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위터에 매일 ‘도전기’ 올려
- “운동화 사달라고 할 것” 농담도
20년간 치열한 노동현장에서 동고동락해온 두 여성 노동운동가가 부둥켜안았다. 소리 없이 흐느끼는 두 사람의 맞잡은 손은 가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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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숙(왼쪽)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29일 대구 영남대의료원 옥상에서 고공 농성중인 친구 박문진 씨를 만나 부둥켜 안은 채 울먹이고 있다.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노조 제공 |
29일 오후 대구시 대명동 영남대의료원 옥상에서 김진숙(59)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친구인 해고 노동자 박문진(58) 씨가 만났다. 이날 김 위원이 병든 몸을 이끌고 부산에서 출발해 100㎞를 걷고 또 걸은 끝에 친구와 ‘힘겨운’ 상봉을 했다.
국내 최초의 여성용접공인 김 위원은 2011년 노동자를 해고하려는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에 맞서 부산 영도조선소 크레인에서 309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였던 주인공이다.
박 씨는 사측의 부당노동 행위를 규탄하며 의료원 옥상에서 이날로 꼭 182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김 위원 일행은 박 씨를 만나기 위해 지난 23일 부산 노포역에서 출발해 이날까지 꼬박 7일을 걸었다. 김 위원은 “우리 두 사람은 1996년 부산 병원노조 투쟁현장에서 만나 알게 됐고 나이가 같아 친해졌다. 그동안 봉사활동도 다니며 우리나라 노동운동에 대해 치열한 토론을 벌여온 지기”라고 했다.
김 위원의 도전은 한마디로 모험이었다. 그는 6개월 전 유방암 판정을 받고 고난도 수술까지 해 몸도 마음도 파김치처럼 쇠약해진 상태였다. 당연히 주변에서도 말렸다.
하지만 친구를 도와야 한다는 그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트위터를 통해 이 사실을 안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노조 측은 처음에 한사코 만류하다 같이 합류하기로 했다.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노조 지회장 등 3명이 동행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승합차 한 대도 뒤따랐다.
부산 호포에서 출발해 밀양시 밀양역과 청도군 청도역 등을 거쳐 대구 영남대의료원 등까지 100여 ㎞를 걷는 강행군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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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사진. |
김 위원의 도전기는 자신이 그날그날 남긴 트위터에 절절히 소개돼 있다. 그는 트위터에서 “항암후유증, 우울증, 지인기피증, 약물 부작용으로 인한 관절통까지 풀옵션으로 앓는 중이라 그동안 돌보지 못한 아니, 학대한 몸이나 달래려 했다”고 운을 뗀 뒤 “내 오랜 친구인 박문진이 영남대 의료원 옥상에서 176일째(출발하는 날 기준) 매달려 있으니 앓는 것도 사치라 걸어서 박문진에게로 갑니다”고 썼다.
대구로 가는 길에서 애써 건강함을 과시하려는 듯 농담도 올렸다. ‘이틀을 걸으먼서 제가 크레인에 매달려 있을 때 평택에서부터 걸어왔던 쌍용차 동지들을 생각했습니다. 영남대병원이 평택에 있었으면 어쩔 뻔했냐. 박문진이 (옥상에서) 내려오면 운동화 사 달래야지.’
동행한 황태호(47)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부지회장은 “김 위원의 소식을 들은 회사 노조원들은 물론 시민까지 찾아와 격려했다. 노동운동을 넘어 불편한 몸을 이끈 채 친구를 격려하기 위해 먼 길을 나선 한 인간의 모습에 깊이 감명받은 모습이었다”고 털어놨다.
이날 함께한 사람들에 따르면 두 여성 노동가는 “야위었다” “걱정 마라 내 몸은 괜찮으니 힘내라”며 서로 걱정하기에 바빴다. 김 위원은 “힘들면 내려와도 된다”고 위로의 말을 전하며 자신이 크레인 농성 때 입었던 빨간색 패딩점퍼와 목도리, 장갑 등을 건넸다.
박 씨는 “고공농성이 끝내 해를 넘기게 됐지만 김 위원을 비롯한 많은 분의 응원 덕분에 힘이 난다. 끝까지 잘 견뎌내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김 위원은 20분 남짓한 짧은 만남을 끝내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옮겼다.
박동필 기자 fee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