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0년 이재양·류분기 씨 부부
- 장·차·삼남 한국전 징집돼 전사
- 그 소식에 이 씨는 병 얻고 숨져
- 막내도 베트남전쟁 나갔다 죽음
- 넷째아들도 올 4월 유명 달리해
- 1997년 추모제로 세상에 알려져
매년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이 되면 울산시민은 전쟁터에서 나라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지역 출신 4형제를 떠올린다. 이들의 부모는 생때 같은 자식을 한 명도 아닌 네 명이나 먼저 보내고 슬픔 속에 그리다 병을 얻어 세상을 떴다. 하지만 이런 영예로우면서도 안타까운 사연이 차츰 잊혀지고 있어 뜻 있는 많은 시민이 아쉬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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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일 울산시 울주군 두동면 구미리에 있는 충효정에서 국가유공자 4형제 전사자 합동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울주군 제공 |
6·25 전쟁이 발발한 1950년 울산시 울주군 두동면에 사는 이재양·류분기 씨 부부는 슬하에 5남 1녀를 두고 있었다. 장남 민건(당시 27세), 차남 태건(24세), 삼남 영건(21세), 사남 부건(12), 막내 승건(5) 씨였다. 이 씨 가정은 농사를 지으며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자식 모두 건강하고 단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예고 없는 비극이 집안으로 들이닥쳤다. 가족이 8월 15일 한 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했는데, 갑자기 군용 트럭이 몰려와 젊은이들을 그 자리서 징집해갔다. 이 씨의 장성한 세 아들도 그렇게 입대해 최전선에 투입된 뒤 모두 전사하고 말았다. 장남은 입대 이듬해인 1951년 7월 21일에 금화지구 전투에서, 차남은 같은 해 8월 철원지구 전투에서 각각 전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삼남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전사했는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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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전쟁과 베트남전에서 전사한 4형제. 장남 이민건, 차남 태건, 삼남 영건 씨는 한국전쟁에서, 막내 승건(왼쪽부터) 씨는 베트남전에서 각각 전사했다. 추모사업회 제공 |
3형제의 전사 통지서를 받은 아버지는 병을 얻어 1959년 세상을 떴다. 어머니는 남은 자식들을 건사하며 근근이 살아가던 중에 또 다시 청천벽력 같은 상황을 맞게 된다. 막내 승건 씨가 “형님 셋이 전사했는데, 나 역시 나라를 위해 헌신하겠다”며 입대를 선언한 것이다.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964년 당시 19살이었던 승건 씨는 해병대에 자원입대해 베트남전에 파병됐다. 그러나 승건 씨마저 1967년 8월 현지 꽝나이지구 전투에서 산화하고 만다.
1971년 정부는 나라를 위해 네 아들을 잃은 류 씨를 위로하고자 보국훈장 천수장을 수훈했지만, 막내까지 잃고 몸져 누운 류 씨는 1972년 유명을 달리했다.
기구하면서도 비극적인 이 가족의 사연은 그동안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사남 부건 씨가 형제의 이름이라도 후세에 기억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1997년 고향 두동면 묘역에 4개의 추모비를 세우고 추모제를 지내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2005년 뜻 있는 이들의 도움과 국가보훈처 지원 등으로 추모사업회가 설립됐고, 2008년에는 울주군이 묘역 일원에 4형제를 기리는 충효정을 조성했다. 4형제의 사연은 지역 교과서에 실렸고, 군부대에서 신병 교육자료로 활용되기도 했다. 2016년부터는 ‘거룩한 형제’라는 이름의 뮤지컬로 만들어져 매년 상연되고 있다. 하지만 추모제를 챙겼던 부건 씨도 올해 4월 노환으로 별세(향년 82세)했다. 전사한 4형제를 포함한 6남매가 모두 작고했다.
박형준 추모사업회 회장은 “4형제가 모두 전쟁에서 전사한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경우지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안타깝다”며 “군 단위 행사로 머무는 추모제가 시 차원의 공식행사로 승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종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