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히든 히어로 <10> 화재서 이웃 구한 이재군 씨

검은 연기가 동네 덮친 날 … 7분 만에 상황 정리한 개금동 이반장

  • 김채호 기자
  •  |   입력 : 2020-05-19 20:00:26
  •  |   본지 10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화마 휩싸인 다세대주택
- 거동 불편한 주민 구하려고
- 맨몸으로 불길 뛰어든 이 씨
- 이웃들과 힘 합쳐 방범창 뜯고
- 연기 속 주민 무사히 구해내

- 혹여나 소방차 진입 못 할까봐
- 오토바이 타고 골목 교통정리
- 119신고부터 도착까지 7분간
- 소방대원도 놀랄만큼 완벽 조치

- “40년 터 잡고 살아온 우리동네
- 어떤 일이든 발 벗고 나설 것”

“여기 건물 안에 사람 있어요!”

부산소방 119 상황실로 다급한 목소리가 전해졌다. 다세대주택에 불이 났고 건물 안에 사람이 있다는 신고전화였다. 수화기 너머로 “아저씨 피하세요!”를 외치던 신고자는 돌연 “어…구했어요”라고 당황한 듯 말했다. 소방대가 도착하기 전 화재현장에서 시민을 구해낸 이는 평범한 이웃주민이었다.

국제신문 취재진은 우리 속에서 생활하는 평범한 이웃, 히든히어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던 중 식당을 운영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일부 식당이 휴업을 하거나 영업이 어려워진 상황임을 감안해 도움이 되고자 취재진은 히든히어로의 식당에서 밥 한 끼를 먹기로 했다. 다만 기자는 따로 신분을 속이고 밥 구걸을 하기로 했다. 부산온 시즌1의 기획의도와 같이 이웃이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때 손을 내미는 모습을 기대하며….
   
지난 13일 개금동 히든 히어로 이재군(오른쪽) 씨와 아내 배정희 씨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동영상 캡처
■다시 느낀 밥 한 끼의 온기

지난 13일 부산진구 개금동 히든히어로가 있는 가게에 취재진 중 일부가 들어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가게 앞에서 한참을 서성인 기자는 겨우 용기를 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주방에서 체격 좋은 60대 남자가 나왔다. 온 몸이 파르르 떨렸다. 기계적으로 외웠던 말을 내뱉었다. “죄송하지만 수중에 돈이 없는데 밥 한 그릇 주실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사장 이재군(67) 씨는 별일 아니라는 듯 “앉으세요”라고 쿨하게 말한 뒤 주방으로 사라졌다. 민망함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잠시 후 이 씨는 양철 쟁반에 한 끼를 챙겨 가져왔다. 뚝배기에 아구탕이 담겨있고 밑반찬이 놓였다. 앞서 취재진이 시킨 음식과 다름 없었다. 애써 침착하려고 호흡을 가다듬었지만 음식을 보는 순간 기자 눈에 뭔가가 고였다. 안경을 닦는 척하면서 눈가를 슬쩍 닦은 뒤 음식을 내놓은 이 씨를 다시 봤다. 그가 바로 히든히어로의 주인공이다.

따끈한 아구탕 한 그릇을 비우고 “사실은 기자입니다”라고 사정을 밝혔다. 기자의 설명을 들은 이 씨의 부인 배정희(64) 씨는 “배고프다고 하니까 밥을 드렸지”라며 “요즘 코로나로 너무 어려운 시절이 되다 보니 젊은 사람이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그랬겠나 싶었죠”라고 말했다. 멋쩍은 웃음을 지은 이 씨도 “딴 걸로 달라고 하면 못 주지만 배가 고프다고 하는데 밥은 줘야죠”라며 쑥스러운 듯 말했다.

이 씨는 개금동에서 40년 넘게 산 토박이다. 개금동에서 청년시절을 보냈고 아내를 만났다. 세월이 흘러 손자도 태어나 대가족이 되었다. 이 씨의 가게는 늘 동네사람들이 모이는 사랑방이 되었고,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가 찾아올 때 마다 이웃과 함께 극복하고 이겨냈다. 그에게 개금동은 고향 그 이상의 보금자리였다. 당연한 듯 이 씨는 동네에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나서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검은 연기가 동네를 덮친 그날도 이 씨는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나섰다고 회상했다.

