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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마을' 혁신을 찾아서 <5> 하동 화개면 목압마을

화개골 야생녹차 시배지 … 茶 덖던 산골마을, 인문학 요람으로

  • 이완용 기자 wylee@kookje.co.kr
  •  |   입력 : 2020-03-08 18:58:10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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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뒤, 집 뒤 모두 차나무
- 쌍계사의 전신 목압사 터
- 진감선사 머문 국사암 유명
- 대대로 녹차 농사하던 마을
- 고령화·대량 생산에 밀려 쇠퇴

- 조해훈 박사 2016년 귀농 후
- 주민들 한문·인문학 공부 심취
- 한시 백일장·고서 전시 입소문에
- 日·中 학자부터 외국인 관광객
- 작년만 전국서 500여 명 찾아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목압(木鴨)마을은 하동군 내에서도 야생 녹차의 역사가 가장 오래된 곳으로 전해진다. 지금은 흔적만 있는 쌍계사의 전신 목압사 터가 있고, 신라 시대의 고승 진감선사(774~850)가 쌍계사를 짓기 전에 머물렀다는 국사암도 있어 주민은 이곳을 차 시배지로 확신하고 있다. 스님이 녹차를 즐겨 마셨기 때문이다. 마을에 들어서면 온통 차나무다. 마을 뒤의 깎아지른 언덕배기에도 차나무고, 집 뒤의 텃밭에도 차나무다. 어떤 집에는 담장이 있어야 할 경계에도 차나무를 심어 울타리를 할 정도다. 33가구의 주민 가운데 몇몇은 민박이나 펜션을 하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수제 차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다. 22~ 30년 전까지는 기업형 제다원이 있었지만, 지금은 싼값의 평지 녹차에 밀리고, 주민의 노령화로 명맥만 이어가고 있다.
   
쌍계사에서 칠불사 방향으로 두어굽이를 돌아 올라가면 만나는 목압마을은 화개골에서도 가파른 언덕을 배경으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정겹다. 대대로 야생 녹차와 고사리 곶감 재배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마을에 최근들어 인문학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사람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사진은 목압마을 전경.
이런 목압마을에 2016년부터 인문학자인 조해훈(61· 시인, 한문학) 박사의 귀농으로 인문학 열풍이 불면서 새로운 활기를 띠고 있다. 그는 1만 2000여 권의 책으로 마을도서관을 꾸며 마을주민에게 개방하고, 강좌와 한시 짓기 등을 통해 인문학 바람을 불어 넣고 있다. 정부나 자치단체의 재정지원 없이도 노령인구가 많은 산골 마을에 인문학이 자리 잡을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다.

■우리나라 야생 녹차의 원조

   
주민이 녹차를 만드는 모습.
가수 조영남의 노래로 유명한 화개장터에서 화개십리 벚꽃길을 따라 6km가량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쌍계사로 들어가는 쌍계교가 나오고 여기서 계곡 옆 군도를 따라 칠불사 방향으로 200m를 더 올라가면 오른쪽에 마을로 들어가는 목압교가 나온다. 기와를 인 전통 한옥 양식의 목압교에는 ‘천년터전 다향 목압, 물 흐르고 꽃이 피네’라는 주련이 걸려있고 남명 선생의 시비도 새겨져 있어 찾기가 쉽다. 목압마을 중앙의 네거리에서 오른쪽 길은 쌍계초등학교와 쌍계사 방향이고, 왼쪽 길이 10여 가구가 사는 맥전마을 방향이다. 여기서 마을 뒤쪽으로 직진하면 목압마을회관과 옛 목압사 터를 거쳐 진감선사가 수행하고 입적한 국사암에 이른다.

