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1년 첫 활동 후 매년 이어와
- 광주민주화운동 때도 다녀와
60년간 매년 여름 농어촌 봉사활동에 매진해온 대학생 동아리가 있어 관심을 끈다. 동아리 활동이 취업 스펙을 쌓는 수단으로 변질된 지 오래지만, 이 동아리 소속 대학생들은 코로나19 탓에 인력 수급에 시름깊은 농가에서 묵묵히 일손을 보태며 구슬땀을 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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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대 봉사동아리 ‘여울회’ 소속 학생들이 지난 5일 경북 의성군 한 농가에서 고추를 수확하는 농촌활동을 벌이고 있다. 여울회 제공 |
6일 부산대는 봉사동아리 ‘여울회’가 지난 3일부터 경북 의성군 한 농가에서 농촌지역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오는 9일까지 6박 7일 일정이며, 동아리 회원 30여 명이 참여해 고추 등 농작물 수확을 비롯한 농가 일손돕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이들은 코로나19로 여름 농활에 대한 고심이 깊었지만, 봉사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어 방역수칙을 지키며 활동하기로 했다. 감염병 우려로 대부분의 대학이 농활을 취소했어도 부산대 여울회만은 올해도 명맥을 유지했다.
1959년 11월 만들어진 이 동아리의 여름 농활은 1961년 처음 시작된 이래 한 번도 쉬지 않았다. 여울회 15기이자 지금은 모교 교수로 여울회 지도를 맡은 남기곤(전자공학과) 교수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 대학가에 휴교령이 내려졌을 때도 대학본부 허가를 받아 통영 사량도에서 9박 10일 봉사활동을 벌일 정도로 농활 역사는 깊고 넓다”고 회상했다. 1960년대 대학생의 봉사활동 형태는 오늘날 모습과 사뭇 달랐다고 남 교수는 설명했다. 이 시기 대학생은 지식인으로 인정받는 사회풍토가 강했고, 대학생 스스로 의식적인 활동에 참여한다는 자부심이 높았다. 여울회라는 이름에도 사명감이 깃들었다. ‘여울’은 하천에서 물의 흐름이 급격하게 빨라지는 구간이다. 모든 구성원은 언젠가 몸담은 학과와 동아리를 떠나지만, 머무르는 시간 만큼은 물이 빠르게 몰아치듯 열정적으로 활동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여울회는 매년 신입회원을 선발할 때 일정 비율 의·약학 관련학과 전공 학생을 포함했다. 여울회는 방문지 주민을 대상으로 진료 및 시술 봉사를 진행했다. 1975년 경남 통영 두미도에서 이들 도움을 받아 딸을 출산한 부모는 아이에게 ‘여울’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고 한다. 방학을 맞은 아동의 교양·교과 학습을 돕는 것은 물론, ‘산아제한’이 권장되던 시절 위생 및 피임을 교육하는 역할도 수행했다.
남 교수는 “당시 여울회 활동은 단순히 일손 돕기에 머무르지 않았다. 무의촌(의료기관이 없는 농어촌), 특히 지금보다 내륙을 오가기 훨씬 힘들었던 섬 지역에서는 봉사단 방문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다. 이런 활동이 인정받았기에 1980년, 엄혹했던 당시에도 봉사활동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1950년대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봉사 하나로 명맥을 잇는 대학 동아리는 전국에서도 드물다. 여울회는 요즘도 가입 경쟁률이 높은 동아리 중 하나다. 실제 올해 1학기 전체가 등교하지 않는 ‘온라인 캠퍼스’로 운영됐는데도 여울회 신입회원 25명을 모집하는 데 60여 명이 몰렸다. 여울회장을 맡고 있는 김영은(60기·대기환경과 17학번) 씨는 “긴 세월 만큼 봉사활동 시스템의 체계가 잡혀있는 데다 졸업한 선배들이 든든한 우군이 돼주고, 멘토로 나서주는 것 또한 여울회 활동의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김민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