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흔 어르신 된 역전의 용사들
- “14개교 학생 1950년 8월 입대
- 국군 압록강·혜산진 진격 기여
- 흥남철수작전 등서 수백 명 전사
- 청년 호국정신 희미해져 씁쓸”
- 26일 어린이대공원서 추모 행사
“헌7학병은 호국과 구국정신으로 똘똘 뭉쳐 있었습니다. 자라나는 후손은 물론 지역사회에서 헌7학병의 제대로 된 평가가 진행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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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앞두고 헌7학병들이 23일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 동지회 사무실에 모여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헌7학병으로 참전한 김지환(90), 차영락(89), 김영진(87), 문백(88), 허원(88) 어르신. 김영준(82·오른쪽) 헌병전우회 부산회장도 이날 자리를 함께했다. 김종진 기자 kjj1761@kookje.co.kr |
23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에 있는 헌7학병 동지회 사무실에서 만난 ‘역전의 용사’들은 앳된 소년에서 이제 아흔을 넘긴 노인이 됐다. 헌7학병은 육군헌병학교 7기 하사관을 뜻한다. 부산과 경남지역 14개 학교 재학생 1661명이 1950년 8월 28일 헌7학병으로 입대했다. 이들은 6·25전쟁 당시 나라를 지키기 위해 펜 대신 총을 들고 전장에 나가 싸워야 했다.
부산 헌7학병 동지회의 고문인 문백(88) 어르신은 전쟁 발발 이후인 1950년 8월 부산 동래중학교 6학년(현재 고3) 재학 시절 소집영장을 받았다. 문 고문은 “평안북도 운산까지 진격해 생사를 넘나들었다”면서 “헌7학병들은 포로수용소 등에 전면 배치됐고, 전국의 전투 현장에서 전·후방 수습이 일선 임무였다”고 회상했다.
흥남철수작전, 한국은행 금괴 이송, 전쟁포로 수송 및 관리 등에 투입되기도 했다. 헌7학병들은 국군이 압록강과 혜산진 등까지 진격하는 데 높은 공을 세운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처럼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업적을 남겼지만, 전투 경험의 부족으로 큰 희생을 당하며 헌7학병 동기 수백 명이 전사했다.
전쟁 발발 70주년 앞두고 헌7학병들은 역사적 재평가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냈다. 허원(88) 어르신은 “헌7학병은 한국 육군사뿐 아니라 국방사에서도 빛나고 있다”며 “헌7학병들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헌7학병을 제대로 평가 해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진(87) 어르신은 “요즘 젊은 친구들은 6·25전쟁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인상을 찌푸린다”며 “나라가 있어야 자신도 있는 법인데 호국정신을 잃어가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현재 헌7학병 생존자는 200여 명에 불과하다.
1970년 결성된 헌7학병 동지회는 먼저 떠난 전우를 잊지 않기 위해 회원의 성금을 십시일반 모아 부산진구 초읍동 어린이대공원에 ‘헌7학병 1661명 6·25 참전기념비’를 2000년 건립했다. 이곳에는 1661명 전우 이름이 새겨져 있다. 참전기념비는 2003년 5월 30일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로 지정됐다.
헌7학병 동지회는 오는 26일 오전 11시 참전기념비 앞에서 옛 전우와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부산보훈청과 부산진구는 2016년 참전기념비 주변의 길이 944m(어린이대공원 내 수원지 제방~초읍동 숲체험학습센터)를 ‘헌7학병 추모길’로 지정한 바 있다. 김미희 기자 maha@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