목압마을은 화개골에서도 비교적 작은 동네다. 논이 없는 산간지대에 위치한 탓에 밭농사와 산에서 채취하는 산나물이 소득원이지만, 봄에는 고로쇠 수액을 받고 겨울에는 곶감을 만들어 판다. 그래도 마을의 최고 수입원은 녹차 농사다. 마을에는 한때 가구 수만큼이나 제다원이 많았다. 깎아지른 비탈면에 자라는 차잎을 일일이 손으로 따고 덖어 만든 차는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이었기에 녹차 생산이 많았던 것이다. 지금은 대량으로 생산되는 평지 녹차밭에서 싼값으로 공급되는 녹차에 밀려 경제성이 낮기 때문에 제다를 업으로 하는 주민은 많지 않다. 가족이나 친지에게 나눠 먹을 요량으로 만드는 게 고작이어서 주문이 아니고는 대량생산을 기대하기 어렵다. 차잎을 따서 덖고 포장하고 판매하는 일이 힘겨운 고령의 주민은 봄에 잎을 따서 마을의 다른 제다원에 도매로 넘긴다.

■시골 마을에 인문학 열풍

   
인문학을 공부하는 조해훈 박사와 방문객.
녹차 농사가 시들해지면서 마을이 쇠퇴해지나 싶을 때, 귀농한 조 박사의 인문학 열풍으로 마을은 새로운 활력이 되고 있다. 그는 옛 목압사 터에 마을박물관이자 고서전시실인 목압서사(木鴨書舍)를 열어 고서 전시와 인문학 강좌, 한시대회 등을 개최하고 있다. 2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해 온 그는 마을 이름을 딴 서사를 열고 주민과 화개골 지역민에게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조 박사는 마을에 온 첫해에 6명의 주민에게 한시를 지도하고 이듬해 3월에는 ‘자작 한시 발표회’를 가졌다. 지금도 퇴직 교사와 인근 주민에게 한시와 한문 강독을 하고 있고 매주 목요일에는 마을주민 자녀에게 한자를 가르치고 있다. 부정기적으로는 ‘조해훈 박사의 인문학 특강’도 열린다. 날짜와 주제는 대문 앞에 걸려있는 작은 알림판에 적어 둔다. 행사를 요란하게 알리지 않는데도 어떻게 알았는지 부산과 울산, 광주 등지에서도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 많을 때는 20~ 30명도 모인다. 봄과 가을에는 ‘미니 한시 백일장’도 여는데 사비로 개최하다 보니 규모를 키울 수 없어 선착순 10여 명으로 한정한다. 그는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책도 주민에게 공개하고 전시와 함께 빌려주기도 한다. 2000여 권의 고서는 따로 관리하면서 주제별 전시회를 갖는다. ‘우리나라 고대소설전’, ‘지리산 시인전’ 등이다. 지금은 제6차 기획전으로 우리나라 문학의 길을 제시해 준 잡지 ‘창작과 비평 전’을 선보이고 있다. 그가 설립한 ‘화개학연구원’에서는 화개골과 관련한 주제를 선정해 논문을 발표하고 있는데 지금은 세 번째 논문인 ‘쌍계사 등 화개골 사찰에 이어져 온 화개 茶脈(가제)’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활동이 입소문으로 전해지면서 지난해에는 전국에서 500여 명의 외지인이 목압서사를 방문했다. 하루에 두세 팀의 외지인이 겹치기 방문하는 일도 생긴다. 그는 방문객에게 전시 자료는 물론 마을과 화개골의 역사와 문화 등을 설명해 준다. 차를 연구하는 일본과 중국의 학자나 테마 여행을 하는 외국인들도 가끔 방문한다. 수백 년 된 목판과 목판본 고서를 만져보고 탄성을 지른다.

목압마을 이장 최동환(59) 씨는 “조 박사는 마을 일에도 적극적이지만 마을 홍보와 주민 소통의 귀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조용하고 자랑할 것 없는 우리 마을이 전국은 물론 외국에서도 관광객과 방문객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고 있다 ”고 말했다.

이완용 기자 wyle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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