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성산 지리산은 그 험준함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세상 어느 산보다 자애롭다. 겨울 혹한, 여름 혹서, 그 양극의 가혹함에도 뭇 생명을 품어 지키고 험준함으로 사람의 발길을 조심스럽게 해 세월의 영기(靈氣)까지 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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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의 정기가 가득한 동의보감의 고장 산청군의 약재들. 왼쪽부터 작약 초석잠 하수오. |
산청은 ‘동의보감의 도시’를 자처한다. 소설 ‘동의보감’을 기반으로 조선시대 명의 ‘유의태’와 의서(醫書) ‘동의보감’ 저자 허준을 스토리텔링한 성공 사례이기도 하다. 그런데 또 다른 주인공이 있다. 지리산이다. 산청을 품고 수많은 약초를 지켜오고 길러내는 터전 말이다.
제주도가 아직 탐라국으로 있을 때인 신라시대에는 나라의 최고봉이었고 지금도 백두산, 한라산에 이어 세 번째 고봉(高峰)인 지리산 천왕봉은 산청군이 주인이다. 높아서 성스럽고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봉우리마다, 계곡마다 흔적만 남은 폐사지에도 수많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숨어있다. 그저 오래된 역사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을 생각하는’ 이야기들이 이처럼 많은지 취재를 하며 알게 되었다. 아마 젊은 시절 맥락 없이 지리산을 드나들었던 것도, 여전히 사람들이 지리산을 잊지 않는 것도 그 희미한 이야기들이 끌어들이는 마력 때문인지 모른다.
단속사 입구의 깎아지른 바위벽에 새겨진 ‘광제암문’ 글씨를 직접 대면하는 것은 자료 속의 것과 천양지차였다. 전율이 일었다. 하필 그곳이 ‘단속(斷俗)’의 입구라니! 그곳에 그 같은 사람을 품는 뜻의 글이라니! 최치원을 염두에 둔 취재였기에 가능한 감동이었다. 반드시 영상으로 알려 많은 이들이 전율의 감동을 느끼게 하리라 마음먹었다.
비대면을 권장하는 아이러니가 더욱 사람을 그립게 하는 시대이다. 그 그리움은 이 혼란이 끝나도 지속되고 더욱 커질 것이다. 이미 너무 오래 공감의 감동을 잊고 살았기 때문이다. 지리산이 품고 있는 ‘사람을 생각하는’ 수많은 이야기의 스토리텔링은 그 그리움의 발길을 끌어당기기에 넉넉하다. 자치단체의 효용만이 아니라 마음의 상처를 품은 모든 이를 위한 관심과 애정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