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깜빡이를 켜면 차선변경을 막고
- 찰나의 지체에도 경적 울린다는
- 부산의 ‘과격한’ 운전에 대한 편견
- 일부러 초보운전인 척 머뭇머뭇
- 전진 후진 반복하며 주차 못해도
- 따라붙은 부산 차들 ‘빵빵’ 안 해
- 아예 주차 부탁하며 운전대 맡기자
- “누구나 초보였던 시절 있었잖아요”
- 사고날 수 있는데도 흔쾌히 응해줘
“부산에서 초보운전자를 연기하라고요? 엄청 욕먹을 것 같은데…”
기자가 국제신문 신년기획 ‘부산 사람 실험카메라’ ⑤편에서 맡은 역할은 ‘주차를 못 해 낑낑거리는 초보 운전자’다. 연기를 하려니 등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부산은 운전 습관이 험하기로 악명 높은 도시 아닌가. 깜빡이를 켜면 오히려 속도를 높여 차선 변경을 못 하게 막고, 잠시의 머뭇거림에도 경적을 사정없이 울려 초보 운전자를 주눅 들게 하는…. 부산 사람인 내게도 초보 시절은 악몽 그 자체였다. 부산에서 초보라니, 그것도 주차장에서 주차하지 말고 버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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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7일 부산시 금정구 한 공영주차장에서 시민 김진모(30·왼쪽) 씨가 초보운전자의 주차를 도와주고 있다. 이석교 기자 |
■‘츤데레’ 부산 운전자
울컥한 심정을 뒤로하고 기자는 지난 14일과 27일 두 차례에 걸쳐 부산 금정구 부산대역 공영주차장에서 ‘초보 운전자’를 연기했다. 결전의 장소(?)를 둘러보니 주차가 아주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운전 경력이 4년이고, 경차였기 때문이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성격 급하기로 소문난 부산 운전자의 반응이었다. 그래서 차량 뒷유리에 A4 용지 4장을 붙였다. 각 종이에 ‘초’ ‘보’ ‘운’ ‘전’이라는 글자만 커다랗게 적어 100m 밖에서도 보이도록 했다. 여기에 작은 글자로 ‘주차가 좀 느려요’라는 문구도 보탰다. 욕을 덜 먹기 위한 일종의 ‘부적’이었다. 촬영 전 부산시설공단으로부터 주의사항을 듣고 협조를 받았다.
촬영에 들어갔다. 주차선 간격을 맞추지 못해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는척 했다. 룸미러를 통해 보니 뒤에 자동차 한 대가 다가왔다. 운전대를 쥔 손에 땀이 나고,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과거 초보 운전자 시절이 떠올랐다. 당시에도 주차가 가장 어려웠다. 운전학원에서 배운 대로 사이드미러를 보면서 후진하면 주차선이 맞지 않아 낭패를 당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거기다 다른 차가 다가오면 마음이 급해져 급기야 ‘멘붕’ 상태에 빠져버렸다. 평소 조용하던 전화기는 왜 하필 그럴 때마다 울려 사람을 더 정신없게 만들던지…. ‘내가 이러려고 비싼 돈 주고 차를 샀나’하는 자괴감과 함께 그냥 포기하고 울어버리고 싶었던 적도 있었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의외였다. 전진과 후진을 두 차례 반복하는 사이 뒤에 따라붙은 A 차는 경적 한 번 울리지 않았다. 오히려 6, 7m의 거리를 두고 정차했다. 너무 가깝게 붙으면 초보 운전자의 마음이 급해질 수 있어 배려하는 것이었다. A 차 뒤로 서너 대의 차가 늘어섰다. 하지만 그 누구도 기자를 향해 경적을 울리며 압박하지 않았다. 오히려 베테랑 아버지가 초보 운전자 아들의 주차 연습을 지켜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신경 쓰지 말고, 천천히 주차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또 다른 실험에서 B 차도 마찬가지였다. 낑낑거리며 주차하는 1, 2분 동안 멀찍이 떨어져서 경적 한 번 울리지 않고 기다려줬다. B 차 운전자는 주차가 끝나 깊은숨을 내쉬는 기자를 향해 평생 잊을 수 없는 미소 한 방(?)을 날리고 갔다. 그 미소의 의미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는 “고생했어요. 주차 100점”이라고 했을 것이다. 확신한다.
