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산재는 기업범죄다 <중> 외줄 타는 노동자

기일이 된 한가위…참사 예견된 현장에 노동자만 출근했다

푼돈에 기업책임 무마되니…‘구명줄 둬라’는 법규도 추락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안전 책임자도 없는 명절연휴
- 일터 불려나온 하청 노동자들
- 위태로운 작업 중 사망·중상
- ‘불의의 사고’가 아닌 인재

- 곤돌라 안전난간 한쪽만 두거나
- 끊어져 있는 로프 선 방치하는 등
- 안전 관리·감독 소홀히한 사업주
- 법원 질책했지만 결국 낮은 형량
- 수칙 어긴 노동자 과실 들기도

민족 최대 명절에도 누군가는 일한다. 품삯 몇 푼 모아서 떼돈 만들겠다고 욕심부리는 게 아니다. 고용주가 “일하라”고 시키면 노동자는 가족을 뒤로한 채 집을 나서야 한다. 신분이 불안정한 하청·재하청 노동자일수록 고용주의 요구를 뿌리치기 어렵다. ‘다단계 고용 구조’ 맨 아래에 있는 노동자는 남들 다 쉬는 명절에도 제 몸을 부려야 한다. “쉬겠다”며 ‘정당한 권리’를 내세웠다가는 ‘부당한 해고’를 걱정할 수밖에 없다.
   
국제신문이 분석한 2017년~올해 5월 산업재해(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 판결문(부산지역 법원 확정판결 81건)에도 비슷한 사례가 더러 있다. A(당시 40) 씨도 그랬다. 2017년 10월 8일. A 씨는 부산에서 경북의 한 건물 신축 공사장까지 일하러 갔다. 재해 역시 명절이라고 쉬지 않았다. A 씨는 건물 3층 높이(10m)에서 떨어져 고관절을 다쳤다. 금속 창호 유리 설치업체 노동자인 A 씨와 동료 B(당시 47) 씨는 건물 창틀에 하나당 52㎏짜리 유리 4개를 끼우라는 지시를 받았다. 회사가 한 하청 건설사로부터 다시 하도급받은 작업이었다.

A, B 씨는 곤돌라(건물 옥상이나 중간층에 로프를 걸어 외벽이나 창의 보수 등에 사용하는 간이 비계)를 타고 건물 외벽을 올랐다. 10m 상공에서 이뤄진 불안한 노동이었다. 두 하청 노동자는 곤돌라가 흔들리지 않도록 외벽에 고리를 걸었다. 그런데 이 고리가 풀리면서 곤돌라와 건물 사이에 간격이 생겼다. 동시에 곤돌라는 한쪽이 아래로 기울면서 크게 휘청거렸다. 중심을 잃어버린 두 노동자는 그대로 지상으로 추락했다.

A 씨는 전치 13주의 중상을 입었다. 그가 응급 치료를 받을 때 동료 B 씨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B 씨는 중증 뇌 손상으로 숨졌다. 이들에게 비극이 들이닥친 날은 추석 연휴였다.

당시 공사장의 안전시설은 매우 부실했다. 현장에 두 노동자의 안전을 책임질 관리자는 아예 없었다. 안전관리 책임자인 회사 현장소장은 추석 연휴라는 이유로 출근하지 않았다. 두 하청 노동자에게 닥친 재해는 결코 ‘불의의 사고’가 아니었던 셈이다.

산업안전보건기준상 곤돌라 같은 탑승형 기구는 운반구에 사람을 태워선 안 된다. 내부에는 안전대나 구명줄을 설치해야 한다. 높이 2m 이상에서의 작업을 지시할 때 사업주는 노동자에게 반드시 안전대를 지급하고 착용하게끔 해야 한다.

■기일이 돼버린 한가위

현장은 ‘활자’와 달랐다. 두 노동자가 재해를 당한 곤돌라에는 안전대를 걸 설비가 없었다. 안전난간은 양방향 중 한쪽에만 있었다. 특히 A, B 씨는 애초 사업주에게서 안전대 자체를 지급받지 못했다. 여기에다 현장소장마저 없었으니, 비극은 어찌 보면 예고돼 있었다. 재판부는 “심지어 피고인(현장소장)은 안전·보건관리 책임자임에도 추석 연휴라는 이유로 공사 현장에 부재했다”며 기업의 안전불감증을 질책했다.

