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is a cruel time! 연주시간 12분이나 되는 팝송인 딥 퍼플의 ‘April’ 제3악장 첫 가사다. 엘리어트(T.S. Eliot 1888~1965)가 쓴 장편시 황무지의 첫 구절인 “April is the cruellest month”에서 따온 문장같다. 왜 가장 화창한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 했을까? 최첨단 추상사고를 펼치는 불교철학이 확 감지된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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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 밑에 묻힌 不과 땅 위에 사는 生 |
시인은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생기없는 뿌리를 휘젓네.” 땅 밑에서 생기 없을 때가 좋았는데 땅 위에 라일락이라는 생명체로 태어났으니 이제 기억과 욕망이 뒤섞이며 고된 생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겠다. 우리네 인간의 삶도 땅 위에 태어났으니 누구든 번뇌와 고통을 뒤섞고 살아야 한다. 이런 연유로 불교에서 최고 상태는 불생이다. 날 생의 반대말은 죽을 사도 있지만 ,아닐 불도 있다. 글자 모양으로 따지자면 땅(_) 위로 나온 새싹(牛)이 날 생(生), 반대로 땅(―) 밑에 묻힌 뿌리(小)가 아닐 불(不)이다. 태어나지(生) 않는(不) 불생(不生)이면 당연히 사라지지(滅) 않는(不) 불멸(不滅)을 성취하게 된다. 태어나 죽더라도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 다시 태어나지 않는 불생은 궁극적 열반이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불생보다 영생(永生)을 꿈꾼다. 이승의 땅 위에선 장생하고 저승에선 천국이나 극락에서 영원히 살기를 원한다. 혹시 불생하는 게 영생이며, 영생하는 게 불생 아닐까? 434줄의 시 황무지는 이렇게 끝난다. “샨티 샨티 샨티!” 여기서 샨티는 영생의 평화일까? 불생의 평화일까? 박기철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