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분 파악 힘들어 추적 시간 걸려
- 전달책 혐의 구속 말레이시아인
- “항공권 준다길래 했을 뿐” 주장
동남아시아에 근거를 둔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조직이 현지인인 조직원을 국내 관광객으로 둔갑시켜 범행을 일삼은 사례가 경찰에 적발됐다. 그동안 한국인이나 한국어가 가능한 해외동포가 인출 및 전달책을 맡았지만 보이스피싱 조직은 경찰의 추적이 강화하자 이러한 수법으로 사기 행각을 벌인다.
부산 사하경찰서는 말레이시아인 50대 남성 A 씨를 절도 혐의로 구속해 수사 중이라고 20일 밝혔다. A 씨는 지난 4일 60대 여성 B 씨의 집에 들어가 냉장고 속 현금 2000만 원을 훔친 혐의를 받는다. 단순한 절도 행각으로 보이지만 이 사건은 보이스피싱 범행이었다. 경찰의 설명을 들어보면 B 씨는 수사기관 관계자를 사칭한 전화를 받았다. B 씨는 “은행 계좌 정보를 포함한 계좌 정보가 유출됐으니 현금을 찾아 집에 보관해야 한다”는 설명을 전화로 듣고 그대로 이행했다.
이후 ‘자택에 추가적인 보완 조치를 해야 한다’는 말에 속은 A 씨는 전화를 건 상대방에게 출입문의 비밀번호까지 알려줬다. 그러자 B 씨가 나간 사이 A 씨는 집에 들어와 현금을 훔쳐 달아난 것이다. 이후 돈이 없어진 사실을 알게 된 B 씨는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경찰은 B 씨 집 주변 CCTV를 확인한 뒤 출국하려던 A 씨를 공항에서 검거했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보이스피싱 조직과의 관련성을 전면 부인했다. A 씨는 “관광 비자로 적법하게 입국했고, SNS를 통해 정해진 장소에 물건을 갖고 오면 항공권을 준다는 연락을 받았을 뿐 전후 사정은 알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외국인인 A 씨가 B 씨의 집을 단번에 찾아오기 힘들다고 판단해 국내에서 범행을 도운 조직원을 붙잡으려 한다. 아울러 경찰은 해당 보이스피싱 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A 씨의 휴대전화를 분석하는 등 수사를 확대한다.
이처럼 동남아인이 보이스피싱 인출 및 전달책으로 활동하다가 경찰에 붙잡히는 일이 잇따른다. 지난 8월 부산에서 관광 비자로 입국해 보이스피싱 조직의 수금원 역할을 한 대만 국적자가 검거됐다. 특히 올들어 부산에서만 이러한 수법의 범행을 일삼은 외국인이 3명이나 적발됐다.
경찰은 최근 보이스피싱 조직이 대대적인 수사를 받으면서 한국인 모집이 어려워지자 현지인을 국내로 들여 범행을 일삼는 조직이 늘었다고 본다. 경찰 관계자는 “혼자 한국에 오는 외국인의 경우 정보가 없고 신분 파악에 시간이 걸린다”며 “날로 교묘해지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당하지 않는 것만이 최선의 예방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고 말했다. 김민정 기자 min55@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