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 “성관계 촬영 동의 없었지만
- 피해자 의사에 반한 것도 아닌듯”
- 전 남자친구 몰카혐의 무죄 도마
- 영상 유포 협박도 집행유예 선고
- ‘강력 처벌해야’ 청원 23만명 동의
가수 구하라(28) 씨의 사망으로 가해자 중심의 성범죄 양형기준을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무엇보다 성범죄 사건을 가볍게 취급하는 수사기관의 안이한 태도를 규탄하는 여론도 비등하다.
26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가해자 중심적인 성범죄의 양형기준을 재정비해주세요’라는 청원이 올라와 이날 오후 4시 현재 23만 명이 동의했다. 청원자는 “올해 초, 과거에 당한 성폭력을 고소하게 된 피해자”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가해자가 강간미수에 가까운 성추행을 했고, 가해자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자백한 이후 고소했지만 검찰이 ‘기소유예’ 결정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기소유예는 죄를 범한 사람에게 공소를 제기하지 않는 검사의 처분이다.
청원자는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 이유가 ‘서로 호감이었고, 여자가 뽀뽀했기 때문에’라고 적혀 있었다”며 “우리나라의 성범죄 처벌은 아직도 가해자 중심적으로, 성범죄의 성립 조건이 ‘비동의’가 아닌 ‘항거 불능할 정도로 폭행과 협박’이 있어야 하고 이를 피해자가 증명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앞서 지난 25일 부산지법 앞에서는 고 구하라 씨 추모 및 사법부 규탄 긴급기자회견이 열렸다. 부산성폭력상담소, 부산여성단체연합, 부산대 여성주의실천동아리 여명, 부산 캠퍼스페미네트워크 등 주최로 열린 행사에는 100명이 넘는 여성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SNS에 올라온 글을 보고 자발적으로 모인 참가자가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사법부는 2차 가해를 중단하라”고 외친 뒤 국화와 양초를 놓고 고인을 추모했다. 그러면서 “가해자는 최종범(구 씨 전 남자친구), 공범은 사법부, 더 이상 한 명도 잃을 수 없다”고 호소했다.
구 씨의 전 남자친구 최종범(28) 씨는 헤어지는 과정에서 구 씨의 팔·다리에 상해를 입히고, 불법촬영한 성관계 동영상을 언론에 제보 및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혐의 등으로 지난 1월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상해 협박 강요 재물손괴는 유죄로 인정했으나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언론에 동영상을 제보해 연예인 생명을 끊겠다고 협박하는 등 여성 연예인인 피해자가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이라고 지적하면서도 “두 사람의 관계를 종합하면 촬영 당시에 명시적 동의를 받지는 않았지만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찍은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무죄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대해 소설가 공지영 씨는 “나이가 이렇게 든 나도 이 정도면 죽음을 생각할 거 같다. 대체 이게 무슨 종류의 지옥같은 폭력인가”라며 법원을 맹비난했다.
앞서 부산대 기숙사에 들어가 여학생을 성폭행하려한 20대 남성에게 법원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여성계를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의 비판이 거셌다. 이재희 부산성폭력상담소장은 “정부와 국회는 성범죄 처벌을 강하게 하려는 시늉이라도 하지만 법원은 검사 구형보다 낮은 형량을 선고하는 등 피해 여성들의 절규를 외면한다”고 지적했다.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