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습·대체복무·채용까지
- 대개 같은 선사에서 이뤄져
- 위험한 환경·부당한 처우도
- 미래 저당 잡혔기에 참아내
- 정부·대학이 구조 개선해야”
“실습, 대체 복무, 취업 모두 한 선사에서 이뤄지다 보니 부당한 일을 당해도 회사에 절대 항의할 수 없어요. 좁은 해운업계에서 ‘찍히면 큰일 난다’는 두려움도 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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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진 정모 씨의 빈소를 찾은 한국해양대 학생이 18일 헌화하고 있다. 김민정 기자 |
지난 9일 인도네시아 말라카 해협에서 승선 실습을 하던 중 열사병 증세를 보이다 16시간 만에 병원으로 옮겨져 숨진 한국해양대생(국제신문 지난 11일 자 10면 보도 등) 정모(21) 씨의 장례식장에서 18일 취재진과 만난 동기 A(21) 씨는 비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해사대생은 대부분 최소 6개월간 외부 선사에서 승선 실습을 한다. 졸업 후 3년간 승선근무 예비역으로 대체복무한 뒤 정규직으로 전환되는데, 해당 선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실습생을 선호하다 보니 실습부터 취업이 같은 선사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A 씨와 함께 자리한 선배 B(22) 씨는 “실습을 못 하면 미래가 없어지므로 부당한 일을 당해도 꾹 참는다. 다른 선사에 지원하려 해도 중도 하선 이력이 있으면 어렵다”고 덧붙였다.
정 씨의 사고를 계기로 열악한 근무 환경과 부당한 처우에도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실습생의 현실을 증언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50도 가까이 되는 ‘찜통’ 기관실에서 휴식시간 없이 일하는가 하면 실습생임에도 작업 현장에 투입돼 화상·감전·절단 사고를 자주 당한다고 실습을 경험한 학생들은 입을 모은다.
정 씨의 가족은 승선 전부터 선사의 무리한 요구에 힘들어했다. 정 씨의 아버지는 “일정이 계속 바뀌더니 승선 하루 반 전에야 도착 시각과 장소가 적힌 비행기 티켓을 전달받았다. 선원이 대신 사 오라고 요구하는 것은 또 어찌나 많은지 아내가 처음으로 ‘로켓배송’이라는 걸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갑’인 선사에게 아쉬운 소리 한번 하기 어려웠다. 정 씨의 아버지는 “마지막에는 정말 화가 나 선사에 전화할까 했지만 자식 앞길에 누가 될까 참았다. 반대로 아이한테는 긍정적인 말로 안심시키려 했던 걸 생각하면 마음이 찢어진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실습생이 진로를 저당 잡힌 채 철저한 ‘을’이 되는 구조를 대학이 앞장서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해양대 졸업생 C(25) 씨는 “교수, 학교·선사 관계자 대부분 해양대 출신인 선후배 사이다 보니 문제가 제기돼도 개선이 잘 안 된다. 학생과 학부모가 믿을 건 학교뿐인데 선사에 모든 것을 맡겨 놓는다. 유명무실한 안전 매뉴얼이나 실습생 교육 협약서 대신 적극적으로 학생을 보호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대학이 선사에 실습 비용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비용을 대는 대신 실습생 보호 의무를 지워 정부와 대학이 철저히 관리·감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해운노동조합협의회 박상익 선원정책개발팀장은 “선사가 실습에 들어가는 비용을 내니 정부와 학교도 요구를 못 하는 것”이라며 “반대로 비용을 어느 정도 지원하면 선사에도 당당히 부담을 지워 악순환을 끊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고인의 발인은 19일 진행되며, 한국해양대에서 추모식이 열린다. 해양수산부는 해양대 해사고 선주협회와 19일부터 대책회의를 열고 실습생 처우 개선 방안을 논의한다.
김민정 기자 min55@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