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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뉴노멀’ 시대 <1> 일터의 변신

한 달 새 부산기업 95곳 유연근무 도입 … ‘스마트워크’ 본격화

  • 권혁범 기자
  •  |   입력 : 2020-03-30 20:02:34
  •  |   본지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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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입률 24% 그쳤던 유연근무
- 코로나19 확산에 급속도 안착

- 부산은행·부산대학교·관공서
- 부서별 재택·원격근무 활성화

- 근로기준법상 명시 안 된
- ‘근로장소’에 대한 유연성
- 입법 추진 목소리도 커져

2018년 7월 300인 이상 사업장을 시작으로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됐지만, 우리나라 임금 근로자는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회원국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일한다. 지난해 말 통계청이 발표한 ‘2019 일·가정 양립 지표’를 보면 한국 임금 근로자의 연간 근로시간은 1967시간(2018년 기준)이다. 미국(1792시간) 일본(1706시간)보다 200시간가량, 네덜란드(1365시간) 독일(1305시간)보다 600시간 이상 많다.
   
부산은행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재택근무를 시행하면서 지난 26일 부산국제금융센터 내 본점 사무실 곳곳이 비어 있다. 전민철 기자
‘과로사회 대한민국’은 유연하지 않은 근로체계에서 비롯됐다. 정부는 후진적 노동문화를 바꾸고 일과 생활의 균형을 맞추려고 1997년 ‘선택적 근로’와 ‘재량 근로시간제’를 근로기준법에 명시했다. 그러나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하는 획일적 ‘9 to 6 사무실 근무’에다 일상화된 야근은 좀처럼 깨지지 않았다.

이처럼 불가능해 보이던 노동·고용 혁신을 코로나19가 ‘해냈다’. 감염병에 대한 공포가 일상을 뒤집으면서, 정부가 그토록 도입하려고 애쓴 유연근무제가 빠르게 확산한다. 코로나19의 역설이자, 스마트워크 시대의 ‘뉴 노멀(New Normal)’이다.

■무너진 사무실·집 경계

다급하니 해법이 나왔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일터의 개념을 바꿨다. 부산대학교는 지난 2일부터 전 직원 재택근무를 시행한다. 부서별로 조를 짜서 격주 단위로 집에서 근무하는 방식이다. 1946년 개교 이래 첫 시도다. 하지만 이미 재택근무를 위한 준비는 돼 있었다. 실행할 계기를 코로나19가 제공한 셈이다.

집에서 일하는 부산대 직원은 코러스(국립대 행·재정 자원 관리 시스템)에 접속해 출퇴근을 확인한다. 근로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다. 시간당 1회 이상 코러스를 사용해 일해야 하며, 초과근무는 금지된다. 부서장은 매일 재택근무자가 수행한 업무 결과와 다음 날 업무 계획을 보고받는다.

직원 반응은 호의적이다. 부산대 총무과 담당자는 “처음 시행하지만 어려움은 없다. 개학 연기 탓에 자녀를 돌봐야 하는 직원, 임신부 등에게 큰 도움이 된다”며 “재택근무가 종료되면 후속 작업으로 직원 만족도 조사를 거쳐 앞으로 근무형태에 적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통신사 IT기업은 물론 금융권으로도 재택근무가 일반화됐다. 부산은행은 이달 초부터 본부 직원 900여 명 중 업무 특성상 어려운 근무자를 제외하고는 부서별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하루 평균 60여 명이 재택근무를 선택한다. 부산은행은 이미 재택·원격근무를 비롯한 유연근무제를 시행할 수 있도록 클라우드 업무 환경을 구축했다. 부산은행 주상환 홍보팀장은 “코로나19 사태로 재택·원격근무 가능성을 실험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콜센터 재택근무도 이뤄졌다. 신한은행은 지난 16일부터 금융권 최초로 콜센터 직원 3분의 1을 재택근무로 돌렸다. 홈쇼핑 콜센터에도 재택근무 바람이 분다. CJ오쇼핑은 절반 이상, 현대홈쇼핑은 20%, GS홈쇼핑은 15%, 롯데홈쇼핑은 5%가량 직원이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코로나19가 기업의 인식을 완전히 바꾼 결과다.

관공서도 예외는 아니다. 오거돈 부산시장은 지난 23일 대시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시 공무원도 부서별 3분의 1씩 재택근무를 하도록 했다. 일선 구·군 역시 직원들이 기존 시차출퇴근에 더해 재택근무를 하도록 독려한다.

■고용·노동정책 개편 급물살

한번 몸에 밴 ‘좋은 습관’을 완전히 원점으로 되돌릴 수는 없다. 코로나19가 바꾼 근무환경이 고용·노동정책에 상당한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재택·원격근무가 보편적 근로형태인 스마트워크 시대가 순식간에 앞당겨졌다는 해석도 설득력을 얻는다.

코로나19로 지원 절차가 간소화된 지난달 25일 이후 한 달간(지난 26일까지) 부산고용노동청에 접수된 지역 기업의 유연근무제 신청은 95개 사업장, 730명에 달한다. 유연근무제는 크게 시차출퇴근 선택근무 재택근무 원격근무로 나뉜다. 정부는 1인당 유연근무제를 1주에 3회 이상 시행하면 10만 원(연간 520만 원), 1~2회 하면 5만 원(〃 260만 원)을 간접노무비로 지원한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일·가정 양립 실태 조사’에서 국내 5인 이상 사업장 중 유연근무제를 하나라도 도입한 비율이 24.4%에 그치고, 특히 재택근무와 원격근무 시행 비율이 각각 4.7%와 3.8%에 불과한 것과 대조를 보인다. 고용노동부는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유연근무제를 도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산업 현장이 깨닫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 차원의 논의도 본격화한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 23일 ‘유연근무제의 도입 현황과 향후 과제’라는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감염병 방지 대책뿐 아니라 상시적인 재택·원격근무가 확산돼야 한다고 평가한다. 또 ‘시간’에 유연성을 주는 시차출퇴근·재량·선택근무가 근로기준법에 정의됐지만, ‘장소’를 유연하게 하는 재택·원격근무는 직접 규정되지 않은 만큼 이에 대한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업종·사업장별 적합한 유연근무제를 적용하려면 지금이 바로 훈련·연습할 기회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또 재택근무가 근로시간이 아니라 성과에 초점을 맞추는 만큼, 호봉제 대신 직무·역할급 중심의 임금체계로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회입법조사처 전형진 조사관은 “유연근무제에 적합한 직무는 갈수록 훨씬 늘어날 것”이라며 “긍정적 효과가 확산·공유돼 사업주들이 적극적으로 도입하도록 논의가 계속돼야 한다”고 밝혔다.

권혁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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