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5선거 부정 투표함 발견되자
- 경남 마산 시민 시위로 번져
- 4·19혁명, 5·18항쟁의 시발점
- 민주화 성지 창원·광주 일대서
- 공연·추모제 등 기념사업 봇물
2020년 경자년(庚子年)은 마산 3·15의거와 4·19혁명이 발생한 지 꼭 60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은 이 두 사건으로 사실상 첫발을 디뎠다. 올해는 또 5·18민중항쟁 40주년이기도 하다. 국가보훈처는 마산 3·15의거와 4·19혁명 60주년, 5·18민중항쟁 40주년 관련 기념행사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민주’의 가치를 모든 국민과 함께 공유하고 계승하는 ‘국민 화합의 장’이 되도록 준비한다는 각오다. 1960년 발발한 마산 3·15의거는 대한민국 현대사에 있어 4·19혁명과 부마민주화운동, 6월항쟁, 5·18민중항쟁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 역사 발전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된 사건이다.
■3·15의거 4·19혁명으로 번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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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시 마산합포구 서성동 몽고정 앞에 조성된 3·15의거탑. 1962년 3·15의거기념사업촉진회가 건립했다. 창원시 제공 |
이승만은 1948년 제헌국회에서 국회의장에 피선돼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이 된다. 1952년 자유당을 창당해 제2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승만은 이른바 ‘사사오입 개헌’을 통해 1956년 3선에 성공했다. 12년간 장기집권 후에도 정권을 잡기 위해 1960년 3·15 부정선거를 자행했다. 3월 15일 치러진 선거 도중 경남 마산에서 사전 투표용지가 담긴 투표함이 발견되자 마산 시민은 선거를 포기하고 학생들과 함께 시위를 일으키게 된다. 이 사건이 3·15의거로 불리는 ‘마산 3·15의거 1차 항쟁’이다.
1차 항쟁이 발생한 지 27일 만인 4월 11일, 1차 항쟁 당시 행방불명됐던 당시 마산상고 1학년 김주열 학생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주검으로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 떠올랐다. 이에 분개한 마산시민은 남성동, 오동동 파출소 앞 등 시내 일원에서 2차 항쟁을 펼쳤으며, 마산 1·2차 항쟁은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같은 해 4월 18일, 고려대 학생 3000여 명은 마산 구속 학생 석방 등을 요구하며 시가 행진을 벌이다 자진 해산했다. 하지만 귀교하던 학생이 정치 깡패로 불리던 대한반공청년단 소속의 폭력배들에게 피습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다음 날 전국적인 4·19혁명으로 번지게 된다. 이승만 정권은 계엄령을 발령하고,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했지만 시민의 저항은 더욱 격해졌다. 마침내 주한 미국대사와 정부 관료들이 대통령의 하야를 권유한다. 결국 이승만은 4월 24일 자유당 총재직을 사임한 뒤 26일에 대통령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난다.
■3·15의거 우리나라 첫 민주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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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9의거의 도화선이 된 김주열 열사의 흉상. 열사가 다녔던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 용마고등학교(옛 마산상고) 담장을 허문 자리에 들어 서 있다. |
3·15의거는 2001년 제정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을 통해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화 운동으로 규정됐다. 의거가 발발한 지 50주년 되던 해인 2010년 3월 12일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또 정부는 4·19혁명을 기리기 위해 1963년 국립 4·19 민주묘지를 건립했다.
3·15의거 60주년을 맞아 3·15의거기념사업회는 창원시와 함께 다양한 기념사업을 준비 중이다. 기념사업회와 시는 3월 24일 3·15의거 부상자, 공로자 유족 등을 위로하기 위한 기념식 전야제 겸 시민 위로공연을 마련한다. 이 밖에 ▷희생자 위령제(4월, 국립 3·15 민주묘지 민주광장) ▷자유·민주·정의라는 외침으로 3·15의거 정신을 소재로 한 연극 ‘너의 역사’ 공연 ▷기념 뮤지컬 (가제) ‘3월의 그들’ 전국 순회 공연 (3~4월) ▷시민걷기대회 (3·15 민주묘지 둘레길 걷기) ▷전국 언론인 초청 민주역사기행 ▷기념 상징물 건립(3·15의거 참여 학생 공로 기념비 등) 등의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3·15의거기념사업회 김장희 회장은 “경남 창원(옛 마산)은 한국 민주주의의 현장이며, 민주주의 전당의 설립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현장성과 상징성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고 강조했다.
‘제60주년 4·19 혁명기념사업회’는 지난 11월 4·19 민주혁명회, 희생자유족회, 공로자회 등 3개 단체가 기념사업회 회장으로 김기병 롯데관광개발 회장을 추대해 다양한 60주년 기념사업을 기획하고 있다. 김기병 회장은 4·19 혁명 당시 한국외국어대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하며, 혁명의 선봉에서 활약한 점이 인정돼 1963년 건국포장을 받았다. ‘제60주년 4·19혁명기념사업회’는 국가보훈처 예산으로 ▷4·19혁명 정신선양 재조명 간담회 ▷60주년 기념 조찬기도회 ▷국내외 오피니언 리더의 대학술토론회 ▷전국 민주화 성지 표지석 순례 ▷60주년 전야 추모제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5·18민중항쟁 범국민적 행사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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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구암동에 조성된 국립 3·15민주묘지 전경. 2002년 국립묘지로 승격했다. |
5·18민중항쟁은 40주년을 맞이한 현재까지 그 진실 여부를 가리기 위한 움직임이 이어지는 민주화 운동이다.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시민과 전라남도민이 민주 정부 수립과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의 퇴진, 계엄령 철폐 등을 요구하며, 신군부에 강력히 대응했다. 당시 광주 시민은 신군부 세력이 집권 시나리오에 따라 실행한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로 인해 발생한 헌정 파괴, 민주화 역행에 항거했다. 이에 신군부는 공수부대를 투입해 폭력적으로 시위를 진압했다. 무장한 시민군과 계엄군 사이에 지속적인 교전이 벌어져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시민은 시신을 수레에 실은 채 마지막 저항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혁명 10일째인 5월 27일 계엄군이 최후의 진압 작전을 펼침으로써 5·18민중항쟁은 막을 내렸다.
‘40주년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는 올해 5·18 행사를 각계 각층의 지혜를 모아 범국민적으로 치르기 위해 국내외 각급 단체를 망라하는 대표자 회의를 신설하고, 오는 2월 20일까지 참여단체를 모집 중이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3·15의거, 4·19혁명, 5·18민중항쟁 등의 기념행사를 현장성과 역사성이 있는 장소에서 규모를 확대해 열겠다”고 말했다. 이종호 기자 jhle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