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부산 동래구의 한 주택가. 동호(가명·13)가 어머니와 함께 집 앞에 나와 있었다. 수안빛지역아동센터 사회복지사가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여승수 부산본부장과 함께 방문한다고 미리 얘기했더니 마중을 나왔다. 동호는 반가운 얼굴로 뛰어와 재단이 준비한 ‘코로나19 어린이 안전키트’를 받아들었다. 안전키트에는 마스크, 손 소독제, 비상식량 등이 담겼다.

	수안빛지역아동센터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부산지역본부 관계자가 저소득가정 아동에게 ‘어린이 안전키트’를 전달하고 있다. 김종진 기자

코로나19 여파로 저소득 가정 아동의 돌봄에 공백이 생겼다. 부산 지역아동센터 총 208곳이 지난달 22일부터 일제히 문을 닫았다. 전날 코로나19 확진자가 부산에서 처음 발생했기 때문이다. 휴원은 두 차례 연장돼 오는 22일까지로 예정됐다. 부산 지역아동센터에는 약 5000명이 다닌다. 저소득 맞벌이 가정이나 한부모·조부모 가정이 많아 센터에 가지 않으면 가정에서 아동의 학습과 놀이, 식사를 제대로 챙기기 어렵다. 코로나19 사태로 아이들이 한 달이나 ‘방치’되는 셈이다. 센터도 긴급돌봄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이용자는 전체 5000명 중 180명뿐이다. 보호자가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해 차라리 집에 두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호도 요즘 내내 집에만 있다. 어머니는 “일찍 철이 들어 ‘놀아달라’고 하지도 않는 아들이 안쓰럽다”고 말했다. 동호 어머니는 당뇨 후유증으로 신장이 망가져 일주일에 세 번 혈액투석을 받는다. 아버지는 인근 전통시장에 작은 가게를 얻어 장사한다. 코로나19가 확산한 지난달 초부터 시장을 찾는 사람이 줄더니 부산에서 확진자가 처음 발생한 이후로는 인적이 뜸하다고 한다. 동호 어머니는 “가게와 집 월세로 한 달에 140만 원이 나가는데 이달 벌이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고 걱정했다. 동호 어머니에겐 마스크를 구하는 일이 ‘전쟁’이다. 면역력이 약해 다른 엄마들처럼 약국 앞에 긴 시간 줄을 서서 마스크를 사기가 어렵다.

이날 수안빛아동센터와 어린이재단은 유민(가명·15)이네 집도 찾아 안전키트를 전달했다. 유민이는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ADHD)로 약을 먹는다. 지적장애가 있는 부모가 아이를 온종일 돌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유민이는 온종일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린다. 센터를 다닐 때는 방학을 기준으로 점심, 저녁까지 먹고 집에 왔지만 요즘은 집에서 다 챙겨야 한다. 일용직 노동자인 아버지는 허리디스크가 심하지만 약으로 버티며 이날도 일하러 나갔다. 유민이는 어린이재단이 전달한 키트를 뜯어보고 “와~ 우리 아빠가 안 사주는 거다”고 좋아했다. ‘펭수’ 캐릭터로 포장한 참치캔이었다. 유민이 어머니는 “마스크가 한 장밖에 안 남았는데 고맙다”고 전했다.

어린이재단은 동래구와 동구의 지역아동센터 아동 958명에게 마스크 15장(동구 제외), 손 소독제, 햇반·레토르트식품 등이 든 안전키트를 전달했다. 확진자가 많은 6개 구 아동 1500명에게는 마스크 10장과 손 소독제를 보낼 예정이다. 여 본부장은 “코로나19 확산으로 당장 생계에 문제가 생긴 가정을 찾아 지원하겠다는 취지로 안전키트를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