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부산 사람 실험카메라 <5> 주차장서 초보운전 만났을때

낑낑대는 초보 대신 군말없이 주차…누가 부산 운전 험하다고 했습니까

  • 김채호 기자 chaeho@kookje.co.kr
  •  |   입력 : 2020-01-28 19:52:31
  •  |   본지 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깜빡이를 켜면 차선변경을 막고
- 찰나의 지체에도 경적 울린다는
- 부산의 ‘과격한’ 운전에 대한 편견

- 일부러 초보운전인 척 머뭇머뭇
- 전진 후진 반복하며 주차 못해도
- 따라붙은 부산 차들 ‘빵빵’ 안 해

- 아예 주차 부탁하며 운전대 맡기자
- “누구나 초보였던 시절 있었잖아요”
- 사고날 수 있는데도 흔쾌히 응해줘

“부산에서 초보운전자를 연기하라고요? 엄청 욕먹을 것 같은데…”

기자가 국제신문 신년기획 ‘부산 사람 실험카메라’ ⑤편에서 맡은 역할은 ‘주차를 못 해 낑낑거리는 초보 운전자’다. 연기를 하려니 등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부산은 운전 습관이 험하기로 악명 높은 도시 아닌가. 깜빡이를 켜면 오히려 속도를 높여 차선 변경을 못 하게 막고, 잠시의 머뭇거림에도 경적을 사정없이 울려 초보 운전자를 주눅 들게 하는…. 부산 사람인 내게도 초보 시절은 악몽 그 자체였다. 부산에서 초보라니, 그것도 주차장에서 주차하지 말고 버티라니….
   
지난 17일 부산시 금정구 한 공영주차장에서 시민 김진모(30·왼쪽) 씨가 초보운전자의 주차를 도와주고 있다. 이석교 기자
■‘츤데레’ 부산 운전자

울컥한 심정을 뒤로하고 기자는 지난 14일과 27일 두 차례에 걸쳐 부산 금정구 부산대역 공영주차장에서 ‘초보 운전자’를 연기했다. 결전의 장소(?)를 둘러보니 주차가 아주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운전 경력이 4년이고, 경차였기 때문이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성격 급하기로 소문난 부산 운전자의 반응이었다. 그래서 차량 뒷유리에 A4 용지 4장을 붙였다. 각 종이에 ‘초’ ‘보’ ‘운’ ‘전’이라는 글자만 커다랗게 적어 100m 밖에서도 보이도록 했다. 여기에 작은 글자로 ‘주차가 좀 느려요’라는 문구도 보탰다. 욕을 덜 먹기 위한 일종의 ‘부적’이었다. 촬영 전 부산시설공단으로부터 주의사항을 듣고 협조를 받았다.

촬영에 들어갔다. 주차선 간격을 맞추지 못해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는척 했다. 룸미러를 통해 보니 뒤에 자동차 한 대가 다가왔다. 운전대를 쥔 손에 땀이 나고,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과거 초보 운전자 시절이 떠올랐다. 당시에도 주차가 가장 어려웠다. 운전학원에서 배운 대로 사이드미러를 보면서 후진하면 주차선이 맞지 않아 낭패를 당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거기다 다른 차가 다가오면 마음이 급해져 급기야 ‘멘붕’ 상태에 빠져버렸다. 평소 조용하던 전화기는 왜 하필 그럴 때마다 울려 사람을 더 정신없게 만들던지…. ‘내가 이러려고 비싼 돈 주고 차를 샀나’하는 자괴감과 함께 그냥 포기하고 울어버리고 싶었던 적도 있었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의외였다. 전진과 후진을 두 차례 반복하는 사이 뒤에 따라붙은 A 차는 경적 한 번 울리지 않았다. 오히려 6, 7m의 거리를 두고 정차했다. 너무 가깝게 붙으면 초보 운전자의 마음이 급해질 수 있어 배려하는 것이었다. A 차 뒤로 서너 대의 차가 늘어섰다. 하지만 그 누구도 기자를 향해 경적을 울리며 압박하지 않았다. 오히려 베테랑 아버지가 초보 운전자 아들의 주차 연습을 지켜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신경 쓰지 말고, 천천히 주차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또 다른 실험에서 B 차도 마찬가지였다. 낑낑거리며 주차하는 1, 2분 동안 멀찍이 떨어져서 경적 한 번 울리지 않고 기다려줬다. B 차 운전자는 주차가 끝나 깊은숨을 내쉬는 기자를 향해 평생 잊을 수 없는 미소 한 방(?)을 날리고 갔다. 그 미소의 의미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는 “고생했어요. 주차 100점”이라고 했을 것이다. 확신한다.

