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 배우자 동의 얻어 채혈 후
- 자격 안 되는 ‘경사’가 영장 신청
- 검찰서 한 차례 기각됐다 기소
- 1심 “음주 인정되나 절차 부적절”
- 영장주의 원칙 따라 무죄 선고
만취 상태에서 오토바이를 운전하다 사고를 낸 혐의로 기소된 오토바이 운전자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운전자가 면허 취소에 해당하는 음주 상태에서 사고를 냈다는 점을 인정했지만 경찰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증거를 수집하지 않았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부산지법 서부지원 형사5단독(황지현 판사)은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한다고 21일 밝혔다. A 씨는 지난해 11월 11일 0시10분께 술을 마시고서 부산 중구 남포동에서 사상구 모라동까지 오토바이를 몰다가 길가에 주차된 화물차를 들이받았다. 사고 충격으로 의식을 잃은 A 씨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사상경찰서 소속 B 경사는 A 씨에게서 술 냄새가 나자 A 씨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 채혈 음주 측정을 진행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 당시 A 씨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 수준인 0.103%였다.
1심은 A 씨의 음주운전 행위를 모두 인정했지만 유죄를 선고하지 않았다. 경찰관이 법원의 영장이 없는 상태에서 피의자의 동의도 받지 않고 채혈한 것은 형사소송법상 영장주의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법원은 봤다. 황 판사는 나아가 사후에라도 경찰관이 채혈을 위한 영장을 발부받아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B 경사는 A 씨의 혈액을 뽑은 이후 검찰에 영장을 신청했다. 문제는 B 경사가 사법경찰관에 해당하지 않아 영장 신청의 자격이 없다는 점이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압수, 수색, 검증을 위한 영장 신청 주체를 ‘사법경찰관’(경무관, 총경, 경정, 경감, 경위)으로 한정한다. 이에 따라 검찰은 B 경사가 신청한 영장을 기각하면서 사법경찰관이 영장을 신청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경찰이 사후 영장을 신청해야 하는 48시간을 넘기면서 끝내 A 씨의 채혈을 위한 영장을 발부받지 못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A 씨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릴지 검토했지만 그가 2008년에도 음주운전으로 벌금 100만 원형을 선고받은 전력 등을 감안해 기소했다. 검찰은 A 씨 배우자의 동의를 받은 채혈인 만큼 피고인이 ‘임의제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1심은 이를 배척했다. 검찰은 이 사건의 항소 여부를 고심하고 있다.
황 판사는 “형사소송법 규정을 위반해 수사기관이 법원으로부터 영장 또는 감정처분허가장을 발부받지 아니한 채, 피의자 동의 없이 피의자의 신체에서 혈액을 채취했다”며 “사후적으로도 곧바로 영장을 발부받지 않았다. 이는 형사소송법상 영장주의 원칙을 위반해 수집한 증거로 유죄를 인정할 수 없다”고 무죄 이유를 설명했다.
임동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