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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그의 길 위에서 생각한다 <3> 해운포 사람들

생선살 환으로 끓인 ‘어환탕(魚丸湯)’… 개운한 맛에 왕도 흡족해 했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2-16 19:52:42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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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 변질 막는 어민 지혜 담아
- 푸른 채소 곁들인 생선새알국
- 청량한 국물에 속이 싹 풀리니
- 치원 ‘어환탕’이라 이름 붙여

- 동백섬 맞은편 작은섬 ‘대마도’
- 살상 즐기는 왜구 침략 잦으나
- 왜국 군사 말곤 말릴 수 없으니
- 도 넘은 족속에 치원 혀 내둘러

   
자고로 민심은 민초들의 삶이 드러나는 시장에서 나오니 옛 선인들도 장터에서 백성들의 마음을 읽지 않았을까. 사진은 최근 새로 단장한 해운대전통시장. 김성효 선임기자
■하늘의 축복, 바다의 은혜

치원은 오늘도 동백섬 바위 위에서 바다를 보고 있다. 해는 벌써 머리 위까지 솟아 천지사방에 밝고 따스운 빛을 비추니 만물이 숨 쉬고 생장하는 하늘의 축복이다. 바다는 어떠한가. 가까이에서는 해면 바닥 작은 모래알까지 선명하지만 멀리 깊어질수록 푸른빛은 짙어지고 물밑 속은 암흑이 되니 거기에 또 어떤 세상이 펼쳐져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햇볕 한 점 닿지 않는 그곳에도 생명 가득하여 뭍의 사람들을 배 불리고 살찌우게 하니 경외하며 감사할 따름이다. 바람의 결에 따라 일렁이는 청정수가 쏟아져 내리는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며 튕겨내는 저 빛은 또 얼마나 눈부시고 찬란한가. 참으로 생명의 원천이요 보석이 아닌가. 그 모든 축복을 오직 동방의 신라가 세상 처음으로 받아 누리니 영원히 지키고 보존해야 할 민족의 땅이고 바다이며, 다시 천년을 이어가야 할 왕국이로다!

■해운포 어민의 지혜 ‘어환탕’

   
‘어환탕’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있다. 만호 룡수의 걸음은 이미 익숙한데 또 다른 걸음도 있다. 돌아보니 두 손으로 반(盤)을 받쳐 든 젊은 여인이다. 룡수의 딸인 듯싶다. 생김은 단아한 여인이 분명한데 사내의 복색인 것이 의아했으나 치원은 거론치 않는다.

“언제나 여기에 계십니다.” 따가운 햇볕 아래에서 뱃일이며 군사의 일로 분주한 그였으니 의복 겉으로 드러난 피부는 온통 검붉다. 봄이 시작되어 볕이 뜨거워지면 아예 숯검정을 칠한 듯 더욱 짙어질 것이다. 거기에 사시사철 용력을 다하는 생활이니 온몸의 근육은 모두 불거지고 돌덩이처럼 단단하다.

“위쪽은 소나무가 시야를 가리는데 여긴 거침이 없어 바다를 조망하기에 맞춤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바닥을 고르고 돌을 쌓아 대(臺)라도 만들어둘 걸 그랬습니다.” 언제나 걸걸하고 우렁찬 그의 목소리가 작아들어 돌아보니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이 새삼스럽다. 치원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괘념치 마십시오. 며칠 뒤면 왕경(서라벌)으로 돌아갈 겁니다. 마침 오셨으니 저기 바다 건너 보이는 섬과 왜구이야기를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예. 그런데 조반도 시늉만 하셨다기에 소찬을 가져왔으니 식기 전에 먼저 드시지요.” 만호의 말에 따라온 처녀가 반을 내려놓는데 치원은 먼저 왕의 수라가 염려되었다,

“대왕께서는 수라를 어찌하십니까?”

“저희도 성의를 다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생선새알국이 입에 맞으신 듯 매번 다 비우시기에 빠뜨리지 않고 있습니다.” 치원은 달집태우기를 하던 날 왕께서 하시던 말씀이 떠올랐다.

“그게 무엇입니까?”

   
해운대온천수가 흐르는 해운대구청 내 족욕탕. 해운대구청 제공
“저희에게는 생선이 흔하지만 귀하기도 합니다. 파도가 높으면 바다로 나갈 수 없고 날이 더우면 금방 상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잔 생선은 뼈째 빻아서 칡가루와 버무려 작은 새알을 빚습니다. 그걸 쪄서 말려두면 쉬 상하지도 않고 채소와 같이 국을 끓이면 제법 먹을 만합니다. 대왕께는 신선한 생선살과 칡가루로 빚어 한 번 찐 뒤 바로 맑은 탕을 끓여 올립니다. 간을 싱겁게 하고 푸른 채소를 데친 듯 살짝 익혀 곁들이면 풍미도 있고 소화도 편합니다. 막 끓여 한 그릇 가져왔으니 드셔보시지요.”