   
지난 2월 부산 부산진구 개금동 다세대주택에 화재가 발생(왼쪽)했다. 소방관들이 불을 끄고 있다. 동영상캡처
■“우리 동네 일이니까”

지난 2월 15일. 개금동에 퍼진 매캐한 연기가 이 씨를 이끌었다. 다세대주택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고, 한 청년은 119에 전화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하나 둘 화재현장으로 몰려들었다. 그때 신고자가 전화기를 붙잡고 “여기 안에 사람이 있어요. 빨리 와주세요!”라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1층 창문 틈으로 보이는 정 모(64) 씨는 거동이 불편해 스스로 대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소방차가 도착하기 전이었다. 방 안에서 정 씨의 신음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귀중한 목숨이 사라질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 이 씨는 주저하지 않고 나섰다. 그는 “사람부터 구해야 합니다. 도와주세요!”라고 외쳤다. 동네 주민도 하나 둘 그의 말에 움직였고 힘을 합쳐 방범창살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창살이 뜯겨나갔다. 창문을 열자 내부는 이미 불꽃과 함께 연기가 가득했다. 주민들은 누구도 불꽃과 연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맨몸으로 집 안에 갇혀있던 정 씨를 창문으로 끄집어냈다. 이 씨는 “방안은 앞이 안보일 정도로 연기로 차 있었다”며 “사람부터 구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딴 거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고 생생하게 그날을 기억했다.

소방차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 이 씨는 또다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했다. 좁은 동네에 소방차가 쉽게 진입할 수 있도록 오토바이를 타고 골목 내 주차정리를 했다. 동네 주민 어느 누구도 협조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 씨는 “제가 그 자리에 없었다고 해도 개금동 주민들은 늘 마을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기에 누구나 했을 것이다”고 자신했다. 이 모든 일이 119 신고 후 소방차가 도착한 7분 안에 일어났다. 주민의 손으로 구조된 정 씨는 연기를 마셨지만 병원 치료 결과 생명에는 큰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에 출동했던 부산진소방서 소방관들은 당시 모습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지휘차량을 담당했던 권재헌 대원은 “좁은 길로 이루어진 개금동 골목 특성상 진입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출동했는데 현장 상황은 반대였다”며 “주민들의 활동을 본 뒤 진입이 쉬웠던 이유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화재조사업무를 맡은 박정진 대원도 “건물에 사람이 있었다면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며 “우리처럼 안전 장구도 없이 맨몸으로 구조 했다는 것은 보통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다. 굉장히 용감한 분들이다”고 놀라워 했다.

지난 2월 부산진소방서는 이 씨를 포함해 4명의 시민에게 표창장을 수여했다. 조영이 지휘조사계장은 “위험을 무릅쓴 시민의 용기와 판단력이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며 “저를 포함해 출동했던 직원 일동이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당시 현장을 찾았다. 사고 후 3개월이 지난 지금은 벽면과 천장이 하얀 페인트에 덮여져 화재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어려움에 처한 타인을 보고 그 자리에서 구조한 뒤 뿔뿔이 흩어져 일상으로 돌아간 이들 덕에 기자는 마음 한편에 따스함이 감도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취재진은 이 씨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통닭을 드렸다. 그는 “손자가 치킨을 좋아하는데 너무 좋아할 것 같다. 감사하다”고 말했다. 취재진은 마지막 질문으로 “만약 그때로 돌아가면 똑같이 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당연하다. 우리 동네일인데!”라고 웃었다.