■“나도 초보였다” 공감하며 부탁 들어줘
“운전 못 하면 차를 가지고 나오지 말던가!” 이런 종류의 욕 듣는 것쯤은 각오(?)하고 취재에 나섰던 기자는 생각지도 못한 부산 운전자의 친절함에 당황했다. ‘내가 부산 운전자에 대해 너무 편견을 갖고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 더 용기를 내 적극적인 도움을 청하기로 작전을 바꿨다. 주차를 시도하다 실패하고, 주차를 대신 해달라고 요청했다. 남의 차 운전대를 잡는 일. 그건 사고가 나면 좋지 않은 일에 휘말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실패하더라도 상처를 받는 대신 이해하자고 마음먹고 다시 촬영에 들어갔다.
기자는 차를 세우고 뒤에 대기 중이던 차로 향했다. 황준섭(25) 씨가 창문을 열었다. 기자는 “죄송한데 제가 초보라 주차를 못 해서요. 실례가 안 된다면 대신 좀 해주실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그는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흔쾌히 “네, 잠시만요”라고 말한 후 자신의 차를 주차하고 기자 차 운전대를 잡았다. 능숙하게 주차를 끝낸 그에게 고마움을 표하자 “괜찮아요”라고 웃으며 자기 볼일을 보러 갔다.
느닷없는 주차 요청에 응한 것은 황 씨뿐만 아니었다. 가족과 함께 지나가던 김진모(30) 씨도, 주차 후 뛰어갈 정도로 급한 약속이 있었던 박 모(42) 씨도 흔쾌히 주차를 해줬다. 이날 기자는 총 7명에게 주차를 요청했는데, 한 명도 예외 없이 주차를 해주었다.
취재 사실을 밝히고 도움의 이유를 물었다. 황 씨는 “나도 운전 경력이 얼마 안 돼 동병상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이 당황한 것 같았고, 예전 생각도 나서 도와주고 싶었다”며 웃었다. 임모(38) 씨는 “아까 오면서 봤는데 저쪽에서도 주차를 시도하다 실패하고 결국 여기까지 오더라. 그래서 진짜 힘들겠다고 생각해서 도와줬다”고 말했다. 허예진(32) 씨는 “나도 초보일 때 주차가 가장 힘들었다. 그래서 도와준 거고 거창한 일이 아니다”고 대답했다.
실험에 참여한 시민은 부산에서 운전하는 것에 대한 솔직한 생각도 밝혔다. 황 씨는 “부산은 왼쪽으로 차선을 바꾸려면 오른쪽으로 페이크를 주고 바꿔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운전이 험하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듯 초보운전을 보면 방어 운전해주고 배려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임 씨는 “노란 신호에는 지나가면 안 된다고 배웠는데, 실제 노란 불에 멈추면 뒤에서 빵빵거리고 난리가 난다”며 “면허 딸 때 배운 기본만 잘 지켜도 즐거운 도로가 될 것 같다”고 강조했다.
생각해보면 누구나 초보였던 시절이 있었다. 기자도 4년 전 처음 차를 운전했을 때 주차하면서 진땀을 빼고, 차가 긁혀 속이 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새부턴가 운전이 익숙해졌고, 급한 일이 있을 때는 초보를 윽박질렀다. 마치 나는 처음부터 운전을 잘했던 것처럼 예전 기억은 까맣게 잊혔다. 하지만 이번 실험카메라를 통해 부산 시민의 따뜻한 공감을 경험하면서 내 마음속 한편에 잠자던 공감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되살아난 느낌이다. 회사로 복귀하는 길, 운전대는 따뜻했다.
김채호 기자 chaeh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