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공원 길을 한 바퀴 돌았다면 꼭 권하고 싶은 명소가 있다. 완사시장에서 금성마을을 바라보며 들어서면 금성교 왼쪽의 야트막한 동산에 연강정(練江亭·사진)이 있다. 조선 중기 남명학파의 거유(巨儒) 연강재(練江齋) 문후(文後·1574~1644) 선생이 만년을 보내며 후학을 지도하던 곳이다. 삼우당(三憂堂) 문익점(文益漸) 선생의 후손으로 산청군 단성면에서 태어나 진주시 수곡면의 각재 하항, 거창의 모계 문위 선생께 글을 배웠고, 한강 정구선생이나 송정 하수일 선생께도 스승의 예를 올렸다. 모두 당대에 학행을 떨친 남명 선생의 제자다. 연강재는 남명 선생께 직접 글을 배우지는 못했지만, 남명의 제자에게 학문을 익혔으니 사숙인(私淑人)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구암 이정 선생과 함께 사천 유맥의 정신적 지주다.
선생은 과거공부보다는 오직 심성 수양을 위한 공부에 힘을 쏟았다. 처사로서의 삶을 살면서 불의에 굴하지 않은 남명선생을 닮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삼락(三樂·세 가지 즐거움)과 오신(五愼·다섯 가지 신중히 함)을 덕목으로 삼았는데 삼락은 ▷시와 독서로 수양하는 즐거움 ▷전원에서 한가로이 살아가는 즐거움 ▷물고기나 새들을 보며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즐거움이고, 오신은 ▷정치와 관청의 일을 말하지 말자 ▷다른 사람의 장단점을 이야기하지 말자 ▷부귀와 영달을 꾀하지 말자 ▷술수와 미신에 현혹되지 말자 ▷주색과 잡기에 빠지지 말자 등이다.
연강재는 연강정 벽에 ‘경이직내 의이방외(敬以直內 義以方外·경으로서 마음을 곧게 하고 의로서 드러냄을 바르게 한다)’를 써 붙이고 몸가짐을 삼갔다고 한다. 남명 선생의 학문 요체인 ‘敬義’를 철저히 따르고자 했고, 추상같은 자세는 임금께 단성소를 올린 남명과 쏙 빼닮은 데가 있었다.
연강재는 시류에 휘둘리기보다는 남명의 학문을 이어받아 성리학을 궁구하고, 삶 속에서 학문의 길을 찾고자 했다. 바쁜 시간을 쪼개서라도 연강정 어느 곳에서 선생의 기침 소리가 들리는지 귀 기울여 보자. 이완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