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대 법대 교수로 재직 중에
- 신분 보증하며 연행 학생 구출
- 중구 미국문화원장과 친분있어
- 학생·시민 연대의식 대해 전달
- “지역 학계 진상규명 분발해야”
부마민주항쟁 당시 미국 문화원이 주한 미국 대사관에 “시위가 일반 대중에게 지지를 받는다”고 보고한 사실(국제신문 지난 21일 자 8면 보도)이 확인된 가운데, 당시 미국 문화원에 항쟁의 성격을 설명한 당사자의 증언이 처음으로 나왔다. 주인공은 정권섭(84·사진)동서대 초대 총장이다.
정 전 총장은 1969년부터 1982년까지 부산대 법대 교수로 재직했다. 부마항쟁 당시에는 법정대학 학생과장(현 단과대 부학장)을 맡고 있었다. 정 전 총장에 따르면 당시 각 학생과장은 시위가 일어난 지역으로 파견됐다. 학생을 보호하고, 경찰에 연행된 학생의 신분을 보증해 신병을 인계하는 역할을 맡았다. 정 전 총장은 남포동을 담당했다.
정 전 총장은 부마항쟁이 일어나자 매일 오후 중구 대청동에 있던 미국 문화원을 찾았다. 당시 문화원장의 부인과는 호주 유학 시절 친분이 있었다. 정 전 총장은 “문화원장이 시위의 전말에 대해 묻길래 ‘지금 시위는 학생과 시민이 연대 의식을 발휘해 일어난 것’이라고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 문화원이 미국 국무부에 정보 보고를 했다는 보도를 보고, 나와 문화원장이 나눈 대화가 미국 본국에 전달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말했다.
정 전 총장은 1979년 10월 23일 저녁 미국 문화원장의 주선으로 미국 외교관 3명과 식사를 겸한 회동을 갖기도 했다. 그는 “3시간가량 식사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위의 계기나 양상, 동향 등을 설명했다. 외교관들이 ‘영남에서 일어나는 민란은 정변으로 이어진다’고 말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그들과의 대화도 미 국무부에 보고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 총장은 귀가하니 경찰 정보관 2명이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경찰이 미국 외교관과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묻길래 ‘학생 데모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정 전 총장은 지난 18일 열린 부마민주항쟁 40주년 기념 국제학술제에서 서울대 정근식(사회학과) 교수가 1979~1980년 주한 미국 대사관과 미국 정부 간 교신 자료를 분석해 발표한 것을 보고 기억을 떠올렸다. 정 전 총장은 “나와 관련된 기록이어서 증언에 나서야겠다고 결심했다”면서 “부마민주항쟁은 한일협정 체결 이후 누적된 시국 의식이 표출된 민주화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부산에서 일어난 항쟁의 단편을 서울대 교수가 밝혀낸 것은 유감이다. 지역 학계가 진상 규명을 위해 보다 분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심범 기자 met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