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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마을' 혁신을 찾아서 <15> 밀양 무연마을

마을 곳곳 서각의 예술혼 … 체류형 프로그램으로 부자마을 부푼 꿈

  • 박동필 기자 feel@kookje.co.kr
  •  |   입력 : 2020-07-26 19:37:27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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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교산 자락 서각공동체 마을
- 곡목 이봉진 작가 재능기부로
- 평범한 고령화 시골마을서
- 창조적 마을 선정 등 변신 중

- 매주 마을회관 모여 작품활동
- 축제 전시·문패 주문 제작도
- “서예·회화·조각·공예적인 맛
- 두루 느낄 수 있는 종합 예술”

- 탐방객 체험·구매·숙박 유도
- 체류형 명품 마을 조성 계획
- 전국 첫 서각작품 벽화 사업
- 주민 애환·경험담으로 채워

사각형의 목판 위에서 날카로운 칼날이 춤을 추자 학(鶴) 한마리가 살포시 눈을 뜬다. 서각도(書刻刀)를 손에 쥔 70대 촌로(村老)가 호흡을 가다듬는다. 화룡점정(畵龍點睛), 붓으로 푸른색 물감을 떨구자 그제서야 학은 힘차게 하늘로 날아오른다.
   
무연마을 주민이 마을회관에 마련된 서각 교실에서 서각도를 이용해 목판에 글자를 새기고 있다.
대중예술의 한 장르가 된 서각(書刻)의 세계다. 글씨나 그림을 나무 등 재료에 새기는 것에서 벗어나 글과 그림, 구상과 비구상의 경계를 넘나든다. 무념무상의 경지다.

경남 밀양시청을 벗어나 자동차로 동쪽으로 10여 분을 달리면 저 멀리 새하얀 구름옷을 입은 옥교산(해발 635m)이 수도승처럼 눈을 감고 있다. 산자락에 위치한 부북면 무연마을은 국내 유일의 서각마을로 불린다.

주민이 마을회관에서 작품을 연마하고 있다. 전시회도 몇 차례 열었고 작품에 반해 서각작품과 문패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도 심심찮게 들어온다. 특히 2년 전 서각을 인연으로 정부가 추진하는 ‘창조적 마을’ 만들기 사업에 뽑히면서 화려한 변신을 시도 중이다. 전국적인 관광 명소를 꿈꾸는 서각 공동체 마을 속으로 들어가 본다.

■예술향기 풍기는 자연 마을

   
곡목 이봉진(왼쪽) 선생과 이철행(오른쪽) 이장 등이 잘 다듬어진 무연 저수지 둘레길을 걷고 있다.
무연마을은 146가구 280명의 주민이 거주한다. 힘찬 기상을 가진 옥교산과 마을 앞으로 펼쳐진 푸른 들녘은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하다.

수려한 경관 덕분인지 10여 년전부터 귀농·귀촌인들이 찾아오면서 활력 넘치는 곳으로 바뀌고 있다. 변화의 주역은 서각 작가인 곡목 이봉진(57)선생이다. 밀양여중 수석 교사인 선생은 12년 전 이 곳에 귀촌했는데 그의 재능기부로 주민 사이에 서각붐이 일기 시작했다.

그 즈음 이 고장 출신으로 귀촌한 이철행(64) 마을 이장도 힘을 보탰다. 한옥 건축 전문가인 이 이장은 곡목 선생으로부터 사사받고 전문가 못지 않는 서각 솜씨를 뽐낸다.

이 이장은 “주민 20여 명이 틈나는 대로 마을회관에서 서각 작품활동에 매진하고 있다”며 “지난해 4월 밀양시 주최로 위양못에서 열린 축제에서는 주민이 땀흘려 만든 작품 40여 점이 전시되기도 했다”고 자랑했다. 탐방객들의 반응이 좋아 서각 작품으로 된 문패를 주문 받아 제작해 주기도 한다. 재료비만 받는데 개당 제작에 하루 종일 걸리는 수고로운 작업이다.

■한국적이며 추상적인 서각의 멋

거창이 고향인 곡목 선생은 서각을 이렇게 정의한다. 그는 “서각은 문자를 매개로 한 서예적인 맛, 색채에 의한 회화적인 맛, 칼의 움직임에 의한 조각적인 맛, 다듬고 가공하는 데서 오는 공예적인 맛을 두루 갖춘 종합 예술”이라고 말한다. 5000년 전의 중국 갑골문, 선사시대 울산 반구대 암각화, 고려시대 팔만대장경 등도 모두 서각 작품이란다.

예술이 그러하듯 서각작품이 탄생하기까지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는 “1년 동안 제재소에서 말린 소나무, 편백나무, 느티나무가 밑그림 판으로 사용된다”며 “하지만 요즘에는 평면이 아닌 입체형태로도 제작되는 등 현대적 아름다움을 갖추면서 대중 예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말한다. 나무판 외에 서각 전용 칼, 붓, 아크릴물감 등이 사용된다.

서각 입문자를 위한 ‘서각아 놀자’를 쓴 저자이기도 한 곡목 선생은 개인전만 9번을 한 베테랑 작가다.

현재 이 마을의 자랑거리는 이색적인 문패에 있다. 이 이장이 사비를 들여 모두 서각작품으로 만들어 제공한 것이다.

지금도 주민은 매주 일요일 2시간씩 함께 모여 작품활동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마을 평판이 좋아지면서 밀양시는 2017년 창조적마을만들기 사업으로 이 마을을 신청해 정부자금 5억 원을 받았으며, 마을 전체를 새롭게 꾸미는 작업을 마쳤다.

■전문 예술마을을 꿈꾸며

이 이장은 “우리 마을은 창조적 마을 만들기에 이어 앞으로 더 규모가 큰 2단계 사업에 도전할 예정”이라며 “탐방객들이우리 마을을 찾아 서각을 체험하거나 작품을 구매하도록 하는 한편 펜션을 만들어 숙박도 하고 식사도 할 수 있는 체류형 명품 마을로 만들 계획”이라며 구상을 들려줬다.

이를 위해 마을 공금 2억 원을 들여 펜션 등의 건물을 지을 부지를 마련해 놨으며 주차장 20면도 조성을 마쳤다. 마을 주변에 유명한 위양 저수지와 연극촌(밀양아리나), 퇴로 고가촌 등이 있어 연계 관광지로 손색이 없다는 것이다.

마을 벽화 단장사업도 벌이는데 그림이 아닌, 전국 처음으로 서각작품으로 조성된다. 곡목 선생은 “마을 주민의 애환이나 경험담을 시나 그림으로 표현하기로 했으며 연말까지 마칠 예정”이라고 전했다. 박일호 밀양시장은 “서각 예술마을을 꿈꾸는 무연마을은 국제적 수준의 문예 창작지로 발돋움 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곳”이라며 “‘우리 것’인 서각 체험을 위해 많은 탐방객이 마을을 찾아 올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박동필 기자 feel@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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