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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부산 사람 실험카메라 <3> 행인들의 선행 베풀기

버스 놓쳐가며 시각장애인 안내…“누구라도 그리 했을 것”

  • 박호걸 기자 서종영 인턴기자 rafael@kookje.co.kr
  •  |   입력 : 2020-01-14 20:00:40
  •  |   본지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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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컬레이터 역방향 진입

- 시민 “여기 아니예요” 위험 알려
- 50대女, 팔 잡고 안전한 곳 안내

#도시철도 엘리베이터 타기

- 30대女 “위치 알아 도와준 것”
- 농구하러 가던 중학생도 선행

#지하도서 행인과 충돌

- “괜찮으세요” “지팡이 여기 …”
- 길 가던 직장인들 도우며 위로

#중앙대로 횡단보도 건너기

- “지금 건너요” 시민 나란히 걸어
- 신호 바뀌자 車 통제하며 보호

“이제 건너시면 됩니다.”

앞서 뛰어가던 60대 남성이 되돌아와서 말했다. 그제야 선글라스를 낀 기자는 시각 장애인용 지팡이를 이리저리 바닥에 치며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실눈 사이로 들어온 신호등의 파란색 초침은 냉정하게 떨어졌지만, 시각 장애인을 연기하는 마당에 뛰어서 건널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름 모를 60대 남성은 아예 기자 옆에 붙어 에스코트했다. 마치 VIP를 에스코트하는 경호원처럼 신호대기 중이던 차를 향해 손을 들어 통제했다. 3 분의 2 정도 지점에서 빨간불로 바뀌었다. ‘성격 급한 부산 운전자에게 한 소리 듣겠구먼’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신호대기 중이던 운전자 누구도 경적을 울리지 않았다. 오히려 지나가는 시각 장애인이 놀랄까 배려하는 듯했다. 그렇게 기자가 안전하게 횡단보도를 건넌 것을 확인한 후 시크하게 가던 길을 갔다.
   
도시철도 1호선 교대역 인근 시각 장애인 연기
■“어려운 거 아닌데 도움 당연”

지난 8일 기자는 부산 연제구 도시철도 1호선 교대역 인근에서 시각 장애인을 연기했다.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는 부산 시민의 따뜻한 참견을 관찰 카메라로 담는 국제신문 신년 기획 ‘부산온’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이번에는 시각 장애인이 평소 겪을 수 있는 난처한 상황을 설정하고, 부산 시민의 따뜻한 배려와 공감을 관찰할 계획이었다. 기자는 새까만 선글라스를 쓰고 시각 장애인용 지팡이를 들었다. 가능한 눈을 감고 연기했지만, 사고를 막기 위해 이동할 때 잠깐 실눈(?)을 떴음을 실토한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부산지부로부터 주의사항을 듣고 촬영 협조를 받았다.

우선 시각 장애인용 지팡이를 든 기자가 에스컬레이터 역방향으로 진입하려는 것을 시민이 봤을 때 어떻게 반응할지 살폈다. 대부분 “여기 아니예요. 이쪽은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예요”라며 위험을 알려줬다. 기대했던 적극적인 도움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실망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과도한 친절을 베풀면 혹시 장애인의 자존감에 상처를 주지 않을까 ’라고 걱정하는 듯했다.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 차 모(여·53) 씨는 상황을 인지하자마자 기자의 팔을 잡고 안전한 곳으로 이끌었다. 용기를 얻은 기자가 차 씨에게 엘리베이터 있는 곳을 물었더니 선뜻 에스코트를 자처했다. 그는 앞서가며 목소리로 방향을 알려줬고, 엘리베이터에 다다라서는 팔을 잡아 구체적인 위치를 잡아주었다. 엘리베이터에 타자 다른 승객에게 “잠시만요”하고 양해를 구해 자리까지 만들어줬다.

이런 적극적인 도움은 차 씨뿐만이 아니었다. 온천천으로 농구를 하러 가던 중학생 이강현(16) 군은 손을 잡아 기자를 이끌었고, 김미정(여·32) 씨는 버스를 놓치면서도 엘리베이터까지 데려다줬다. 상황이 끝난 뒤 선글라스를 벗고 취재 사실을 알리면서 도움을 준 이유를 물었다. 낯선 사람과 접촉하는 것을 꺼리는 시대여서 도움을 준 데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뜻밖이었다.

