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허리 상처 그날의 아픔 증언
- 전차 수료증 유일한 전쟁 유품
- 정부, 참전용사에 더 관심을”
“운 좋게 전쟁에서 살아남았지만 전쟁 중 유탄에 맞은 오른팔과 군대 이동 중 차량 전복으로 다친 허리는 그날의 아픔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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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살 나이로 해병대 3기로 입대해 6·25 전쟁에 참전했던 참가했던 김종갑(88) 옹이 그의 유일한 전쟁 유품인 ‘전차수료증’을 들어보이며 당시를 회상하고 있다. 이종호 기자 |
18살 어린 나이로 해병대 3기로 입대해 12주간의 교육을 받고 1950년 6·25 전투에 참가했던 김종갑(88) 옹은 전쟁 발발 70주년을 앞둔 23일 “가슴이 먹먹해진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고향이 경남 창원인 김 옹은 대전에 있는 해운중학교 4학년 때 전쟁이 터지자 고향으로 내려와 해병대에 입대했다. 그가 군사교육을 받고 해병 제1전투단으로 배치돼 첫 전투에 참전한 것은 1950년 10월 원산상륙작전이었다.
김 옹은 “이 전투에서 (나는) 연대본부 통신병이었다. 적과 불과 150m 거리를 두고 전투를 벌였다. 벙커 위로 수많은 포탄이 떨어졌다. 하지만 조국을 위해 싸우는 것인 만큼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심정으로 전투를 치렀다”고 회상했다.
그는 1951년 11~12월 도솔산전투 때 중공군 부대에 포위돼 일주일 만에 탈출한 것이 가장 큰 위기의 순간이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김 옹은 “식량과 탄약이 떨어져 아군이 힘든 지경에 처했다. 다행히 미군에서 항공 투하로 보급품을 공급해 줘 확보한 식량과 탄약으로 적의 포위를 뚫고 구사 일생으로 빠져나왔다”면서 “삶과 죽음을 오가는 전투를 치르면서도 오로지 ‘조국수호’를 되새기며 두려움을 견뎌 냈다”고 강조했다.
그는 “1952년 육군보다 먼저 해군에 M4A3 전차 18대가 배치됐다. 6·25 전쟁을 치르면서 내게 유일하게 남은 전쟁 유품은 한국군 처음으로 도입된 전차부대에 편성돼 12주 교육을 받고 따낸 ‘전차 수료증’이다”고 소개했다.
김 옹은 이 같은 공적으로 1950년, 1952년, 1953년 전쟁 중 3차례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그는 1950년 8월 15일 해병대에 입대한 뒤 1956년 7월 2일 중사로 전역했다. 김 옹은 2011년부터 대한민국 6·25 참전유공자회 경남도지부에서 운영하는 ‘평화와 번영을 위한 6·25 실증교육’ 강사로 활동하면서 1년에 50개 학교를 직접 찾아 6·25 전쟁의 아픔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김 옹은 “2009년 3월 이전까지 6·25 참전용사들에 대한 국가의 특별한 대우가 없었다. 다행히 이후부터 월 32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6·25전쟁에 참전했던 중공군이 받는 120만 원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수준”이라며 “돈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목숨을 걸고 조국을 지켜낸 참전용사의 아픔을 위로하는 데 국가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종호 기자 jhle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