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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사람 실험카메라 <2> 낯선 이에게 말 걸기- 첫 월급 부모님 선물

파리 쫓듯 손사래에 상처… “대견하다” 덕담에 스르르

  • 신심범 기자
  •  |   입력 : 2020-01-07 19:39:34
  •  |   본지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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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역 광장서 행인 붙잡고 질문

- 60대 男 “내 아들, 안 사줬다”
- 우스갯소리로 기자 칭찬
- 환경미화원 “어떤 선물이든
- 부모님이 좋아하실 거예요”

# 백화점서 때아닌 난상토론

- 중년 여성들 “명품 가방이지
- 뭐니뭐니해도 현금이 최고야”
- 옆자리 女 “캐시미어 목도리
- 아니다, 속옷 한 벌이 좋다”

# 따뜻한 말 건네준 사람들

- 온정을 주려 애쓰는 이에게
- 온기 담은 말로 정성껏 대답

“첫 월급으로 아버지 선물을 사드리려는데, 어떤 게 좋을까요.”

지난달 18일 부산역 광장을 지나는 사람을 붙잡고 다짜고짜 질문했다. 대부분 기차여행의 여독을 풀기도 전이거나, 막 열차에 오르려던 중이었다. 갈 길 바쁜 사람 막아 세운 이유도 우습다. 생면부지 총각이 대뜸 자기 부모님 선물을 골라 달라고 한다. 인터넷에 ‘부모님 선물’을 검색하면 연령·금액대별 온갖 추천 상품이 쏟아지는 시대다. 굳이 모르는 사람에게 부끄러움을 무릅쓰며 물어볼 필요가 없다. 사이비 종교 전도사 또는 다단계 상품 영업원 같은 ‘수상한 놈’으로 몰리기 딱 좋다. 굳이 이런 사람 응대해봐야 시간은 시간대로 빼앗기며 귀찮은 일에 말리기 십상이다. 날씨도 추웠다. 올해로 한국 나이 스물아홉의 숫기 없는 남자인 기자는 ‘쿨하게’ 무시당하길 각오한 상태였다.
   
■‘마상’ 보듬은 따뜻한 한마디

예상대로의 반응이었다. 한 50대 중년 부부는 말을 걸기 무섭게 “우리 그런 거 안 해요”라며 시선을 피한 채 걸음을 옮겼다. 또 다른 한 남성은 기자가 말을 걸자 “뭔데”라며 퉁명스러운 반응을 보이고는 파리 쫓듯 손사래를 쳤다. 유치원생 정도 돼 보이는 아이를 둔 한 여성은 기자의 물음에 “그런 건 당신 어머니 아버지한테 물어보셔야죠”라고 쏘아붙였다. 내상은 각오한 것보다 컸다. 쥐구멍에 숨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요새 말로 ‘마상(마음의 상처)’을 잔뜩 입었다. 부산 사람 특유의 냉랭한 사투리 탓에 더 그랬다.

하지만 웬걸, 기자의 ‘마상’을 보듬어준 것 또한 부산 사람의 따뜻한 말 한마디였다. 부산역을 빠져나오던 한 60대 남성이 그랬다. 양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 표정 없이 걷던 그는 난데없는 ‘아버지 선물’ 질문에 발걸음을 멈췄다. 주머니 속에 넣어둔 손을 양 겨드랑이로 옮겨 팔을 괸 그는 잠시 고민 뒤 건강식품을 사드리라는 조언을 건넸다. “부모님이 아들을 잘 낳았다”는 덕담도 뒤이었다. “우리 아들은 그런 거 안 사줬다”는 우스갯소리를 더하며 기자를 대견해하기도 했다.

70대로 보이는 한 할머니는 “자식이 취직한 것만으로 (부모님이) 고마워하실 것”이라면서도 온라인 쇼핑몰 못지않은 ‘금액대별 상품 추천’에 열을 올렸다. 여러 선물 중에서도 최고는 “뭐니 뭐니 해도 현금”이라는 ‘현답’에는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한 70대 동갑내기 할아버지 일행은 “아무거나 사드려도 된다. 안 사드려도 된다. 아들이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 자랑스러워하실 거다”며 기자를 칭찬했다.

