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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길 <96> 밀양 상사화길

재약산 허리춤 감싸도는 계곡길 … 노란 상사화·홍송 군락이 반겨

  • 박동필 기자 feel@kookje.co.kr
  •  |   입력 : 2020-06-21 18:41:48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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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전마을~표충사 2.4㎞ 코스
- 7월엔 희고 노란 상사화 장관
- 피톤치드 진동하는 숲놀이터
- 부울경 맘카페 '핫플'로 꼽혀

- 1만6500㎡ 달하는 명상의 숲
- 사연 깊은 돌무덤·송림 눈길
- 계곡 주변 민박집·식당 많아
- 먹고 쉬며 힐링하기에 제격

영남 알프스의 고장인 경남 밀양은 높은 산과 험준한 고개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비경을 간직한 곳이다. 재약산 중턱에 위치한 사자평 고산습지도 숱한 생명을 탄생시키는 ‘생태계의 자궁’으로 불린다.
   
아름드리 소나무 군락이 멋진 상사화길을 걷고 있는 사자평습지생태관광협의회 최태수(오른쪽) 회장과 염경일 사무국장. 박동필 기자
사명대사의 전설이 살아있는 재약산 표충사 부근의 산색과 경치는 으뜸이다. 표충사 허리춤을 감싸 도는 시원한 계곡 주변에 최근 명품 둘레길이 하나 생겼다. 걸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화룡점정 작업이랄까. 단장면 시전천 변을 잇는 길이 2.4㎞의 상사화(相思花)길이 뚫리고 사람이 몰려들면서 생기가 돌고 있다.

시전마을에서 표충사로 이어지는 1시간짜리 코스지만 빼어난 경치에 정신을 빼앗겨 도무지 지루할 틈이 없다.

부산과 대구를 연결하는 중앙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저 멀리 흰구름을 머리에 인 채 손짓하는 재약산 방면으로 달린다. 크레용으로 그린 듯한 예쁜 펜션들을 지난 뒤 시전마을이라고 적힌 돌 간판 부근에 차를 대고 둘레길 탐방에 나섰다. 일찍 찾아온 무더위도 하늘 위를 녹색의 지붕처럼 덮고있는 벚나무 터널 길에 이르러서는 맥을 추지 못한다. 계곡 깊은 곳에서 불어온 청량한 바람이 도시생활에 지친 탐방객의 머리를 씻어준다.

■‘애절한 사랑’ 사연 깃든 상사화길

   
10일 만에 시들어버리는 상사화의 꽃은 분홍 혹은 노란색이다. 사진은 진노랑 상사화다. 국립수목원 제공
상사화라는 꽃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상징한다. 옛날 출전이 불분명한 한 사찰의 전설을 따라가보면 애절한 사연과 만난다. 여정의 동반자인 사자평습지생태관광협의회 염경일(52) 사무국장은 “어느 사찰에 아리따운 처녀가 찾아오고 젊은 스님이 짝사랑을 했다고 한다. 시름시름 앓다가 피를 토하고 죽음을 맞이했는데 스님의 무덤에서 상사화가 피어났다는 전설이 그 내용”이라고 들려줬다.

상사화는 7월에 꽃대가 올라와 분홍 혹은 노란 색깔의 꽃을 피운 뒤 10일만에 시들어 버린다. 이후 녹색의 잎이 돋아나오니 사람들은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비유했다. 주민이 2년 전에 심었다는 상사화를 보기에는 시기상조여서 아쉬움이 남았다.

길을 걸어 가니 왼편에 컨테이너 여러 채가 눈에 띈다. 과거 30년 동안 찻길 옆에서 나물이나 직접 쑨 도토리 묵을 팔았던 동네 할머니들의 생업 터전이다. 원래는 천막을 쳐놓고 장사를 했으나 지난 1월 이 곳으로 옮겨 말끔하게 단장했다.

바로 옆에는 아동들이 줄을 타는 놀이기구로, 지능지수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우리아이 마음숲 놀이터가 있었다. 입소문이 나면서 부산·울산·경남 맘카페 회원들이 핫플레이스로 추천한 곳이란다. 자연이 내뿜는 피톤치드향이 진동하는 계곡에서 내 아이들이 뛰어 논다면 마다할 부모가 있을까.

■둘레길의 하이라이트 명상의 숲

   
둘레길은 이윽고 왼쪽으로 난 숲길로 접어든다. 1만6500㎡(5000평)에 달하는 명상의 숲이다. 하늘을 가득 메우고 서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홍송) 군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수백그루의 송림이 연출하는 풍광은 그 어떤 유명 화가의 작품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걸작품이다. 진한 피톤치드향이 온몸으로 전해져 온다.

이 곳 주변은 대부분 표충사 소유다. 이 숲의 가치는 수려한 경관에만 머물지 않는다. 마을주민과 사찰의 역사를 끌어안고 있는 기억창고 기능을 맡고 있다.

염 사무국장은 허물어진 돌무덤을 가리키며 “과거 이 곳은 사망한 주민을 화장 하던 곳이었다”고 했다. 멀지 않은 곳에 이 보다 규모가 큰 돌 무덤이 탐방객에게 속 깊은 사연을 들려준다. 입적한 표충사 스님들의 다비식을 치른 곳이라는 것. 일반인 화장터나 다비장은 모두 수십 년 전부터 기능이 멈춰 섰다.

육중한 소나무 몸에 다이아몬드형의 생채기를 발견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일제시대 때 항공유로 사용하기 위해 송진을 빼내던 수탈의 현장이다.

■먹고 자는데 불편없는 힐링지

길은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격인 서낭당을 지나 표충사 매표소로 향한다. 매표소를 지나 표충사까지 이어지는데 끝까지 가고 싶으면 매표를 하면 된다. 중간에서 마을 방면으로 되돌아 가도 결코 실망하지 않는다. 돌아오는 길은 전혀 다른 풍광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둘레길 주변은 먹고 마시는 곳은 물론이고 잘 수 있는 곳들이 많다. 밀양 최고의 힐링지로 이름 붙여진 이유다.

계곡 건너 시전마을에는 민박집이 꽤 있는데 잠을 자고 나면 머리가 맑아진다고 한다. 시냇물에 발을 담그거나 입수도 할 수 있고 덤으로 백숙까지 시켜 먹으면 여름 더위도 잊혀진다. 마을에서 시내쪽으로 10분 여를 가면 표충사 국민관광지가 나온다. 토속식당 18곳이 건강한 밥상을 차려내며 허기진 관광객들의 입맛을 사로 잡는다.

이 마을 정의설(58) 이장은 “식당들은 주변에서 나는 나물을 이용한 산채비빔밥, 더덕정식, 재약산에서 자라는 흑염소를 이용한 불고기 등이 특히 인기다”고 말했다. 정 이장도 '산들가든'이라는 이름의 식당을 운영하는데 부산에서 오는 단골손님이 꽤 많다고 한다.

박동필 기자 feel@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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