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곤 이유로 국선 신청 불구
- 원심, 변호인 없이 심리 진행
- 항소심서 방어권 부실 드러나
- 징역 3월서 벌금형으로 감형
보이스피싱 조직에 체크카드를 팔아넘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50대 남성이 방어권을 충실히 보장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항소심에서 감형됐다. 기초수급자인 피고인이 ‘빈곤’을 이유로 국선변호인 선정을 청구했음에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원심의 판단이 위법하다는 취지로 피고인의 권리 보장에 경종을 울렸다.
부산지법 형사2부(황현찬 부장판사)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51) 씨에게 징역 3월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했다고 19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심 판결에 직권파기 사유가 있어 피고인의 양형 부당 주장에 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을 파기한다”고 판시했다.
판결문을 보면 A 씨는 지난해 5월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부터 “체크카드를 빌려주면 건당 100만 원, 3일간 300만 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자신의 명의로 된 은행 체크카드 3장을 택배로 발송했다. 부산지법 형사11단독 신형철 부장판사는 지난 2월 A 씨에게 징역 3월을 선고했다. A 씨는 성범죄로 2017년 9월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아 당시 집행유예 기간이었다.
집행유예 기간에 금고형 이상의 실형이 확정되면 집행이 유예된 형까지 모두 복역해야 하기에 A 씨는 총 2년9개월간 수감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가 이례적으로 원심이 A 씨의 방어권을 충실히 보장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며 감형했다. A 씨는 지난해 12월 법원에 ‘빈곤 기타 사유’를 이유로 국선변호인 선정을 청구하면서 기초생활수급자·장애인 증명서를 소명자료로 제출했다. 그러나 원심은 국선변호인을 선정하지 않았고, A 씨는 변호인 없이 재판을 받았다. 형사소송법은 ‘법원은 피고인이 빈곤 그 밖의 사유로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는 경우에 피고인의 청구가 있는 때에는 변호인을 선정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다만 피고인이 미성년자, 70세 이상, 청각·언어장애인 등이 아닌 경우 법원 판단에 따라 국선변호인을 선정하지 않을 수 있다.
원심은 지난 2월 판결을 선고하면서 A 씨가 구속되자 국선변호인 선정을 명했다. 구속된 피고인에게 변호인이 없으면 법원이 국선변호인을 선정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피고인은 빈곤으로 인해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할 여지가 충분하다. 원심은 국선변호인을 선정해 그 변호인이 공판심리에 참여하도록 해야 했으나 국선변호인 없이 공판심리를 진행했다”며 “원심 판결이 국선변호인 선정에 관한 형사소송법 규정을 위반해 피고인이 국선변호인의 조력을 받지 못했고 효과적으로 방어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원심 판결에 위법이 있어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와 함께 피해자와의 합의 등 유리한 정상이 더해지면서 A 씨는 벌금형으로 감형돼 구치소에서 풀려났다.
국선전담변호인으로 활동해온 최해영 변호사는 “피고인이 양형부당만 주장하고 원심 절차의 법령 위반을 주장하지 않았는데도 항소심 재판부가 직권으로 살펴 원심의 법령 위반을 찾아냈다.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를 더욱 두텁게 보호한 판결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