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부산 사람 실험카메라 <6> 지갑 잃어버린 군인 만났을때

“복귀할 차표 값이 없지 말입니다” 곤경 처한 군인에 지갑 연 시민들

  • 국제신문
  • 이석교 기자 seokgyo@kookje.co.kr
  •  |  입력 : 2020-02-04 19:37:58
  •  |  본지 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지갑을 잃어버려서 부대 복귀를 못 하고 있습니다. 혹시 차표 좀 끊어 주실 수 있나요?”

국제신문 신년기획‘부산 사람 실험카메라’ ⑥편에서 기자가 맡은 역할은 ‘휴가를 마치고 복귀하는 날 지갑을 잃어버려 차표 값을 빌리는 군인’이다. 5년 전 첫 휴가 복귀 때가 떠올랐다. 3박 4일 짧은 첫 휴가를 보내고 부대로 복귀하는 날, 차라리 어디 한 곳 부러져 복귀를 못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만큼 군인에게 휴가 복귀는 심경을 복잡하게 만드는 단어다. 그런 날 지갑까지 잃어버렸다는 건 끔찍하다. 군인이 복귀 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탈영 아닌가. 제시간에 못 가 부대에 비상이 떨어지고, 성격 안 좋은 중대장이라도 만났을 땐 영창에 가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생각만 해도 숨이 턱 막혔다.

■계속되는 거절

   
지난달 21일 부산종합버스터미널에서 시민 최일식(59) 씨가 도움을 요청하는 군인 연기자에게 차비 1만 원을 건네고 있다. 동영상 캡쳐
촬영은 부산종합버스터미널주식회사의 협조를 받아 지난달 21일 부산 금정구 노포동의 부산종합버스터미널 대합실에서 진행됐다. 부산종합버스터미널은 군부대가 많은 강원도로 가는 버스 노선이 몰려 있어 군인을 연기하기 최적의 장소다. 촬영 전 대합실을 둘러봐도 역시 군인이 많았다. 기자는 최대한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전역 마크가 박힌 기자의 군복 대신 공익 근무를 마친 지인의 군복을 빌려 입었다. 공익은 평상복을 입고 출근하기 때문에 베레모와 야전상의가 거의 새것과 다름없었다. 군화 끈을 고쳐 매고 촬영에 임했다.

“저기 제가 지갑을 잃어버려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 50대 여성이 내 눈을 피해 지나갔다. 40대 후반의 여성도 “돈 없어요”라며 도망치듯 가버렸다. 60대 여성에게 “번호를 주면 꼭 돌려 드릴게요”라고 말했지만 허사였다. 낯선 이와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 힘들었다. 한 시민은 말을 거는 기자를 피해 왔던 길로 돌아가기도 했다. 서운한 감정이 없지 않았지만, 사실 당연한 것이었다. 기자도 과거 지하철이나 학교 근처에서 낯선 사람이 말을 걸면 피했다. 그때는 말을 거는 낯선 사람은 전부 사이비 종교단체 신자나 휴대전화 영업사원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내가 그런 사람이 돼 버렸다. 입장이 바뀌니 참 죽을 맛이었다. 처음 네 번의 시도는 모두 실패했다. 실패가 늘어갈수록 초조하고, 주눅이 들어 더욱 말 걸기가 어려워졌다.

다섯 번째 시도 만에 드디어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20대 남성을 만났다. 기자는 “부대 복귀를 해야 하는데 지갑과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 차표를 끊어줄 수 있느냐. 계좌번호나 휴대전화 번호를 주면 반드시 갚겠다”며 도움을 청했다. 그는 “사정은 알겠지만 나도 내 차표를 살 1만 원밖에 없다. 카드가 없어 도와주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20대 여성도 기자의 말을 들은 뒤 도울 여력이 없다고 했다. 거절의 말이었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낯선 사람의 말을 무시하고 지나치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고 걱정해준 것만 해도 감사했다.

■“군인이라 믿는다”

   
연이은 실패 끝에 첫 성공 사례는 같은 군인에게서 나왔다. 기자가 군복을 입은 군인 2명에게 다가가 상황을 설명하니 김원광(23) 씨가 “지갑을 어디에서 잃어버린 겁니까”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옆에 있던 최유동(23) 씨가 “어디까지 가냐”고 묻더니 전화번호를 받은 후 매표소로 향했다. 홀아비 심정 과부가 안다더니 첫 성공이 군인일 줄이야. 기자는 매표소 앞에서 비로소 취재 사실을 밝히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알고 보니 김 씨와 최 씨는 육군에서 군 생활을 한 후 이날 제대해 집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갓 전역해선지 아직 군인의 절도가 몸에 밴 두 사람은 도움의 이유도 간단명료하게 설명했다. 김 씨는 “전역하는 날 좋은 일 하자는 생각이었다. 또 민간인이라면 약간 의심했을 텐데 같은 군인이라서 믿었다”고 말했다. 최 씨는 “신병 휴가 때 제때 복귀하지 못하면 얼마나 곤란해질지 아니까…”라며 웃었다. 최 씨에게 “돈을 못 돌려받을 수도 있지 않으냐”라고 물었다. 그는 “군복을 입고 그렇게 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혹시 못 돌려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며 웃었다.

