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죄 주장하며 법원에 재심청구
- 수사과정 위법·자백 강요 폭로
- “나같은 피해자 더는 안 생기길”

“저와 같은 아픔을 후손이 겪지 않으려면 사법부가 변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에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6일 부산지법 앞에서 최말자 씨가 56년 만에 재심을 청구하기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소감을 말하고 있다. 이원준 프리랜서

56년 만에 ‘미투(Me too)’에 나선 최말자(74·국제신문 6일 자 8면 보도) 씨가 6일 부산지법에 재심을 청구하기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말했다. 최 씨는 1964년 5월 6일 자신을 성폭행하려는 남성에게 저항하다 혀를 깨물었다는 혐의로 부산지법으로부터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모자를 눌러 쓰고 흰색 마스크를 낀 최 씨는 이날 56년 전과 마찬가지로 ‘정당방위’를 주장했다. 그는 “2018년 한국여성의전화에 찾아가 억울함을 풀고 싶다고 상담한 뒤부터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가슴의 상처와 억울함이 많이 풀렸다”며 “재심이 개시돼 정당방위를 인정받고 무죄를 선고받는다면 여한이 없다”고 호소했다. 또 “아직도 저와 같은 아픔을 겪는 여성이 많다. 억울한 상처를 혼자 끌어안지 말고 저를 보고 힘과 용기를 얻어 한을 풀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한다”고 위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최 씨의 법률 대리인인 법무법인 지향 김수정 변호사는 “최 씨의 수사 과정에 위법성이 있어 재심 개시 사유가 충분하다”고 확신했다. 김 변호사는 “최 씨는 검찰 조사 첫날 구속 이유와 변호인 선임권, 진술 거부권을 고지받지 않은 채 불법적으로 감금됐고 조사 기간 내내 ‘고의로 혀를 절단한 것 아니냐’는 등 자백을 강요받았다”며 “이는 당시 헌법상의 불법체포 감금죄와 타인의 권리행사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또 “최 씨의 생생한 증언으로도 수사 과정의 불법성이 입증되나 당시 수사 기록도 확보하려 노력 중이다. 이는 검찰이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심이 개시되더라도 최 씨의 행위가 정당방위로 인정되기까지는 치열한 법리 다툼이 예상된다. 강제로 키스하려는 가해자의 혀를 깨물거나 절단해 재판에 넘겨진 유사 사건은 최근까지도 유무죄가 엇갈린다. 김 변호사는 “당시 판결은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범죄 유발 책임을 전가하고, 정당방위 인정 요소를 잘못 해석한 위법이 있다”며 “성인지 감수성은 변화된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가치가 아니라 보편적 가치이며, 대상 판결을 심리한 때에도 견지됐어야 할 사회윤리적 가치”라고 주장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한국여성의전화, 부산여성의전화 등 전국 여성·시민단체 관계자 100여 명과 최 씨의 재심 청구를 도운 지인이 참석해 재심 개시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수사·사법기관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박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