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만 정권 부정선거 맞서
- 고교생 신분으로 학생운동 주도
- 당시 본지·지역 학생 주축됐던
- 희생자 위령탑 건립에도 앞장
- 본지,4·19 위령탑 비문 탁본
- 60주년 기념해 민주공원에 기증
“부산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 맹렬히 저항했던 ‘야도’이자 정의의 도시였는데, 이번 총선에선 더불어민주당이 부산에서 참패하는 모습을 보고 착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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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국제신문 이처문(왼쪽) 대표이사가 김종기 부산민주공원 관장에게 ‘4·19혁명 희생자 위령탑’ 비문의 탁본을 기증하고 있다. 김종진 기자 |
오는 19일은 이승만 독재정권을 몰아낸 4·19혁명이 꼭 60년을 맞는 날이다. 3·15 부정선거에 대한 항의로 촉발된 4·19 민주주의 혁명의 중심무대는 바로 부산 경남이었다. 당시 부산지역 학생운동을 이끌며, 4·19혁명을 완성한 리형호(79) 선생은 16일 본지 취재진과 만나 4·15총선에 관한 소회로 말문을 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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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 당시 경남학생위원회 대표를 맡아 4·19혁명을 이끌었던 리형호 선생이 16일 국제신문 취재진에게 혁명 60주년 소감을 밝히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kookje.co.kr |
1960년 부산 항도고(현재 가야고)에 재학 중이던 리 선생은 경남학생위원회 대표를 맡아 학생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당시 4·19 혁명을 주도했다. 그는 “부정선거로 인해 학생들이 울분을 토하면서 경남학생위원회를 조직했다”며 “낮에는 시위하고 저녁에는 사복으로 갈아입고 시위 계획을 짜면서 부산에서 마산으로 원정시위를 가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4·19혁명의 주인공은 부산지역 고교생들이었다. 그는 당시 서면교차로에서 시위를 벌이다 오른쪽 눈을 다쳐 시력을 잃었다. 부상에도 굴하지 않고 그를 위시한 학생·시민은 끝내 이승만을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리 선생은 이에 멈추지 않고 이듬해엔 ‘4·19혁명 희생자 위령탑’ 건립을 위한 모금운동을 주도했다.
현재 부산 중구 민주공원에 있는 4·19혁명 희생자 위령탑은 이승만 독재정권의 부당한 권력에 맞섰던 4·19혁명 희생자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자 부산시민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 건립했다. 리 선생은 “국제신문(당시 국제신보)과 부산지역 초중고교생이 주축이 돼 길거리 모금을 벌였다. 불과 3개월 만에 수천만 원의 거금이 모였다”며 “전국에서 유일하게 정부가 아닌 시민의 힘으로 세운 위령탑”이라고 소개했다. 이 위령탑은 오늘날 부산시민의 긍지로 상징된다.
1962년 용두산공원에 세워졌던 높이 11m의 석조 위령탑은 영령 봉안소(규모 73㎡) 건립과 함께 2007년 2월 15일 민주공원 입구로 이전했다. 영령 봉안소에는 당시 희생된 19명과 이후 돌아가신 분들의 영령사진이 봉안돼 있다. 리 선생은 “4·19혁명 영령 봉안소가 부산을 비롯해 마산과 서울 등 총 3곳에 세워졌는데 부산 봉안소가 가장 작은 규모이며, 시설이 낙후돼 있다”면서 “봉안소가 도로 옆에 바로 붙어있는 구조이다 보니 비가 내리면 습기가 차 시설 개선이 이른 시일 내에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리 선생은 고교생 신분으로 거대한 학생 조직을 이끌었다. 그는 혁명을 주도한 공로로 1960년대 4·19 민주혁명 공로자로 건국포상이 결정됐지만, 독재정권이 주는 상이라며 이를 거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4·19혁명 이후에는 96개 학교가 참여한 경남총학생회연합의 대표를 맡았다. 이어 1964년 부산지역 44개 고교와 대학교 연합체인 ‘부산총학생연합회 결성준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또한 그해 한일외교협정에 반대하는 6·3항쟁을 주도했다.
그러던 중 리 선생은 1973년 부인이 간호사로 일하던 미국 시카고로 떠났다. 미국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1977년 당시 근무하던 공장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해 몸을 심하게 다쳐 수년에 걸쳐 수술을 받았다. 현재도 오른쪽 손이 불편한 상태다. 40여 년의 미국 생활을 끝내고 2014년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현재 대전에 거주하며, 학창시절을 보낸 부산과 삶터였던 미국 등을 오간다. 리 선생은 “2014년 세월호 사고 이후 한국에 들어왔다. 매년 이맘때면 부산을 찾아 혁명 희생자의 넋을 위로한다”고 말했다.
4·19혁명 60주년의 남은 숙제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리 선생은 “4·19혁명 희생자의 민주정신은 이후 부마민주항쟁, 5·18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져 오늘에 이른다. 앞으로는 자주정신이라는 4·19혁명 정신을 계승해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데 노력하자”고 말했다.
한편 4·19혁명 희생자 위령탑 건립을 주도한 국제신문은 올해 혁명 60주년을 기념해 위령탑 비문의 탁본을 16일 오전 부산민주공원에 기증했다. 4·19혁명의 의미와 정신에 관한 내용을 담은 비문은 1961년 7월 청마 유치환 선생이 썼으며, 탁본은 부산대 서도회 졸업생 작품이다.
김미희 기자 maha@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