직장인 김종하(25) 씨도 비슷한 이유로 선뜻 나섰다. 기자의 도움 요청에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쿨(?)하게 고개를 끄덕인 김 씨는 “나도 군 생활할 때 휴가 중 휴대전화를 잃어버려 곤란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생각이 나서 좋은 일 한 번 하자며 표를 사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군복까지 입고 사기를 칠까 싶었다. 군인이라 더 믿었다”고 덧붙였다. “행선지가 더 먼 곳이었다면 어땠을 것 같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차비가 더 많이 들기 때문에 그때는 전화번호를 받았을 것 같다”며 웃었다. 김경숙(54) 씨도 “어쩌다 지갑을 잃어버렸냐”고 물으면서 기자보다 앞장서서 매표소로 향했다. 취재 사실을 밝힌 후 도움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김 씨는 “친척이 직업 군인이라 나라 지키는 그들의 어려움을 안다. 당연히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갚지 않아도 된다”

   
자신감을 얻은 기자는 바쁘게 걸어가던 직장인 최일식(59) 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최 씨가 기자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자기 길을 가기에 실패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버린 최 씨가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라며 물었고, 기자는 사정을 설명했다. 기자가 “부대 복귀를 해야 하는데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하자 최 씨는 행선지와 표 가격을 묻더니 차표를 끊어주는 대신 지갑에서 현금 만 원을 꺼내주었다. 기자가 “계좌번호를 불러주시면 갚겠습니다”라고 하자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취재 사실을 밝히고 도움의 이유를 물었다. 자신은 “부산 사람이 아니라 충남 천안 사람”이라며 인터뷰를 사양하다 끝내 허락한 최 씨는 “젊은 청년이 다 잃어버렸다면서 곤란해하길래 그냥 도와줬다. 차비가 돈 만 원이라고 해서 현금을 그냥 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혹시 최 씨도 군인 시절이 생각나서 도움을 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군인 시절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지 물었다. 최 씨는 “나는 면제입니다”라며 유쾌하게 웃어넘겼다.

부산온 실험카메라 ⑥편은 시민의 따스함과 유쾌함으로 무사히 마무리됐다. 총 10번 시도해서 4번 성공했다. 사정상 표를 끊어주지 못했지만 당황한 이등병의 말을 끝까지 들어준 시민도 2명 있었다. 시민이 내민 따스한 도움…. 5년 전과 달리 휴가 복귀가 끔찍하지만은 않았다.

