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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사람 실험카메라 <9> 농아인이 도움을 요청 했을때

“죄송하지만, 전화 한 통 쓸 수 있을까요” 몸짓과 글로 전한 부탁에…마음으로 답한 시민들

  • 박호걸 기자
  •  |   입력 : 2020-02-25 20:05:34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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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대폰 잃어버린 장애인 역할
- 수어로 설명하며 도움 청해도
- 대부분 손사래치며 가던 길 가

- 이대로 소통하기 힘들단 생각에
- 수첩에 적어 손글씨로 요청
- 멈춰선 이들 모두 흔쾌히 수락
- 대신 전화 걸고 찾는길도 동행

- “특별히 어려운 일도 아닌데 뭐…”
- 오늘도 부산은 따뜻하여라

“저기요. 제가 스마트폰을 잃어버렸는데 죄송하지만 전화 한 통 쓸 수 있을까요?”

스마트폰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는가. 방금까지 있었던 스마트폰이 느닷없이 외투 주머니에도, 바지 주머니와 가방에도 없다면? 자신의 동선을 되짚으며 수색해도 스마트폰을 찾지 못하면 그다음에 할 수 있는 게 바로 다른 사람의 스마트폰을 빌려 전화하는 것이다. ‘뚜르르, 뚜르르’라는 신호음이 이어지다 끊김과 동시에 들리는 ‘여보세요’라는 낯선 목소리. 다행스러운 마음으로 스마트폰 습득자의 위치를 물어보고 찾으러 가는 길. 우리가 살면서 한 번씩 겪을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잃어버린 사람이 듣는 것과 말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이라면 어떨까?
   
지난 13일 부산 도시철도 1호선 부산대역 인근 공원에서 딕슨(Dickxon·22·인도네시아) 씨가 기자의 손 글씨를 보며 취재진과 통화하고 있다. 동영상 캡쳐
■외국처럼 낯설었던 부산

국제신문 취재진은 지난 5일 부산시농아인협회를 찾았다. 이곳에서 운영하는 수어통역센터에서 박현진 농통역사로부터 부산온 ‘부산사람 실험 카메라’에서 사용할 문장의 수어를 배웠다. 기자가 배운 문장은 모두 4가지. ‘제가 휴대전화기를 잃어버렸어요’, ‘전화기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번호를 드릴 테니 저 대신 전화 통화 좀 해주실래요’, ‘감사합니다’ 등이다. 처음 접하는 수어는 어려웠지만 흥미로웠다. 마치 외국어로 의사소통하는 느낌이랄까. 박 농통역사는 “일반인이 수어를 잘 모르기 때문에 표정이 중요하다. 수어와 함께 표정을 적절히 하면 수어를 몰라도 기본적인 소통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취재진은 지난 13일 도시철도 1호선 부산대역 인근 공원에서 실험 카메라를 진행했다. 기자는 틈틈이 연습했던 수어를 사용할 마음에 기분이 조금 들뜨기도 했다. 하지만 그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뀌는 데는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기자는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탓에 가까이 오는 시민과 눈을 맞춘 후 수어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를 본 시민 대부분이 손을 저으며 관심 두기 자체를 거절했다. 일부 시민은 걸음을 멈춘 후 기자의 수어를 바라보기도 했지만, 소통이 어려워선지 “일이 있다”며 가던 길을 가버렸다. 전화를 빌려달라는 것까지 이해하는 듯한 시민도 있었지만 역시 실패했다.

답답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지갑 여권 등 귀중품이 든 가방을 통째로 잃어버린 느낌이랄까. 바디랭귀지를 하며 도움을 요청하려 해도 사람들이 무시하고…. 다 포기하고 주저앉아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연기하는 기자조차 그러한데 실제 말을 하는 것도, 듣는 것도 어려운 분들이 스마트폰까지 잃어버리면 얼마나 더 답답할까.

취재진은 긴급회의를 통해 도움 요청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수어 대신 수첩에 손글씨를 써서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기자는 수첩에 ‘농아인인데 근처에서 스마트폰을 잃어버렸어요. 전화를 대신 좀 걸어주실 수 있나요’라고 적은 뒤 다가오던 김용규(59) 씨에게 수첩을 보여줬다.