부산역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는 한 어르신은 유구한 전통의 ‘빨간 내복’을 필두로 겨울옷·건강식품·현금 등을 열거했다. 그는 해당 선물을 받았을 때 부모님이 느낄 심리적 만족감을 개별 분석하는 신중함까지 보탰다. 가령 “내복은 요새 잘 입지 않는다. 겨울옷은 부모님만의 스타일(취향)이 있으니 마음에 드시는 걸 선물해드리기 어렵다. 현금은 드려봤자 안 쓰실 거다. 저축했다가 자식에게 돌려주려 하실 거다. 다만 요즘같이 구인난이 심한 때에 친구들과 약주 한잔하시며 아들 자랑을 하기엔 좋을 것 같다”는 식이다. 여러 분석 끝에 어르신이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어떤 선물이 됐든, 부모님이 자식 잘 낳았다고 좋아하실 거예요.”

■“좋겠다, 아들이 선물 사준대서”

같은 달 26일에는 부산 중구 롯데백화점을 찾았다. 이번에는 어머니 선물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지하 1층 라운지에서 담소를 나누던 중년 여성 3명에게 다가가 첫 질문을 건넸다.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어른들도 명품 좋아합니다. 1층 가면 구찌 가방 팔아요. 좀 비싸지만.”

‘명품 답변’에 당황한 기자는 “가격은 적당하지만 진정성 있는 선물로 깜짝 놀라게 해드리고 싶다”고 재차 물었다. “돈 적게 들고 좋은 거 말이죠”라며 농담을 건넨 이들은 “현금을 봉투에 담아서 갖다 드리는 게 최고다. 그래야 어머니가 마음에 드는 선물을 사신다”고 했다. 다른 선물은 어머니의 취향에 맞지 않을 수 있으니, “엄마가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살 수 있을 만한 돈을 드리라”고 했다. ‘돈이 최고’라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오고 가는 말속에는 ‘젊은 총각’을 대견해하며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기쁨이 묻어 있었다.

다른 할머니에게도 물었다. “내가 어릴 때는 내의를 사드리는 게 제일이었다”는 무난한 대답이 나왔다. 그러자 옆자리에 앉아 있던 한 여성이 불쑥 끼어들었다. “요새는 내복 잘 안 입는다. 밍크나 캐시미어 목도리가 좋다. 간단하게 맬 수 있는 목도리가 대세다”는 거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녀의 옆에 앉아 있던 또 다른 여성이 이견을 냈다. “아니다. 속옷 한 벌 해드리는 게 좋다.”

이날 처음 만난 사이인 이들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기자의 어머니 선물로 무엇이 좋을지 토론하기 시작했다. 속옷은 아들이 어머니의 ‘사이즈’를 모르니 선물로 드리기 어렵다, 목도리는 재질이 좋은 걸로 사려면 비용이 제법 든다, 목도리는 장갑도 세트로 같이 사드려야 한다 등 여러 의견이 경합했다. 물론, 결론은 ‘뭘 사드리든 어머니는 정말 기뻐하실 것’이었다. “좋겠다, 아들이 선물 사준대서.”

질문을 끝낸 뒤 기자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준 부산 사람들을 다시 찾아갔다. 처음 보는 낯선 남자가 뜬금없는 걸 질문하는데 왜 그리 정성껏 대답해주셨냐고 물었다. “아들뻘 되는 총각이 부모님을 생각해 선물 사준다고 하니 얼마나 예쁩니까. 그래서 대답해줬죠.” “젊은 사람이 부모님을 위해 뭔가를 해주고 싶어 한다니 얼마나 반갑고 보기 좋은 일입니까.” 한결같은 대답이 이어졌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온정을 주려 애쓰는 이에게 기꺼이 사람의 온기를 담은 따뜻한 말을 건네준, 부산 사람들이었다.

신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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