이석교 기자 seokgyo@kookje.co.kr

※ 제작지원 BNK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 주말 동안 강풍예고…"안전사고 유의해야"
  2. 2부산 코로나19 신규 확진 5명
  3. 3부산 국민의힘 공동선대본부 출범
  4. 4부산시장 보선 후보 더불어민주당 김영춘 최종 확정
  5. 5변성완 전 권한대행과 박성훈 전 경제 부시장 나란히 2위
  6. 6정익진의 무비셰프 <10> 이자벨 아자니
  7. 7오는 9일부터 새 감염병예방법 시행...위반시 가중처벌
  8. 8백신 이상 반응 1300여 건 늘어…추가 사망자는 0
  9. 9미국 2월 일자리 38만개↑…고용시장 회복 '가속화'
  10. 10이낙연, 첫 예능 출연해 아이들과 소통
  1. 1부산 국민의힘 공동선대본부 출범
  2. 2부산시장 보선 후보 더불어민주당 김영춘 최종 확정
  3. 3변성완 전 권한대행과 박성훈 전 경제 부시장 나란히 2위
  4. 4이낙연, 첫 예능 출연해 아이들과 소통
  5. 5경부선 지하화 국가사업 된다…월드엑스포 전 완공될 듯
  6. 6박성훈 ‘신인 돌풍’ 2위 저력, 이언주는 단일화로 마이너스
  7. 7“난 시민이 원한 합리적 지도자…정권교체 발판 될 것”
  8. 8김영춘은 야당 때리기, 변성완·박인영은 당원결집 목청
  9. 9김영춘 본선 직행이냐, 결선투표냐…변성완 뒷심 관건
  10. 10후보단일화·네거티브에도 굳건했던 박형준 독주
  1. 14배로 끌어올린 사업속도…난개발 없는 해양문화 거점 고민
  2. 2부산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 약보합세
  3. 3쿠팡처럼…앞으론 택배 이틀 안에 받는다
  4. 4다시 돌아온 골프 시즌…유통가 ‘골린이’용품 봄 대전 티샷
  5. 5연금 복권 720 제44회
  6. 6“가덕신공항, 부산경제 도약 마중물 될 것”
  7. 7가전 매장에 놀이터·체험존 넣었더니 매출 배 이상 ‘껑충’
  8. 8부산상의 의원 출마자 “사무처, 선거 공정하게 관리해야”
  9. 9동부산 이케아, 글로벌 친환경 빌딩 인증
  10. 10[브리핑] 부산 남구 등 스마트솔루션 사업
  1. 1부산 주말 동안 강풍예고…"안전사고 유의해야"
  2. 2부산 코로나19 신규 확진 5명
  3. 3오는 9일부터 새 감염병예방법 시행...위반시 가중처벌
  4. 4백신 이상 반응 1300여 건 늘어…추가 사망자는 0
  5. 56일 신규 확진자 418명…"여전히 살얼음판"
  6. 6금융기관 사칭해 스마트폰 4만 대 해킹 포착...보완 관리 만전 기해야
  7. 7부산 강풍주의보…창문 깨지고 간판 떨어지고 사고 잇달아
  8. 8‘수정아파트’ 정체불명 재개발 추진위도 등장…피해주의보
  9. 9부산대 개학하자마자 ‘코로나 홍역’…학사일정 혼선
  10. 10양산 물금역 KTX 정차 이번엔 성사되나
  1. 1이대호·손아섭·민병헌 39억 깎았더니, 거인 연봉순위 8위(작년엔 1위) 추락
  2. 2체육단체장으로부터 듣는다 <7> 정신 부산야구소프트볼협회장
  3. 3‘고수를 찾아서 2’ 부산 유일 국궁 9단 명궁 장오현
  4. 4교체 출전 황희찬 6개월 만에 골 맛
  5. 5김광현 첫 시범경기 4실점 부진
  6. 6박세웅 150㎞ 직구·나승엽 안타…롯데 첫 단추 잘 뀄다
  7. 7호날두 12시즌 연속 정규리그 20골 고지
  8. 8도쿄올림픽 개최 가능성에 국가대표 우선 접종 추진
  9. 9부산시체육회 강영서 국제스키연맹 회전 부문 준우승
  10. 10“득점 과정 중시하는 감독님, 이겼는데 꾸짖어 많이 배워”
해피-업 희망 프로젝트
지적장애 민정 양
가덕신공항 비전 UP
지역 맞춤 항공정책 구현
눈높이 사설 [전체보기]
지역별 문화향유 기회 동등해야
치밀한 준비가 백신 접종 성패 가른다
뉴스 분석 [전체보기]
지역대 정원미달 사태…추가모집으로 학생 채우기 안간힘
재계 분열 키운 부산상의회장 선거
다이제스트 [전체보기]
한국관광공사, 360VR 랜선 여행 코너 운영
파크하얏트부산 ‘레디 투 릴렉스’ 프로모션 外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전체보기]
하도와 낙서 : 도사가 되려면?
음양과 양음 : 서로의 조화
사건 인사이드 [전체보기]
‘우수관 도주’ 외국선원 올해만 6명…감천항 땅밑이 뚫렸다
스토리텔링&NIE [전체보기]
미얀마軍이 정부 장악하자 국민 또 일어섰대요
5G 대용량 전송 뚝딱…차 스스로 달리게 한대요
신통이의 신문 읽기 [전체보기]
몸살 앓는 지구…우주 개척 경쟁 뜨겁대요
수학도 인간관계도 깨달음이 성장과정이란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체보기]
공익확대 vs 개발위축…첫 사전협상제 한진CY 난파 기로
교육감 “재해처벌법 학교장 빼달라” 노동계 “시대착오적”
이슈 추적 [전체보기]
핵심은 사라진 황금계급장·돈 출처인데…변죽만 울린 수사
포토뉴스 [전체보기]
발파 작업으로 사라지는 트럼프 호텔
지리산에 핀 ‘상고대 눈꽃’
현장 줌인 [전체보기]
‘돌봄 파업’에 교장·교감까지 방과후 보육 총동원
오늘의 날씨- [전체보기]
오늘의 날씨- 2021년 3월 5일
오늘의 날씨- 2021년 3월 4일
  • 유콘서트
  • 18기 국제아카데미 모집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