김채호 기자 신지영 작가

※ 제작지원 BNK, 한국주택금융공사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롯데 자이언츠 신임 감독 이동욱·단장 이택근(종합)
  2. 2국감 출석 거부한 지광(국제신문 대주주)에 국회 ‘동행명령’(종합)
  3. 3“인구 급증 강서, 교통혁신 필수…생곡소각장 대체부지 검토 건의”
  4. 4가덕 공사비 2000억 증액 목표…市 ‘국비확보’ 국회 상주반 가동
  5. 5갈맷길 36코스로 전면 개편
  6. 6올해 딱 한 번 지고 66번 이겼다
  7. 7[국제칼럼] 부캉이에게 부끄러운 북항 재개발 민낯
  8. 8똑똑한 ‘데이터 야구’와 수비 강화…개혁의 칼 뽑은 롯데
  9. 9지광, 신문을 사업 수단화…380억 땅 있으면서 102억 체불
  10. 10양산도시철 시운전에 소음 민원 빗발…방음터널 설치 요구
  1. 1국감 출석 거부한 지광(국제신문 대주주)에 국회 ‘동행명령’(종합)
  2. 2시설공단 이사장 후보 자진사퇴…田 인사 첫 낙마
  3. 3중수청장 “한동훈 딸 의혹 규명 필요”(종합)
  4. 4지광, 국감 출석 거부…“해결의지 있다면서 책임 회피”(종합)
  5. 5주진우 "김혜경, 유명 프로골퍼와 황제골프" 민주 "황당무계 소설" (종합)
  6. 62심 무죄 오세훈, 장동혁·한동훈과 보수 재편 주도권 경쟁(종합)
  7. 7‘YS 영원한 오른팔’ 최형우 전 장관 별세…향년 91세(종합)
  8. 8전재수 "지광 스님에게 국제신문 정상화 촉구 서한문 보낼 것"
  9. 9막판까지 조희대·김현지 정국…쇼츠 경쟁 오명도
  10. 10[속보] 이 대통령 지지율 다시 하락해 35.3%…민주 36.0%·국힘 42.6%
  1. 1부산경실련 “산은 이전 없다는 금융위원장 발언 유감”
  2. 2전기료 밀린 홈플러스…한전 ‘단전 예고’(종합)
  3. 3“관광수익 주민에 환원해야 지역활력”…글로벌 20개 도시 리더들 한목소리
  4. 4BNK금융 3분기 누적순익, 작년보다 19% 감소
  5. 5[한 손 뉴스] S/W 실행 환경 ‘Node.js’, 서버 해킹 보안 취약 경고
  6. 6음악 들으며 북항친수공원 걸어요
  7. 7부산 온 세계 해사인 “안전·친환경 실천”
  8. 8국민은행 해킹 정보유출 119명→2210명 확대(종합)
  9. 9국내 위성기술로 인니 해양환경 관리역량 키운다
  10. 10부산신보 ‘민생안심 협약보증’ 한 달 만에 1000억 돌파
  1. 1“인구 급증 강서, 교통혁신 필수…생곡소각장 대체부지 검토 건의”
  2. 2가덕 공사비 2000억 증액 목표…市 ‘국비확보’ 국회 상주반 가동
  3. 3갈맷길 36코스로 전면 개편
  4. 4지광, 신문을 사업 수단화…380억 땅 있으면서 102억 체불
  5. 5양산도시철 시운전에 소음 민원 빗발…방음터널 설치 요구
  6. 6자갈치축제에 늘어선 바비큐·통닭…취지 두고 갑론을박
  7. 7관객 춤췄다고 영업정지 ‘오방가르드’ 두 달만에 재개장(종합)
  8. 8시민단체 ‘국제신문 지키기’ 연대 나섰다…부울경 넘어 수도권 언론도 조명
  9. 9철새도래지 길냥이 급식소 분쟁, 항소심도 “추가 설치 불허 적법”(종합)
  10. 10日 주 20시간法 만들자 알바앱 급성장…편법 단기고용 판쳐
  1. 1롯데 자이언츠 신임 감독 이동욱·단장 이택근(종합)
  2. 2올해 딱 한 번 지고 66번 이겼다
  3. 3똑똑한 ‘데이터 야구’와 수비 강화…개혁의 칼 뽑은 롯데
  4. 4차준환 계보 잇는 피겨 왕자 서민규
  5. 5김태형 결국 롯데 떠난다…구단 늑장대처 도마
  6. 6롯데자이언츠 새 사령탑 ‘NC 우승 감독’ 이동욱…단장에는 이택근 선임
  7. 7‘올림픽 3연패 주역·AG 金6’ 펜싱 구본길 칼 내려놓다
  8. 8불가능을 가능케…亞패러게임 5위
  9. 9은퇴 앞둔 최민정, 시작부터 금빛질주
  10. 10태풍 ‘참피’영향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1차전 취소
우리은행
민선9기 지역일꾼 만나다
“인구 급증 강서, 교통혁신 필수…생곡소각장 대체부지 검토 건의”
주 13.7시간 노동의 덫
日 주 20시간法 만들자 알바앱 급성장…편법 단기고용 판쳐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