처녀가 반을 덮었던 보자기를 걷으니 청아한 빛의 자기 그릇에 담긴 맑은 탕에 새알심 크기의 어환과 함께 푸른 채소가 익힌 듯 않은 듯 서너 점 얹혀있다. 치원이 먼저 국물을 맛보니 간은 세지 않은 데다 은은한 단맛이 번지고 삼키면 따끈한 기운에 속이 데워지면서도 시원하게 풀리는 느낌이다. 새알은 비린 맛은 없고 얕은 칡 향이 식욕을 돋우면서 부드럽게 씹히니 대왕께서도 즐기실 만했다. 입가심을 하듯 아삭함이 살아 있는 푸른 채소를 끝으로 수저를 내려놓은 치원은 상시 휴대하는 작은 벼루를 꺼내 먹을 간다. 처녀는 눈치 빠르게 돌아서 옷고름을 떼더니 치원의 앞에 펼친다.

‘어환탕(魚丸湯)’. “왕경에서는 이런 음식을 어환탕이라 합니까?” 만호가 신기한 듯 물으니 치원은 빙긋 웃는다.

“대왕께서도 처음이신데 어찌 이름이 있겠습니까. 당나라에서 비슷한 음식을 먹어본 적이 있는데 이만 못했습니다. 저들은 양을 비롯한 고기와 기름에 익숙하니 제 입에 느끼한 때문이었겠지만 맛이 청량하여 ‘탕’ 자를 넣어 지어본 것입니다. 이처럼 환으로 빚어 잘 말리면 비상식으로 육포에 비길 만하고 아이들 간식거리로도 훌륭하겠습니다.”

■대마도와 왜구

   
처녀가 반을 거두어 돌아가자 치원은 대마도로 시선을 돌린다. “저 섬에는 가 본 적이 있습니까?”

“직접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여러 사람으로부터 들어 어지간히는 알고 있습니다. 크기는 보시는 바와 같이 적지 않으나 산이 높고 골이 깊은 것이 대부분이라 농경지가 적습니다. 그러니 항상 곡물이 부족하여 해산물이나 왜의 특산물을 가져와 교환하기를 원하는 형편입니다.”

“그런 자들이 어찌 왜구의 앞잡이 노릇을 한다는 겁니까?”

“칼 때문이지요. 떼로 몰려다니는 데다 제 놈들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칼부터 휘둘러 도륙하기를 서슴지 않으니 작은 섬사람들로서는 다른 도리가 없겠지요. 하지만 저들도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이익을 꽤하는 경우가 있으니 그저 가엾다 여길 것도 못됩니다.”

“저도 당에서 왜구의 잔인함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만 그리도 무도합니까?”

“무도라는 말도 아깝습니다. 우두머리 몇 놈을 제외하면 겨우 몸뚱이를 가릴 정도의 천 조각을 걸치는데 그마저도 날이 따뜻해지면 겨우 아랫도리나 가린 벌거벗은 행색입니다. 게다가 대가리마저 머리카락을 모두 뽑은 것인지 민 것인지, 뒤통수만 조금 남겨두고 홀랑 벗은 민머리니 아녀자들은 보기만 해도 그 흉측한 몰골에 기함을 합니다. 작은 몸뚱이라서 그런지 잽싼 데다 칼을 제법 쓰니 어지간한 병력과 정병이 아니고서는 감당하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검에 단련된 모양입니다?”

“그보다도 잔혹함이지요. 사람이라면 대부분 인명을 살상하는데 꺼리는 마음이 있어 머뭇거리기 마련인데 놈들은 손톱만큼의 주저함도 없습니다. 오히려 살상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니 사람이 아니라 야차라 하는 게 맞을 겁니다. 그게 그놈들의 강함입니다.”

“어찌, 배우지 못해서 인성이 없는 것일까요?”

“배우고 아니 배우고의 문제가 아니라 천성인 듯합니다. 왜국 왕실이 안정되어 나라 군사가 제 구실을 하면 준동을 멈추니 오직 힘으로 다스려야 하는 족속임에 틀림없습니다.”

만호는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분이 치미는지 흥분의 목청을 높였지만 치원은 믿어지지 않는 마음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혀를 찾다. 그토록 사람의 도를 벗어난 족속이라니….

김정현·소설가

일러스트 = 백정록/제자 (題字)= 이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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