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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그의 길 위에서 생각한다 <13> 태양의 기운 듬뿍 함양의 蔘

생명의 산에서 캐낸 삼, 선정 베푼 고운(孤雲)에게 보은의 선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4-26 19:20:57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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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령군 제방 공사 마무리 시기
- 지리산 수목 이전 맡은 일꾼들
- 큰 바위 아래 틈서 산삼 발견
- “심봤다!” 외치고 정성껏 절해

- 온전히 자연서 난 70년 된 영물
- 주민 모두 탐하는 기색도 없이
- 홍수 피해 근심 씻겨준 태수에
- 보답하라는 신령님 뜻이라 생각

- 치원, 거절했지만 백성 뜻 완강
- 결국 그 귀한 마음 받고 술 대접
- 육신 쇠한 어머니에 달여 올려

   
‘선랜드’ 함양(咸陽)은 민족의 성산으로 불리는 지리산에 둘러싸여 있는 데다 고산지대가 많아 산양삼이 자라는 데 천혜의 땅으로 불린다. 사진 중앙이 함양읍내이고, 저 멀리 보이는 능선이 지리 주능선이다. 천왕봉도 선명하다. 드론 촬영. 함양군 제공
■심봤다!

“이기 뭐꼬?”

물길을 돌려 쌓는 제방공사가 마무리되어가자 이제 대관림 조성에 더 많은 공을 기울이고 있다. 산 중턱에서 옮겨 심을 수목을 찾던 중 한 사람이 큰 바위 아래 초록색 풀잎 앞에서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지리산은 오래전부터 생명의 산으로 불릴 만큼 약초가 지천이니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면서도 하나둘 모여든다. 그들 중 늙수그레한 한 사내가 무릎을 꿇고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갑자기 두 팔을 번쩍 하늘을 향해 뻗어 올리며 소리친다.

“심봤다!” 일순간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가 땅바닥에 무릎을 대고 절을 올린 뒤 다시 일어서며 “심봤다”를 외치자 주위 사람들도 그를 따라 정성을 다해 절을 올린다. 그렇게 세 번을 외친 사내는 맨손으로 주변의 풀과 돌들을 걷어내며 조심조심 줄기를 따라 땅속을 파 들어간다.

   
한식경이 걸려 마침내 실뿌리 하나 다치지 않은 채 온전히 땅속에서 삼(蔘)을 들어낸 사내는 조심스럽게 흙을 털어내고 뇌두(삼의 머리)를 살핀다. “100년은 못 돼도 70년은 넘은 귀한 영물일세.” 몸통은 새끼손가락 굵기였으나 어른 손 한 뼘 이상 올라가며 세월의 인고를 드러낸 뇌두며, 몇 갈래로 갈라지고 또 갈라지며 뻗은 뿌리는 세근(細根)까지 족히 한 자는 되어 보인다.

아직은 재배는 생각지도 못한 때였으니 그저 삼이라 했지만 값으로 따지자면 사람에 따라 부르기 나름이다. 그런 엄청난 값어치에도 처음 본 사람이나 캔 사람이나 지켜본 사람이나 모두 탐하는 기색은 눈곱만큼도 없다. 그래도 먼저 입을 연 것은 처음 본 사내다. “지리산 신령님도 그분이 고맙고 위하시려는 뜻인 모양입니다.” “암, 우리 천령, 백성의 백년 근심을 씻어주신 분인데.” “그렇지! 나라가 이 모양인데 태수님께서 강건하셔야지!” 이심전심, 모두의 생각은 하나였고 이구동성, 모두의 뜻이 단번에 모아졌다.

■나라의 내일은 인재 양성이려니

   
산삼체험장에서 활짝 웃는 외국인 관광객.
비로소 관아에서 평상의 업무를 살필 여유를 찾았다. 치원은 견훤의 동진에 대비해 황석산에 올라 산성(山城)을 둘러보았다. 치열했던 삼국 대립의 시대에 축조된 산성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수비 병사를 약간 늘려 그들로 하여금 보수하며 관아와의 통교를 위한 봉수체제만 유지하면 될 듯싶었다. 이제는 또 다른 내일을 준비할 여유가 생겼다.

백성의 오늘은 배를 불리는 것이고, 내일은 곳간을 든든하게 채우는 일이다. 나라의 오늘은 백성을 안정되게 하고 국방을 튼튼히 하여 외침으로부터 영토를 지키는 일이다. 내일은 나라의 부강을 더하여 그 힘을 키우는 것이지만 무엇보다 인재의 양성이 따라야 한다.

신라는 지난날 화랑제로 청년을 양성해 삼국통일의 중추가 되게 하였으나 통일 이후 슬며시 사라졌다. 그 뒤 신문왕 2년(682년) 왕경에 국학(國學)을 설치, 유학을 중심으로 한 교육제도를 마련했으나 그 혜택을 받는 이는 소수였다. 치원은 지방에서도 관리가 될 수 있는 청년들에게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되려한다.

