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BC 540~480)의 명언(明言)이다. 왜 명언(名言)일까? 그럴 만하다. 고정불변 실체 없이 만물이 유전한다는 진리를 밝혔기 때문이다. 같은 강이라고 늘 똑같은 강물이 흐르지 않는 법이다.
헤라클레이토스보다 100여 년 먼저 만물유전 진리를 밝힌 성자가 계셨다. 고타마 싯다르타(BC 624~544)다. 고타마 부처가 이룩한 불교에서는 만물유전을 무상(無常)이라 한다. 늘 항상(常) 언제나 변함없이 어디에서나(always) 똑같은 불변의 상(常)이 없다(無)는 뜻이다. 삼라만상 모두 흐르고(流) 구르며(轉) 유전하니 무상이다.
이 무상은 고정불변의 우주 절대진리로 여겨지던 브라흐만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나라는 인간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몸도 마음도 생각도 행동도 달라진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고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無我)다. 진짜 나인 내(我)가 없다(無)는 뜻이다. 무아는 진아(眞我)인 아트만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브라흐만과 아트만을 부정하며 시작한 불교는 인간이 겪는 괴로움의 첫 번째 근본인 어두운 무명(無明) 어리석은 무지(無知)에서 벗어나 무상과 무아를 깨달아 번뇌 없는 무심(無心)과 집착 없는 무착(無着)을 추구하는 종교다.
불교에 무라는 한자가 많이 나온다. 하지만 무위(無爲)는 불교가 아니라 노자도덕경을 기반으로 하는 도교의 핵심개념이다. 인위(爲)적인 것 없이(無) 자연에 ‘내비두어’(let it be) 맡긴다는 뜻이다. 도교의 무위도 불교에서 말하는 여러 무○와 일맥상통하는 큰 뜻이 있겠다. 연기의 깨달음을 얻으면….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