그러나 법정에 선 기업과 책임자들은 중형을 선고받지 않았다. ‘자백’ ‘반성’ ‘합의’ 등이 이유였다. 선고된 형량은 하청 건설사 벌금 400만 원, 재하청 회사 벌금 600만 원, 하청 현장소장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재하청 현장소장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이었다.

■서푼짜리 청년 목숨

생때같던 청년이 하루아침에 숨져도 돈 몇 푼이면 법적 책임이 면제된다. 2018년 4월 24일 배관공 C(당시 29) 씨는 부산의 한 선박 부품 제조공장에서 배관 용접을 하고 있었다. 회사가 하도급 계약을 했기에 ‘남의 공장’에서 일했다. 어느 정도 작업이 진행된 후 C 씨는 용접 상태를 확인하려고 배관 안으로 들어갔다. 밀폐된 공간에서 일하려면 반드시 산소·유해가스 농도를 측정해야 하지만, 이를 감독할 관리자는 없었다.

C 씨는 배관 속에서 숨이 막혀 죽었다. 아르곤 가스가 원인이었다. 수많은 불법이 확인됐다. 작업장에는 안전 공간이 확보되지 않았다. 가스가 새는 산소절단기가 사용된 사실도 드러났다. 작업에 쓰인 와이어로프 중에는 소선(로프 한 가닥에 든 작은 선)이 10% 이상 끊어진 것도 발견됐다. 현장은 ‘불안의 도가니’였다.

재판부는 “이 같은 불충분한 안전 조치가 결합돼 언제든지 중대한 재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꾸짖었다. 그러나 형벌은 국민 법 감정과는 차이가 컸다. 원청 회사는 벌금 700만 원, 하청 회사는 벌금 500만 원, 하청 대표이사와 원청 전직 공장장은 벌금 500만 원, 원청 현직 공장장은 벌금 4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관리’되지 않는 안전

산재 대부분은 법을 지키지 않아서 발생한다. 관련 법·지침은 안전관리 책임자가 지도·감독해야 할 다양한 상황과 행동, 의무를 설명한다. 노동자가 안전수칙을 어겼다면, 이를 관리하지 않은 책임자의 잘못이 크다. 그러나 죽어서 말 못 하는 ‘피해자의 과실’은 산재 사범을 ‘선처’하는 주요 근거가 된다.

특수화물 운송업체 사장 D 씨는 2016년 8월 6일 노동자 E(당시 40), F(당시 35) 씨에게 탱크로리에 든 황산(농도 98%)을 다른 탱크로리로 옮기라고 지시했다. 두 노동자는 탱크로리 간 호스를 연결했다. 그런데 황산을 밀어내는 펌프의 압력을 호스가 이겨내지 못해 황산이 사방으로 분출됐다. 둘은 전신 화상을 입었다. E 씨는 1주일 뒤 숨졌다.

사업주는 농도 20% 이상인 황산을 다룰 때 방호 조치를 하고, 노동자가 보호복·보호 장갑·장화 등을 착용하도록 해야 한다. 사장인 D 씨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재판부가 내린 형벌은 벌금 300만 원에 그쳤다. 판결문에는 ‘피해자들이 보호장비를 착용하지 않았다’고 짧게 기록됐다.

