산’, 기차·자전거만이 ‘길의 역사’ 이어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0-10 19:12:44
  •  |   본지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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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강 하류 물금 옛 지명 ‘황산’
- 가야시대 오봉산 일대 철광석 캐
- 벌겋고 누런 녹물 흘러 붙여져
- 황산진구는 물금나루로 짐작
- 2000년된 ‘最古 나루터’ 추정

- 조선 국가기관 역참인 ‘황산역’
- 8814명 관원 일하던 행정타운
- 황산언 제방 발굴돼 위용 짐작
- 황산공원 등 이름으로나마 부활
- 영남 옛 교통 요충지 역사 속으로

경남 양산시 물금과 화제리는 낙동강 수변으로 경관이 아름다울뿐더러 옛길과 근현대 길이 만나는 역사의 교차로 같은 곳이다. 이곳엔 ‘황산베랑길’이라 불리는 생활의 길, 김정한의 소설 ‘수라도’의 무대로서 문학의 길이 중첩돼 있다. ‘황산베랑길’ 이야기 여행을 상·하 두 차례에 걸쳐 싣는다.
   
국토종주 자전거길의 대표적인 코스 중 하나인 황산베랑길에서 동호인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다. 국제신문DB
■ 물금 지명 산책

양산시 물금(勿禁)은 길과 나루의 역사가 켜켜이 쌓인 곳이다. 물금 일대에 최소 3곳의 나루터가 있었고, 낙동강을 따라 삼랑진까지 영남대로(황산도)가 지나갔다.

   
물금의 유래는 여러 설이 있다. 신라와 가야가 접경한 교통 요충지로, 두 나라는 전쟁이 나더라도 이곳만은 ‘금하지 말자’는 뜻이 있는가 하면, 하도 홍수가 많이 나 수금(水禁)이 물금(勿禁)으로 변했다는 설도 있다. 물(낙동강)이 굽이지는 곳이라 물구미에서 물금이 되었다는 말도 전한다. 지명 유래가 다양하다는 것은 얘깃거리가 많다는 뜻이다.

물금의 옛 지명은 ‘황산(黃山)’이다. 물금의 오봉산 일대는 가야시대에 철광석을 캐던 곳. 철산지에서 항시 벌겋고 누런 녹물이 흘러내려 황산이란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문헌에는 낙동강 하류 물금 일대를 황산하(黃山河), 황산진구(黃山津口) 등으로 기록하고 있다.

‘서기 77년(탈해이사금 21년) 8월, 신라의 아찬(阿飡) 길문(吉門)이 거느린 신라군이 황산진구(黃山津口)에서 가야병과 싸워 1000여 명을 죽이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길문은 그 공으로 파진찬(波珍飡)으로 승진하였다’(삼국사기)

황산진구는 오늘날 물금나루(양산취수장 부근)로 짐작된다. 이렇게 보면, 물금나루는 무려 2000년의 역사를 지닌 나루터다. 아마 문헌에 나타난 최고(最古)의 나루터일 가능성이 크다. 하고 보면 ‘황산’이란 지명이 예사 개념이 아닌 것이다. 양산시가 뒤늦게나마 ‘황산공원’ ‘황산로’ 식으로 물금의 원적(原籍)을 찾은 것은 바람직하고 다행스럽다. 물금의 진짜 콘텐츠를 찾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 영남의 교통 요충지, 황산역

‘타다닥~ 타다닥~’ 밀양과 울산(언양) 쪽에서 흙먼지를 잔뜩 피우며 파발마가 달려온다. 파발마가 닿는 곳은 황산역(黃山驛)이다. 황산역은 조선시대 물금지역에 설치된 역참이다. 역참은 오늘날 역(驛)에 통신, 검문, 숙박 기능을 갖춘 국가기관. 국가의 명령이나 공문서를 전달하고, 외국 사신이나 관리를 접대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역(驛)은 기차역이나 지하철역이 아닌 이름 그대로 말(馬)이 있는 역이다.

황산역은 조선시대 전국 40개 찰방역 가운데 하나로, 딸린 역이 많을 땐 16개에 달했다. 대부분 경남과 울산, 부산에 있었다. 부산에 있던 역은 소산역(금정구 하정마을)과 휴산역(동래읍성 남쪽) 등 두 곳이다. 역의 책임자는 중앙 직속의 찰방(종6품)으로 위세가 대단했다. 암행어사가 뜨면 보필했고 지역 군수의 치정을 감시했다.

황산역은 거대한 행정타운을 형성했다. 1871년에 제작된 ‘영남역지(嶺南驛誌)’에 따르면, 황산역에는 역리 7638명과 노비 1176명 등 총 8814명이 소속되었으며 큰 말 7마리, 중간 말 29마리, 짐 싣는 말인 복마(卜馬) 10마리 등 모두 46마리의 말이 배치됐다.

역참은 기본적으로 공무를 수행하는 관원들이 이용했다. 선비나 장사치들은 역에서 운영하는 원우(院宇)에서 숙식을 주로 해결했다. 역참 운영에 대한 사항은 ‘경국대전’에도 소상히 기록돼 있다.

■ 옛 영화는 온데간데없고

황산역의 규모와 입지는 2010년 발굴조사에서 어느 정도 드러났다. 물금 황산언(黃山堰) 유적이다. 옛 황산역 동쪽과 서쪽에는 북천(양산천)과 황산강의 범람을 막는 긴 제방이 있었고, 제방 안쪽은 말 사육에 쓰인 마위답(馬位田)이 존재했다. 마위답은 고려~조선시대 역마를 기르기 위해 역리나 역노, 말 사육자 등에게 지급되던 토지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대마(大馬)는 7결, 중마(中馬)는 5결 50부(負), 소마(小馬)는 4결씩 지급한 것으로 되어 있다. 조선 전기에는 관청에서 경작해 세금을 물지 않았으나, 후기에는 점차 소작제로 바뀌면서 세금도 물었다.

황산언 제방은 12세기 초 고려시대 처음 축조됐으며, 15~16세기 조선시대 전기에 대대적으로 수축됐다. 물금의 동쪽과 서쪽 큰 제방에는 총 30리에 이르는 홍수 방지용 대나무도 조성했다. 이 제방을 만드는 데 1만여 명의 관민이 동원됐다고 한다. 국가적 치수사업이었다.

황산역이 위치했던 곳은 양산시 물금읍 화산4길(서부리) 물금제일교회 일대다. 옛 건물들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지금은 주택과 텃밭이 들어서 있다. 황산역 안내판이 세워져 있으나, 그것조차 찾기가 쉽지 않다.

   
황산역을 이렇게 역사 속에 묻어놓아도 좋을까. 그럴 순 없다. 황산역은 비록 과거사지만 영남지역의 핵심 관로였던 영남대로(일명 황산도)와 낙동강 하류의 물류 역사를 웅변한다. 이곳에 20세기 초 경부선 철도가 건설되고, 얼마 전 국토종주 자전거 길이 열린 것도 길의 변화와 흐름을 시사한다. 한마디로 황산, 물금은 길의 도시이자 나루의 고향이다. 잠자는 ‘길의 역사’를 누가 깨울 것인가. 해 질 녘 낙동강가에서 나그네는 향수에 잠긴다.

박창희 스토리랩 수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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