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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길 <90> 밀양 초동 연가길

잡초 뿐이던 낙동강 자전거길, 봄엔 꽃양귀비·가을엔 코스모스 꽃길로

  • 박동필 기자 feel@kookje.co.kr
  •  |   입력 : 2020-03-29 19:05:05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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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월마을 앞 배수장 회귀길 5㎞
- 4대강 사업 후 조성된 자전거길
- 주민들이 제초 작업·꽃씨 뿌려

- 낙동강 감싸는 광활한 갈대밭
- 겨울에는 고니 등 철새 노닐고
- 버드나무 군락은 삵·박새 쉼터
- 반월습지 덱길도 거닐기 좋아

경남 밀양시 초동면은 예부터 대단위 시설하우스 단지에서 빛깔좋은 가지며, 토마토 등 신선채소를 생산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낙동강변에 자리한 비옥한 들녘에서 명품 농산물이 생산되고 있다.

이 가운데 차월마을은 낙동강과 가장 인접한 대표적 채소 생산지로 꼽힌다. 수년 전 이 곳에 이름마저 멋진 둘레길이 하나 생겼다.

지난 2016년 주민과 초동면행정복지센터 직원들이 의기 투합해 만든 ‘초동 연가길’이 그것이다. 연인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아름답게 수놓인 꽃길을 걸으며 추억을 쌓도록 만들었다.

봄이면 꽃양귀비길로, 가을이면 하늘빛을 닮은 코스모스로길 변신해 연인들을 설레게 한다.

차월마을 내 마을 앞 배수장에서 출발해 반월습지, 언덕길을 돌아오면 족히 5㎞를 걷게 된다. 코끝을 간지럽히는 진한 풀냄새, 갈대숲을 흔드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걷기에 열중하면 1시간 여는 훌쩍 지나간다.
   
경남 밀양시 초동 연가길은 5월이면 꽃양귀비가, 10월이면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 장관을 이룬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연가길의 코스모스를 배경으로 가족으로 보이는 관광객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잡초 무성한 자전거길의 변신

마을에서 출발한지 5분쯤 지나자 저 멀리 낙동강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온다. 풀을 먹고 난 뒤 되새김질 하는 소처럼 바쁠 것 없는 모습이다. 강 너머 창원 땅에 들어선 건물과 야트막한 산들이 정겹게 다가온다.

자줏빛 팬지꽃밭을 뒤로 하고 발걸음을 옮기니 길은 비탈길로 변해 아래쪽으로 향한다. 길을 내려가면서 마주치는 연두빛 새싹과 버드나무 군락들이 TV에 나오는 동물의 왕국의 한 장면 처럼 경이롭다. 길 옆으로는 ‘연가길’이라고 씌여있는 깃발이 세찬바람에 온몸을 뒤척인다. 곁에 있는 노란색 바람개비도 함성을 지르며 탐방객을 맞이 한다. 정적만이 가득찬 들녘에 입체적인 생기를 불어넣고 있는 장치들이다.

이윽고 머리에 분홍색 코스모스 꽃을 꽂은 황금마차가 행인들을 반긴다. 안쪽에 앉을 수 있도록 된 이 구조물은 폐 자전거 휠 등 폐품으로 만든 작품이다.

동행한 차월마을 박경봉 (55)이장은 연가길이 조성된 사연을 일러줬다. 박 이장은 “과거 이 일대 둔치에는 정부의 4대강 사업으로 자전거길이 시원하게 뚫였다. 하지만 길 주변에 잡초가 무성해지면서 볼썽사납게 변했다. 일부 면복지센터 직원들이 주민에게 “자전거길 주변을 꽃길로 조성하면 어떨까”라는 제안을 했다는 것. 주민은 이를 수락해 자전거길 주변에 2016년부터 잡초를 제거하고 코스모스 꽃씨를 뿌렸다. 농사일에 바쁜 농민들로서는 과외일이 됐지만 땀방울은 헛되지 않았다.

■이국적 풍경… 경이로운 반월 습지

   
초동 연가길 안에 있는 반달습지 덱길 전경.
멋있는 S자로 뒤틀린 길 왼쪽으로 동심을 자극하는 휴식처가 모습을 드러낸다. 아동 TV극 뽀로로와 친구들의 얼굴을 형상화한 의자들이 익살스런 모습으로 방문객에 손짓한다.

연가길은 5월에는 꽃양귀비가 10월에는 코스모스가 각각 화려한 자태를 선보인다. 꽃이 한창일 때 주민들이 직접 주관하는 걷기행사를 열면서 꽃길 주변은 사람과 꽃들이 자연의 일부가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장관이 연출되기도 한다.

김영철 초동면장은 “현재 이 곳은 봄과 가을철이면 환상적인 꽃길로 변하는 곳이다. 입소문이 났는지 행사 때 외에도 계절마다 연인들과 가족단위 방문객들이 찾아오곤 한다. 겨울철에는 주변 하천과 낙동강에 고니 등 각종 철새들이 노니는 철새들의 왕국으로 변한다”고 귀띔해줬다.

길 왼쪽으로 등장한 덱길을 따라가자 길은 아래쪽 습지로 뻗어나간다. 반월습지다. 덱길에서 바라보는 습지의 모습은 경이로움 자체였다. 막 연두색 싹이 병아리가 알을 깨듯이 돋아나고 있는 버드나무 군락지가 한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했다. 비록 코로나19로 세상이 잔뜩 움츠려있지만 생명체는 멈추지않고 태동하고 있었다. 습지에는 멧돼지, 삵, 박새 등이 자라고 있음을 이정표가 알려줬다.

■마을에 깃든 김수로왕 전설

   
습지를 벗어나자 길은 거푸 숨을 몰아쉬며 언덕으로 향하고 있었다. 발걸음을 멈추자 언덕위 풍경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오른쪽으로 저만치 낙동강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낙동강을 감싸고 있는 광활한 갈대밭사이로 솟아난 버드나무를 비롯한 관목류들은 이국적이었다. 길 왼쪽도 꽤 괜찮은 풍광을 탐방객들에게 선물한다. 비닐하우스 단지가 줄지어 이어진뒤 다시 짙은 녹황색의 보리밭이 아스라히 펼쳐진다. 시골출신 탐방객들에게 보리 피리 불던 유년 시절의 기억을 소환하기에 충분한 힐링 코스였다.

박 이장은 이 마을과 금관가야 시조 수로왕과의 인연도 들려줬다. 그는 “우리마을의 옛 이름은 ‘수루마’였다. 2000년 전 수로왕이 배를 타고 이 곳에 도착해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마을 뒷산을 넘어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말했다.

박 이장의 부인 안재은(50) 씨는 “생활에 지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연가길을 찾는다는 부부들도 많다. 우리 마을도 덩달아 유명해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며 환하게 웃었다.

박동필 기자 feel@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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