차 씨는 “별 뜻 없었다. 그저 위험해 보여서 상황을 알려줬고, 자주 오는 길이라 엘리베이터 위치를 알아서 데려다줬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 군은 “시각 장애인이 상황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서 도와줬을 뿐이다. 다치면 안 되니까”라고 말했다. 김 씨는 “평소 장애인이 일반인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위험해 보였기 때문에 도와줬고, 엘리베이터에 데려다주는 것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며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시민의 말속에 ‘장애인 돕는 것을 거창한 선행이라고 여기는 건 이제 고리타분하다. 그들은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다. 이웃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돕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라는 생각이 묻어 있었다.

■“나쁜 ○○” 함께 화내며 공감

다음으로 시각 장애인이 지하도에서 뛰어가던 사람과 충돌해 지팡이를 놓치는 상황을 설정하고 시민의 반응을 살폈다. 지팡이에 의지해 걸어가던 기자가 반대 방향에서 뛰어오던 인턴기자와 부딪혀 지팡이를 떨어뜨렸다. 바쁜 걸음을 가던 50대 여성이 그 모습을 보곤 꽤 먼 거리를 되돌아와 지팡이를 쥐여줬다.

같은 상황에서 직장인 김경택(36) 씨와 강정웅(40) 씨는 함께 화를 내며 위로까지 해줬다. 김 씨는 곧바로 지팡이를 주워 기자에게 와 “괜찮으세요”라고 물었다. 그리곤 지팡이를 손에 쥐여주며 “여기 있습니다”라며 안심시켰다. 이후 가던 방향으로 안내하며 “이쪽으로 가시면 됩니다”라고 에스코트했다. 김 씨의 직장 동료 강 씨도 옆에서 “이제부터 계단이다. 조심하라”며 기자를 도왔다. 기자는 기쁜 마음을 속으로 숨기고 “서면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 “근처에 핸드레일이 없느냐”고 물으며 계속 도움을 요청했다. 그들은 굉장히 바빠 보였지만 천천히 걸으며 기자를 이끌었다. 계단을 올라가는데 강 씨가 김 씨에게 “아까 (부딪히고 간 사람이) 애였나”라고 물었다. 사과도 없이 뛰어 가버린 인턴기자에게 단단히 화가 난 듯했고, 기자는 공감해주는 강 씨가 굉장히 고마웠다.

   
개찰구 앞에서 취재 사실을 밝히고 인터뷰를 시도했다. 도움의 이유를 묻자 두 명은 짠 듯이 똑같이 말했다. “이 정도는 도움도 아니다. 누구라도 이렇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아까 치고 간 사람도 연기자냐”고 물었고, 기자가 “인턴기자였다. 연기가 괜찮았냐”라고 답하자 “나쁜 ○○”라며 웃었다. 강 씨는 “굉장히 무례해서 나까지 기분이 언짢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횡단보도에서 신호 바뀐 것을 인지 못 하는 상황을 설정했다. 두 차례의 실험에서 모두 도움을 받았다. 60대 남성과 40대 여성은 기자에게 “지금 건너면 된다”고 말하고 기자와 나란히 걸었다. 보행 신호가 끝나 빨간 불이 되어서도 차를 막아 함께 횡단보도를 건넜다. 마지막까지 뒤를 돌아보며 기자가 잘 가는지를 확인한 후에야 가던 길로 향했다.

기자는 시각 장애인을 연기하며 평소에 생각할 수 없었던 불편함을 느꼈다. 신호등 기둥에 신호를 소리로 알려주는 시각 장애인용 버튼이 있지만, 찾아서 누르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일반인에겐 불편함이 없는 생활 공간이 장애인에겐 상처를 줄 수 있는 위험 지대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부산 시민의 따뜻한 배려와 도움으로 어설펐던 체험기는 안전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날씨는 추웠지만, 마음은 따뜻했다. 부산 사람은 무심하게 도와주고, 혹시 상대 자존심이 상할까 배려했다. 이 정도면 츤데레의 도시, 부산은 살 만한 곳 아닌가.

박호걸 기자 서종영 인턴기자 rafael@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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