■“나도 초보였다” 공감하며 부탁 들어줘

   
“운전 못 하면 차를 가지고 나오지 말던가!” 이런 종류의 욕 듣는 것쯤은 각오(?)하고 취재에 나섰던 기자는 생각지도 못한 부산 운전자의 친절함에 당황했다. ‘내가 부산 운전자에 대해 너무 편견을 갖고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 더 용기를 내 적극적인 도움을 청하기로 작전을 바꿨다. 주차를 시도하다 실패하고, 주차를 대신 해달라고 요청했다. 남의 차 운전대를 잡는 일. 그건 사고가 나면 좋지 않은 일에 휘말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실패하더라도 상처를 받는 대신 이해하자고 마음먹고 다시 촬영에 들어갔다.

기자는 차를 세우고 뒤에 대기 중이던 차로 향했다. 황준섭(25) 씨가 창문을 열었다. 기자는 “죄송한데 제가 초보라 주차를 못 해서요. 실례가 안 된다면 대신 좀 해주실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그는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흔쾌히 “네, 잠시만요”라고 말한 후 자신의 차를 주차하고 기자 차 운전대를 잡았다. 능숙하게 주차를 끝낸 그에게 고마움을 표하자 “괜찮아요”라고 웃으며 자기 볼일을 보러 갔다.

느닷없는 주차 요청에 응한 것은 황 씨뿐만 아니었다. 가족과 함께 지나가던 김진모(30) 씨도, 주차 후 뛰어갈 정도로 급한 약속이 있었던 박 모(42) 씨도 흔쾌히 주차를 해줬다. 이날 기자는 총 7명에게 주차를 요청했는데, 한 명도 예외 없이 주차를 해주었다.

취재 사실을 밝히고 도움의 이유를 물었다. 황 씨는 “나도 운전 경력이 얼마 안 돼 동병상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이 당황한 것 같았고, 예전 생각도 나서 도와주고 싶었다”며 웃었다. 임모(38) 씨는 “아까 오면서 봤는데 저쪽에서도 주차를 시도하다 실패하고 결국 여기까지 오더라. 그래서 진짜 힘들겠다고 생각해서 도와줬다”고 말했다. 허예진(32) 씨는 “나도 초보일 때 주차가 가장 힘들었다. 그래서 도와준 거고 거창한 일이 아니다”고 대답했다.

실험에 참여한 시민은 부산에서 운전하는 것에 대한 솔직한 생각도 밝혔다. 황 씨는 “부산은 왼쪽으로 차선을 바꾸려면 오른쪽으로 페이크를 주고 바꿔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운전이 험하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듯 초보운전을 보면 방어 운전해주고 배려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임 씨는 “노란 신호에는 지나가면 안 된다고 배웠는데, 실제 노란 불에 멈추면 뒤에서 빵빵거리고 난리가 난다”며 “면허 딸 때 배운 기본만 잘 지켜도 즐거운 도로가 될 것 같다”고 강조했다.

생각해보면 누구나 초보였던 시절이 있었다. 기자도 4년 전 처음 차를 운전했을 때 주차하면서 진땀을 빼고, 차가 긁혀 속이 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새부턴가 운전이 익숙해졌고, 급한 일이 있을 때는 초보를 윽박질렀다. 마치 나는 처음부터 운전을 잘했던 것처럼 예전 기억은 까맣게 잊혔다. 하지만 이번 실험카메라를 통해 부산 시민의 따뜻한 공감을 경험하면서 내 마음속 한편에 잠자던 공감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되살아난 느낌이다. 회사로 복귀하는 길, 운전대는 따뜻했다.