김 씨는 처음에는 경계하며 가던 길을 계속 갔다. 그러나 수첩에 적힌 내용을 읽은 후 상황을 눈치채고 멈춰 섰다. 다시 수첩을 살펴본 그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수첩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김 씨는 “여기 농아인 분이 전화기를 잃어버렸다는데 본인 전화인가요”라고 물었다. 전화를 받은 PD가 “주웠다”고 말하자 구체적인 장소를 설명해 접선 장소를 정해줬다. 그는 약속된 장소로 함께 이동하며 기자에게 “2분 뒤면 온다고 하니 여기 서 있으면 된다”고 말하며 안심시켰다.

첫 성공에 들뜬 기자는 취재 사실을 밝히고 도움의 이유를 물었다. 김 씨는 “도움을 요청했고, 전화 거는 것 정도는 내가 해 줄 수 있는 거라 도와준 거다. 특별한 게 아니다”며 쑥스러워했다.

   
국제신문 박호걸 기자가 부산시농아인협회 부설 부산수어통역센터에서 수어를 배우고 있다. 동영상 캡쳐
■다시 느낀 온기… 역시 부산

수첩에 글을 적어 보여주자 시민 대부분이 흔쾌히 도움에 응했다. ‘방법의 문제였다’는 확신이 들 정도로 정반대의 양상이 펼쳐졌다. 두 번째 성공 사례인 20대 여성 A 씨에게는 ‘조금 더’를 요청했다. 전화를 받은 PD가 “스마트폰을 주웠는데 온천천까지 거리가 멀어서 가져다주기 어렵다”고 하자 A 씨는 중간 지점에서 만나기로 하고 기자를 직접 그곳까지 데려다주러 나섰다.

그는 기자에게 “부산은행 사거리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혹시나 동선이 꼬일 수 있고 연락이 안 될 수도 있다”며 “내가 그곳까지 모셔다드리겠다”고 말했다. 감사의 표시를 한 후 A 씨를 따라나섰다. 기자가 A 씨를 만난 부산대역 3번 출구에서 PD를 만나기로 한 부산은행 사거리까지는 약 400m 거리였다. A 씨는 취재 사실을 밝힌 기자에게 “세상이 무섭다 보니 약간 꺼려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말씀을 못 하신다고 해서 이겨내고 도와드렸다”며 웃었다.

불편함을 가진 사람에 대한 배려와 따스함은 국적을 가리지 않았다. 다음으로 기자에게 도움을 준 사람은 다름 아닌 인도네시아인 딕선(Dickxon·22) 씨였다. 기자가 수첩을 내밀자 처음에는 영어로 “한국말을 잘 모른다”고 말한 딕선 씨는 기자가 바디랭귀지를 섞어가며 도움을 요청하자 “아! 전화해달라고요?”하고 묻더니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시도했다. 부산대 어학 연수생으로 2년간 한국에 머무르고 있다는 딕슨 씨는 한국어가 엄청나게 유창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기자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PD와 마지막까지 끈질기게 통화해 약속 장소를 알려줬다. 취재 사실을 밝히자 딕슨 씨는 “수첩에 쓴 글자가 그림 같더라. 그래서 처음에는 못 알아봤다”며 유쾌하게 웃었다. 그는 “(기자가)불쌍? 어려워 보여 도와주고 싶었다”며 “도와주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장소를 부산대역 1번 출구로 바꿔 도움을 요청해봤다. 이곳에서도 100이면 100 모두 도움을 줬다. 소풍가던 대학생 3명은 길거리에서 10분 동안 서서 기자를 도와주려고 했다. PD가 “내가 스마트폰 주인을 알아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자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기자의 사진을 찍어 PD에게 전송하며 “바로 이분”이라고 인상착의를 알리기도 했다. 60대 여성 B 씨도 PD와 전화 후 부산은행 사거리까지 선뜻 안내해주었다. B 씨는 “아들이 또래라 생각이 나서 도왔다. 방향은 조금 달랐지만 그 정도 도와주는 건 큰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렇게 부산 사람의 따스함을 느끼면서 아홉 번째 부산온 ‘부산 사람 실험 카메라’도 성공적으로 끝났다. 박호걸 기자

※ 제작지원 B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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