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꽃을 건넌다는 뜻 화제리
- 김정한 선생 실제 처가 있던 곳
- 가야부인 시부가 살던 명언마을
- 미륵당으로 나오는 용화사까지
- 소설 속 지명·모습 고스란히 간직
- 문학 테마파크 꾸며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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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한의 소설 ‘수라도’의 실제 무대인 죽전마을(대밭각단). 양산시 제공 |
■ 이야기를 품은 ‘화제’
버스가 냉거랑다리에 선다. 물금~화제를 오가는 버스는 137번(하루 5회), 138번(하루 8회) 등이다. 물금역에서 낙동강 수변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두어 시간 걸린다.
냉거랑다리는 화제교를 일컫는 지역 토속어다. 다리에서 바라보는 화제리 풍경은 산자수명 그 자체다. 오봉산과 토곡산 등 영남알프스의 거대한 산군이 마을을 병풍처럼 감싸 안았고, 그 앞으로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가슴이 탁 트이는 아름다운 풍광이다. 화제리는 명언마을을 비롯해 외화, 내화, 지나, 토교 등 크고 작은 자연 마을 5개를 함께 아우르는 지명이다. 마을과 마을 사이로는 화정천과 화제천이 흘러 낙동강에 닿는다. 들판이 꽤나 넓다. 모자랄 것도, 넘칠 것도 없이 유유자적한 농산촌이다.
화제리 자연마을은 이름이 독특하다. 감태봉(감토봉)·골마을·대밭각단(죽전)·새마(신촌)·서편·수산물·안독점이·중리·지나리·화정…. 모두 자연을 닮았거나 닮고자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대밭각단은 대밭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고, 수산물은 옛날 나루터 시절 배가 올라왔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화제(花濟)’라는 지명은 ‘사람이 꽃을 건넌다’는 뜻이다. 화제리 외화마을 입구 소나무 군락지가 마치 매화의 수꽃 형상이고, 맞은편의 명언마을 뒤편 연화봉은 매화의 암꽃 형상인데, 그 사이에 소하천이 흘러 ‘사람(마을)이 꽃을 건너는’ 모습이어서 화제가 되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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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수라도’의 핵심 배경인 ‘미륵당’으로 묘사된 용화사 경내. |
■ ‘수라도’ 문학기행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는 요산 김정한의 중편소설 ‘수라도(修羅道)’의 무대로 유명하다. 화제리는 요산의 처가가 있던 곳이고, 주인공 가야부인은 처조모를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작품 속 손녀로 나오는 ‘분이’는 요산의 부인으로 상정해 볼 수 있다. ‘가야부인’이라는 호칭은 가야국 옛터인 김해가 그의 고향이라 그렇게 지은 것 같다. 소설에는 가야부인이 ‘명호’라는 곳에서 시집왔다고 돼 있다. 명호는 지금의 부산 강서구 명지동을 지칭한다. 한때는 명지소금이 생산되었으며, 옛날에는 낙동강 수로를 따라 소금배가 오르내리곤 했다.
‘수라도’는 불교의 ‘아수라도(阿修羅道)’의 준말로 ‘싸움을 일삼는 악마들’이 사는 곳을 말한다. 이는 곧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의 혼란과 어둠의 시대를 그리는 소설의 작품 세계를 의미한다. 생전에 교만심과 시기심이 많은 사람이 죽어서 간다는 ‘수라도’는 주인공인 가야부인이 살아온 고통스러운 현실을 대변한다. 가야부인의 일대기는 그야말로 ‘수라도’를 헤치는 고통의 행로와도 같다.
‘수라도’에 그려진 화제리의 풍경은 너무 사실적이어서, ‘수라도’를 읽은 사람이라면 처음 화제리를 찾더라도 별로 낯설지 않다. 작품을 읽다 보면 오봉산과 토곡산에 둘러싸인 ‘화제리 열두 개 마을’의 정경과 등장인물들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문학기행에 안성맞춤이다.
■ 토교 화제천 용화사 등 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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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교나루(태고나루터). |
물금고개를 넘어 화제리 초입에 들어서면 가야부인의 시아버지가 살았다는 명언마을이 나온다. 소설 속의 길들을 좇아 무당 천금새가 산다는 태고나루(토교)도 가보고, 냉거랑(화제천) 건너 오봉 선생의 유일한 글 친구인 양접장이 사는 대밭각단(죽전)에도 가보자.
대밭각단 들머리에는 솔밭이 있다. 소나무 사이로 듬성듬성 작은 무덤들이 들앉았는데, ‘수라도’에서 괴질에 비명으로 죽은 고명딸의 시신이 있던 곳이다. 소설 속 지명은 십중팔구 현재의 지명과 겹친다. 황산베랑길을 따라가다 만나는 용화사는 소설에서 미륵당으로 나온다.
‘강 건너 고암산이 이쪽 미륵당 아래의 강 구부렁이로, 그 웅장한 그림자를 쑥 내밀고 있었다. 벌써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다. 물빛이 한결 시퍼런 강 구부렁이 쪽으로 사타구니가 벌어져간 골짜기의 오목한 부분에, 미륵당이란 절이 납작하게 앉아 있다. 그래서, 모신 미륵불은 어지간히 크긴 해도 절 이름을 미륵암이라고 부르지 않고, 보살 할머니들은 그저 미륵당이라고만 불렀다’(소설 ‘수라도’ 중).
미륵당은 이 소설의 핵심 배경이다. 어느 추운 겨울날, 가야부인은 시아버지 허 진사의 입젯날(제사 하루 전날), 제사상을 봐 황산 베리를 지나다가 바람이 너무 불어 잠시 피할 곳을 찾는다. 그러다 우연히 땅에 묻혀 있던 미륵불을 발견하게 되고 절을 지어 모시기로 한다. 미륵당이 서게 된 배경이다.
물금 용화사에 미륵불이 모셔지게 된 설화도 이와 흡사하다. 오래전 어느 농부가 낙동강에서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하는 물체를 발견하고 건졌더니 그것이 미륵불이었다. 한 스님이 건져다가 용화사에 모셨다는 것이 용화사의 설화이다.
용화사에는 낙동강에서 건져 올렸다는 석조여래좌상(보물 491호)이 ‘거짓말처럼’ 모셔져 있다. 용화사 측은 모셔 올린 날(음력 2월 28일)을 기리기 위해 해마다 용왕대제를 지내고 있다.
‘수라도’는 문학 교과서에도 등장할 만큼 문학성과 작품성이 뛰어나다. 구수한 토속어와 손에 잡힐 듯한 지역성은 이 작품의 매력이다. 박경리의 ‘토지’를 바탕으로 꾸민 하동 최참판댁처럼, ‘수라도’의 현장인 양산 화제리에 문학 테마파크를 꾸며도 좋을 것 같다.
박창희 스토리랩 수작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