[노동자 사망] 이미지 크게 보기 click

권혁범 임동우 신심범 기자 mets@kookje.co.kr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오늘이슈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에 엔비디아 전용 생산라인 선다(종합)
  2. 2전국 언론인 청와대 앞 집결…“국제신문 대주주 엄벌” 촉구
  3. 3부산 재정자립도 1위 강서구, 생활임금 도입 나홀로 거부
  4. 4[도청도설] if, 손아섭
  5. 5되돌아와 수로 출구 앞에서 맴도는 부캉이
  6. 6공공 건설현장인데…추락 안전망 없고 감독 태만 부지기수
  7. 7북극항로 개척자 “유빙·극한환경서 새 희망 봤다”
  8. 8[포토에세이] 가을의 꽃 코스모스
  9. 9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23일
  10. 10가덕 공사비 증액 ‘강제’ 아닌 ‘권고’…법개정 정부 초안 논란
  1. 1가덕 공사비 증액 ‘강제’ 아닌 ‘권고’…법개정 정부 초안 논란
  2. 2北 “국경선 확성기 외 새 대응수단 대기” 연일 대남 협박(종합)
  3. 3최길수 특별감찰관 청문보고서 채택
  4. 4공소청 첫 국감 ‘李 공소 취소’ 공방…檢 총장 대행 “검토·지시 한 바 없어”
  5. 5금융위원장 "산은 부산 이전 하지 않는 것으로 정리" 파장
  6. 6더 밀릴 수 없다…지지율 위기에 정면돌파 택한 당청
  7. 7김용범·김현지 국감 증인채택 무산
  8. 8이 대통령 "중수청 지휘감독 포기하는건 탄핵사유" 野 "국무회의 참석하면 밀실지휘 없어지나"
  9. 9[뭐라노]4년에 한 번 올릴 기회…기초의회 의정비 인상 붐
  10. 10김여정 "국경선 새 대응수단 임무대기…확성기도 수일 내 가동"
  1. 1부산에 엔비디아 전용 생산라인 선다(종합)
  2. 2북극항로 개척자 “유빙·극한환경서 새 희망 봤다”
  3. 3로그인 없이 서버장악 가능…전 세계 ‘PHP’ 보안 비상
  4. 4부산시대 연 HMM, 올해만 6조원 투자
  5. 5서낙동강 수변입지에 4Bay 구조…실속 갖춘 59㎡ 단일평형 차별화
  6. 6부산 온 인도 구자라트주 대표단, 지역기업과 조선·금융 협력 모색
  7. 7[한 손 뉴스] 낙상·실종 막는 ‘스마트신발’…부산TP, 노약자 지원 확대
  8. 8부산건설사·대기업, 상생협력 머리 맞댄다
  9. 9흑백요리사 셰프, 국내산 수산물 해외 홍보 나섰다
  10. 10한은 기준금리 3% 동결…긴축 유지, 속도조절 속 내달 다시 인상 가능성(종합)
  1. 1전국 언론인 청와대 앞 집결…“국제신문 대주주 엄벌” 촉구
  2. 2부산 재정자립도 1위 강서구, 생활임금 도입 나홀로 거부
  3. 3되돌아와 수로 출구 앞에서 맴도는 부캉이
  4. 4공공 건설현장인데…추락 안전망 없고 감독 태만 부지기수
  5. 5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23일
  6. 6취임하자마자…도시철 파업 막기 숙제
  7. 7구조하다 놓친 익수자 숨진 채 발견
  8. 8특검팀, 마산합포구선관위 등 투표자수 허위 입력 6곳 추가 확인
  9. 9부산 다문화 고교생 5년새 2배…정작 한국어학급 ‘0’
  10. 10“거제 양대 조선소와 상생 협의…남부내륙철도에 행정력 집중”
  1. 1종합 6위 부산, 고른 활약에도 아쉬움
  2. 2만년 꼴찌 삼성 선두 ‘파란’…前 챔프 KCC 최하위 ‘수모’
  3. 3쇼트트랙 전설 최민정의 마지막 질주
  4. 4‘높이’ 키운 BNK썸, 2년 전 영광 재현 노린다
  5. 5호랑이 발톱 세운 김도영…돌아온 사자 포효 최형우
  6. 6축구협회장 선거, 12월 18일 추진
  7. 7요트 하지민, 레이저급 정상…전국체전 16연패 역사 쓰다
  8. 8부산시설공단 여자핸드볼팀 전국체전 2년 연속 금메달
  9. 9마무리 캠프 코앞인데…롯데 감독·단장 인선 언제쯤
  10. 10유럽 강호 맞서는 김시우·임성재
우리은행
난치병 환우에 새 생명을
57년 평생 심한 말더듬에 고통…소통 연결고리 이어주길
민선9기 지역일꾼 만나다
“거제 양대 조선소와 상생 협의…남부내륙철도에 행정력 집중”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