   
함양 산양삼.
문득 문밖이 소란스러워지더니 관아 마당으로 사람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인가 싶어 마루로 나가니 낯익은 장정들이 들뜬 얼굴로 들어선다. 모두 수목 이전을 맡은 이들이다.

“무슨 일이오, 누가 다치기라도 한 거요.” 치원의 걱정에 장정들은 손사래를 치며 환하게 웃는다. 그중 나이 든 사내가 앞으로 나서더니 천에 싸인 무언가를 양손으로 받쳐 내밀며 허리를 굽힌다.

“그것이 무엇이오?” 사내가 천을 펼쳐 보이며 환하게 웃는다. “삼입니다. 수목을 고르다 바위틈에서 발견했는데 아주 상품입니다.” 얼핏 봐도 귀한 물건임을 알 수 있지만 치원은 덤덤하다. “그럼 강주나 어디 큰 고을에 내다 팔일이지 왜 이리 온 것이오.” 치원의 말에 사내들은 모두 무릎을 꿇는다. “저희 것이 아니라 태수님 것입니다.” “허허, 나는 그만한 재물이 없습니다.” “천령 백성들의 보답하고픈 마음을 지리산 신령님께서 헤아려 저희의 눈과 손을 빌려 내리신 것입니다.” 느닷없는 실랑이가 한참이나 멈추지 않았으나 “그럼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겠다”는 억지까지 부리니 치원은 어쩔 수 없이 받으며 대신 넉넉한 술자리를 마련해주도록 한다.

■인륜의 근본은 효이니

   
당에서 돌아오던 그해 아버지께서 돌아가셔 임종조차 못하였다. 인륜의 근본인 효의 근원 절반을 잃어버린 것이니 어머니에 대한 마음은 더욱 깊었다. 그러나 혼인 전에는 장성한 나이임에도 육신을 고되게 했고, 혼인한 뒤에는 왕궁에서의 갈등으로 마음을 쓰게 하였으니 불효가 막심했다. 외직으로 나와 태산 태수로 봉직하며 비로소 작은 효도나마 할 수 있었는데 세월은 누구도 비껴가지 않으니 어머니의 육신은 하루하루 쇠했다. 뜻하지 않았으나 지리산 영기(靈氣)를 품은 귀한 삼을 얻게 되었으니 그것으로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리라.

치원은 안해와 함께 어머니 앞으로 가 삼을 꺼내 보인다. “이건 삼 같은데, 이 귀한 걸 어떻게….” 어머니는 놀란 듯 말을 맺지 못한다. “예, 지리산에서 수목을 고르던 고을사람이 캐왔습니다.” 치원이 전후 사정을 말씀드리자 어머니는 고개를 젓는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백성들의 귀한 물건을 이리 얻어서야….” 치원도 민망하지만 어머니의 마음을 편하게 하려 편한 웃음을 짓는다. “모두의 고집이 완고하니 작으나마 성의는 베풀었습니다. 그러니 마음 편히 드시고 강건하세요.” “어머님, 제가 정성껏 달여 올리겠습니다.” 며느리가 공손히 말하자 어머니는 손사래를 친다. “무슨 소린가. 태수님이 드셔야지. 제방과 대관림 일로 그리 애를 쓰셨는데.” 따스한 실랑이가 한참동안 이어졌지만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면서도 한마디 덧붙인다. “나는 그저 어디 높고 경치 좋은 곳에서 노인성(老人星)이나 한 번 보면 될 것을….”

노인성이라면 용골(龍骨)자리에 위치한, 하늘에서 세 번째로 밝은 별이다. 그렇지만 남쪽하늘 낮은 자리에 있어 높은 지대가 아니고는 잘 볼 수 없으니, 보게 되면 장수한다고 믿는 별이다. 형님은 머리를 깎고 출가해 곁에 있는 자식은 치원 하나뿐이니 오래도록 지켜주며 보고 싶은 마음이리라. 치원은 흘려듣지 않았다.

뒷날 사람이 삼을 재배하니 인삼(人蔘)이라 하고, 자연의 삼은 ‘산삼(山蔘)’이라 하여 귀하게 여겼다. 특히 새가 산삼 열매를 먹고 씨를 배설해 자란 것을 ‘천종(天鍾)’이라 하여 으뜸으로 친다. 하지만 산삼은 신령의 뜻이라야 찾을 수 있으니 산삼이나 인삼 씨를 자연 상태에서 생육토록 해 ‘장뇌’ ‘산양삼’이라 한다. 비록 그 효능이 산삼에는 완전히 미치지 못하더라도 해발 700m 이상 고지에서 자란 것은 버금간다 한다. 옛 천령 땅 함양은 지리산으로 둘러쌓여 있어 예부터 산삼이 자랐으니 산양삼 생육에도 최적이다. 마침내 오늘 그 땅에서 효능 뛰어난 산양삼으로 이름을 높이더니 ‘2020산삼항노화엑스포’까지 개최한다. 지리산 신령의 뜻이리라.

김정현 객원 논설위원·작가

일러스트 = 백정록 / 제자(題字) = 이희순

취재 지원= ㈜은산해운항공, ㈜DK-LOK, ㈜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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