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강점기 때 건설한 군항도시
- 1912년 지은 건물 상당수 보존
- 이중섭 등 예술인 모인 ‘흑백다방’
- 이승만과 장제스 회동한 중국집
- 전국 최초로 세운 이순신 동상도
- 국가기록원 지정 ‘기록사랑마을’
- 중원로터리 따라가는 코스 인기
진해는 일제 강점기 건설된 군항도시다. 이곳에는 1912년부터 군 병력을 따라 일본인들이 대거 한반도로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일본인들이 거주하는 시가지가 형성됐다.
이런 이유로 진해 구도심인 군항마을에는 일제 강점기 때 지은 근대식 건축물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세개의 로터리 주변으로 근대식 관공서와 다양한 상업 건물들이 들어섰다. 일부는 현재까지 남아 아픈 생채기를 그대로 보듬은 채 100년 전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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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2년 지어진 경남 창원시 진해구의 진해우체국은 국내 우체국 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현관문 쪽의 러시아풍 원형 아치를 비롯해 독특한 건축 양식과 인테리어가 방문객들의 눈길을 끈다. |
■일제 강점기 아픔 서린 군항마을
경남 창원시 진해구 중앙동에 자리잡은 군항마을은 근대 역사의 중심지로 일제 강점기의 아픔이 서려 있는 곳이다. 1912년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은 진해 중앙동에 계획도시를 건설했다.
이 과정에서 중평한들(현재 중원광장)을 중심으로 모여 살던 11개 마을 390가구 2000여 명이 터전을 잃고 지금의 경화동으로 강제 이주되고, 원도심은 일본인들만을 위한 도시로 새롭게 만들어졌다.
일제는 진해시가지를 중원로터리 중심으로 8거리로 조성했다. 중원로터리, 북원로터리, 남원로터리 등 3곳의 광장을 설치한 뒤 북원로터리는 군부대 중심거리로, 남원로터리는 어시장 등 바다로 이어지는 거리로, 중원로터리는 공공기관과 상점 등 핵심 시설 거리로 가꿨다.
진해에는 현재도 일제 강점기 계획도시의 건축물이 30% 이상 남아 있다고 한다. 원형을 온전하게 보존한 건물도 있고, 리모델링을 통해 변형되기도 했다. 뼈대를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일본식 가옥인지 조차 분간하지 못할 정도인 건물도 있다.
■근대식 건축물의 보고
진해우체국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우체국이다. 1981년 사적 제291호로 지정된 진해 원도심에서 가장 높은 등급의 문화재다. 1912년 지어진 진해우체국 현관문 쪽에는 러시아풍의 원형 아치가 보존되어 있으며, 찬장 환기통 수공 문양도 아름답다. 특히 채광창을 들창으로 만들고 도르래를 활용해 여닫을 수 있게 해 방문객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손예진·조승우·조인성 주연의 영화 ‘클래식’ 촬영지로 고교시절 아름다운 연애를 상상하는 청춘들에게는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등록문화재 제192호로 지정된 진해역은 일본 해군 기지와 진해항의 연결을 통해 만주를 비롯한 대륙으로 군용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1921년 착공해 1926년 완공됐다. 광복 후에는 1961년 해병대 전용선이, 1966년 진해화학 전용선 등이 각각 개통되면서 진해 발전의 주축을 담당했으나, 2012년 11월 새마을호 운행이 중단된 뒤 2015년 2월부터는 폐역이 됐다.
창원시 근대건조물 제4호인 ‘흑백다방’은 문화 예술의 성지였던 곳이다. 1912년에 지어진 목조 건물로 1960~70년대 진해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이자 이중섭, 유치환, 김춘수, 서정주 등 걸출한 예술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 현재도 공연과 전시를 겸하는 지역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1912년 지어진 6, 7개의 지붕을 공유하고 있는 장옥 형태의 적산 가옥을 그대로 활용해 만든 ‘군항마을 역사관’은 우리나라 근대사를 대변하는 350여 점의 기록물을 보존·전시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일반 상점에서 광복 이후 노인정으로 사용되다 2012년 11월 역사관으로 개관했다.
■기록사랑마을로 재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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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은 물론 전국 예술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던 흑백다방 전경. |
군항마을은 2014년 전국 7번째로 국가기록원으로부터 기록사랑마을로 지정됐다. 2012년 군항마을역사관 운영과 더불어 기록사랑마을 지정, 군항마을 역사길 조성 등으로 이곳은 아픈 역사를 동반한 채 중원로터리를 중심으로 근대로 떠나는 여행명소로 새로운 변화를 시작했다.
중원로터리 방향으로 걷다 보면 전형적인 일본식 건물인 붉은 지붕의 3층짜리 육각집이 보인다. 당시 상류층이 드나드는 고급 요정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한식당으로 변모했다.
맞은쪽에 자리한 원해루는 1991년 상영된 영화 ‘장군의 아들 2’ 촬영지로 유명하다. 일제강점기 사진관 겸 시계점으로 쓰이다 광복 후 중국 음식점으로 바뀌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과 장제스 전 대만 총통이 회담을 마치고 식사를 했다는 얘기가 전해오고 있다.
남원로터리에는 광복 이듬해 백범 김구 선생이 진해를 방문해 남긴 친필시비(창원시 근대건조물 제2호)가 있다. 이 인근에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일제강점기 고급주택과 서민주택이 공존한다.
대표적인 고급주택은 당시 진해해군통제부 병원장이 살던 기와집을 곰탕집으로 바꿔 영업 중인 선학곰탕(국가지정 등록문화재 제193호)이다.
또 북원로터리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창원시 근대건조물 제1호)은 전국 최초로 건립된 충무공 동상으로 1952년 세워졌다. 6·25전쟁 당시 국난 극복을 위해 국민이 십시일반 모은 기금으로 제작됐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진해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제황산 정상에는 일본의 러일전쟁 전승기념탑이 있었다. 하지만 해방 후 헐고 해군 군함을 상징하는 진해탑(창원시 근대건조물 제3호)을 세웠다. 이 같은 근대문화를 오롯이 간직한 군항마을을 탐방하는 데는 2시간가량 걸린다.
이종호 기자 jhle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