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대까지 집창촌 등 번성
- 2013년부터 주민이 변화 주도
- 벽화 등 꾸미고 음악정원 조성
- 윤이상·박경리 테마로 길 가꿔
- 서포루, 최고의 해안뷰로 꼽혀
- 민관협력 마을 전국 모범 사례
- 청년사업 지원 등 변신 계속돼
벽화마을로 유명한 경남 통영의 동피랑 언덕과 마주보고 있는 서피랑(서쪽의 비탈) 언덕이 뜨고 있다. 동피랑과 함께 양대 달동네로 통영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었지만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면서 핫플레이스로 급부상했다. 동피랑처럼 화려하고 번잡하진 않지만 빼어난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지역출신 거장인 윤이상과 박경리의 예술세계에 스토리텔링을 입혀 명품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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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피랑 99계단 입구에 있는 서피랑공작소. 아기자기한 조형물을 만드는 곳이다.
박현철 기자 |
■한때 집창촌 변화의 바람
서피랑 언덕은 한때 집창촌이 들어섰던 아픈 역사를 간직한 마을이다. 6·25전쟁 중에 상이군인을 치료하는 임시병원이 인근에 들어서면서, 술집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고, 이들 술집이 매춘에 나서면서 집창촌으로 이어졌다. 전쟁은 끝났지만 수산업이 호황이던 1980년대까지 통영항에 정박하는 선원들이 찾으면서 번성을 누렸다. 그러다가 수산업이 차츰 쇠퇴기를 맞으면서 1990년대 후반 자취를 감췄지만 여전히 지역민조차 찾기를 꺼려하던 천덕꾸러기 동네였다.
그런 서피랑에 2013년부터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당시 통영보건소에서 ‘지역사회 건강조사’를 실시했는데 서피랑 언덕을 끼고 있는 명정동이 가장 낙후된 환경으로 소외감과 자살충동을 많이 느끼는 지역으로 조사됐다.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마을주민들이 ‘건강위원회’를 발족하고 웃음치료교실 등을 집중적으로 추진하면서 변화가 나타났다. 마을 주 간선도로인 통영적십자병원~충렬사 광장 500여 m 구간을 ‘금연거리’와 ‘인사하는 거리’로 지정하면서 마을은 활력을 찾기 시작했다.
마을주민의 웃는 모습을 담은 사진 49점을 마을 곳곳에 설치했다. 또 거리 곳곳에 아기자기한 예술작품을 설치했다. 집창촌을 오르내리던 99계단은 벽화와 조형물이 조성된 예술작품 계단으로 다시 태어나 서피랑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변신했다.
■피아노 음악공원과 문학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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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피랑 음악공원에 조성된 국내 최대 규모의 피아노 계단. |
99계단 옆에는 서피랑에서 가장 가파른 서호벼락당이 있는데 이 곳은 음악정원으로 탈바꿈했다. 언덕 비탈면이 거의 직각인 서호벼락당은 1999년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나면서 인명피해가 발생한 곳이기도 하다. 이 곳을 층층 형식으로 재해복구하면서 국내 최대 규모의 피아노계단을 조성했다. 지금도 실제 연주가 가능하다. 피아노계단 맞은편에는 연주 지휘석까지 마련돼 있고, 수령 250년 된 후박나무가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면서 그 주위로 관람석을 만들었다.
피아노계단 일대는 각종 음표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들어서고 유채꽃밭과 어울려 음악공원으로 탈바꿈했다. 99계단과는 오솔길(200m)로 연결해 사색과 힐링의 장소로 꾸몄다. 서호벼락당에는 사슴도 2마리 방목해 놓았다.
서피랑 언덕 아래 골목길에는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선생의 초등학교 등굣길을 활용한 ‘윤이상과 함께 학교 가는 길’을 조성했다. 이 골목길 중간에는 윤보선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공덕귀 여사의 생가도 있다. 또 언덕 오른편 아랫동네가 문학거장인 박경리 선생의 출생지이자 ‘김약국의 딸들’ 주 무대로, 문학 투어도 수시로 개최하면서 이미지 변신에 대성공했다.
■서포루공원 비경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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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피랑공원에 설치된 ‘항해하는 배 전망대’. 사진 찍기 좋은 명소다. |
때맞춰 서피랑 정상의 서포루 복원사업도 추진되면서 집창촌이 들어섰던 마을 언덕 집은 모두 철거되고 공원으로 조성됐다. 조선시대 당시 삼도수군통제영(지금의 해군사령부) 본영이었던 통영성에는 3대 포루가 있었다. 통제영 중심건물인 세병관 뒷편의 여항산에 위치한 북포루, 동피랑 정상의 동포루, 서피랑 정상의 서포루가 3대 포루다. 통제영 남쪽은 바다라 포루가 없다. 서포루는 가장 늦게 복원됐지만 북포루와 동포루에 비해 주위 공간이 넓고 통제영과 통영 중심항인 강구안, 맞은편 동피랑, 바다 건너 미륵도 등이 한눈에 들어 와 사진찍기 명소로 알려지면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곳에는 국민가요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원곡인 ‘돌아와요 충무항에’를 기리는 노래비도 조성돼 눈길을 끈다. ‘꽃 피는 미륵산에 봄이 왔건만/ 임 떠난 충무항은 갈매기만 슬피 우네...’ 노래비 앞에 서면 자동센서가 작동해 원곡이 자동적으로 흘려 나온다. 통영 출신의 김해일이 음반을 발표한 다음 해 안타깝게도 요절하면서 서서히 사라져간 노래를 조용필이 공전의 히트를 시키며 국민가요가 됐다. 노래비 옆에 있는 바다로 항해하는 듯한 눈높이를 맞춘 ‘항해하는 배 전망대’도 사진 찍기 좋은 명소다.
■젊음 거리 여전히 변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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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피랑 랜드마크인 99계단. 집창촌을 오르내리던 계단이 예술작품으로 변신했다. |
서피랑이 차츰 알려지고 관광객이 즐겨 찾으면서 마을은 젊어지고 있다. 서피랑 언덕에 오르기 전인 주 간선도로 양옆으로 카페와 책방, 식당, 공방 등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시는 지난달 언덕 아래에 청년지원 사업을 제공할 통합서비스공간인 ‘통영청년세움’을 개소했다. 청년들에게 활동공간을 제공하고, 취·창업, 창작·문화활동을 지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달 말부터 본격 운영되면 ‘젊음의 거리’로 또다시 도약할 것으로 기대된다.
민관협력형 마을 운영 성공 사례로 소문 나면서 전국 각지에서 벤치마킹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는 20여 곳, 2018년에는 30여 곳에서 공식 방문했다.
서피랑은 여전히 변신 중이다. 음악정원과 99계단을 이어주는 오솔길에 꽃 터널을 조성했고, 서포루 주위에 철쭉을 대규모로 심어 만개하는 첫해인 올 봄 서피랑 꽃 축제도 준비 중이다. 2017년부터는 마을을 더욱 널리 알리기 위해 제법 규모가 큰 ‘서피랑 문화축제’와 ‘은행나무길 차없는 거리 축제’ 등을 열어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다. 박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