김채호 기자 chaeho@kookje.co.kr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대, 아시아대학평가 76위…韓 국립대 1위
  2. 2빚더미 회사에…돈 더 빌려줘 체불 해결하려는 능인선원
  3. 3도시철 화명·수정역 사이 중간역 무산…용역비만 날렸다
  4. 4수의계약 vs 경쟁입찰…북항 돔 부지매입 공방
  5. 5동남아 선정 미식여행지 부산 ‘금정산+온천’ 첫선
  6. 6‘블루 웨이브’ 환호한 美증시, 퍼렇게 질린 韓증시(종합)
  7. 7시민공원서 버스킹 즐긴다…전용 공간 추진
  8. 8[기고] 부산 관광 다음 키워드는 ‘건축관광’
  9. 9부산으로 이주하고, 먼 여행 떠나고…두 작가 그림이 달라졌다
  10. 10금정구 제2체육센터, 중투심서 또 고배
  1. 1빚더미 회사에…돈 더 빌려줘 체불 해결하려는 능인선원
  2. 2홍익표 정무수석 사의 표명…후임에 최인호 HUG 사장 거론
  3. 3김민석, 신천지 논란에 “죄송…조사결과 공개해도 문제”
  4. 4청와대 정무수석에 최인호 HUG 사장 지명
  5. 5청해부대 임무, 호르무즈 650㎞ 앞까지 확대…해상초계기도 투입(종합)
  6. 6회생인가 촉구 시민 목소리 1차분 6일 법원 제출
  7. 7[속보] 이 대통령 지지율 소폭 반등한 41%…민주36%·국힘 28%
  8. 8이 대통령, 법무장관 후보자에 이용철 지명…국세청장엔 안덕수
  9. 9김민석, 신천지 논란 재차 사과…“상처 입은 모든 분께 죄송”
  10. 10'조작기소 특검법' 오늘 與 주도 국회 본회의 처리 전망
  1. 1동남아 선정 미식여행지 부산 ‘금정산+온천’ 첫선
  2. 2‘블루 웨이브’ 환호한 美증시, 퍼렇게 질린 韓증시(종합)
  3. 3국내양식 향어 20여년간 간흡충 감염 ‘0’
  4. 4부산 외국인 관광객 400만시대 성큼... 카드소비 1조 돌파
  5. 5비에 화약 젖을라 손길 분주…400m 대형 불꽃 ‘카운트다운’
  6. 6팔란티어 AI와 함께 만든다…부산 신발업체 창신 ‘혁신 점프’
  7. 7비수도권 미분양 적체…LH 매입 신청 86% 탈락
  8. 82005 APEC 이벤트서 대표축제로…100만 인파관리 ‘근육’ 키웠다
  9. 9수능날 증시 10시 개장…애프터마켓 오후 5~8시
  10. 10한 달 새 금융사 37곳 47만 건 해킹…털린 돈도 10억
  1. 1부산대, 아시아대학평가 76위…韓 국립대 1위
  2. 2도시철 화명·수정역 사이 중간역 무산…용역비만 날렸다
  3. 3수의계약 vs 경쟁입찰…북항 돔 부지매입 공방
  4. 4시민공원서 버스킹 즐긴다…전용 공간 추진
  5. 5금정구 제2체육센터, 중투심서 또 고배
  6. 6[속보]혼자걷던 여성 5차례나 범죄대상 물색, 성폭행 혐의 30대 男 징역 4년 선고
  7. 7농어촌 기본소득 공모 탈락 거창군, 자체 조례 제정해 ‘거창형 기본소득’ 추진
  8. 8왼쪽 팔·다리 못 써 휠체어 의존…홀로 병마와 싸우는 60대
  9. 9신비로운 심해로 초대합니다 해운대빛축제
  10. 10황령산 봉수대 영문 안내판 설치키로
  1. 1승부는 원점…‘홈런 공장’ 대구서 거포들의 전쟁
  2. 2태권도, 北 전통무술로 각인될라
  3. 3페이즈 신들린 블로킹 9개…읏맨, 시작부터 웃었다
  4. 4거인 4인방 APBC(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첫 우승 이끈다…한동희·최준용 중책
  5. 5롯데 전설 故 최동원, 야구인 최초 ‘올해의 스포츠영웅’
  6. 6코르다, LPGA 올해의 선수상 조기 확정
  7. 7동의대 미식축구부 타이거볼 4강 진출
  8. 8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9. 92027 아시안컵 내년 12월로 연기…차기 감독 선임 여유
  10. 10KLPGA 상금왕·대상 놓고 ‘림-솔(서교림·김민솔) 대전’
우리은행
난치병 환우에 새 생명을
왼쪽 팔·다리 못 써 휠체어 의존…홀로 병마와 싸우는 60대
민선9기 지역일꾼 만나다
“제조업 AI 전환 적극적 추진…‘부산의 심장’ 활력 되찾겠다”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