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여러 지식인이 최치원에 대한 소설 집필을 권했다. 한국인이 쓴 신라인 최치원 이야기를 읽고, 영화나 드라마로 보고 싶다며. 귀국해 막상 쓰려니 쉽지 않았고 핑계는 자료 부족이었으나, 스토리텔링 취재를 하며 주 무대로 경주를 염두에 둔 것이 실책이었음을 깨달았다. 그의 살아있는 정신의 흔적은 오히려 함양·하동·합천·창원(마산)·사천·산청·양산 등지에 더 생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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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림 인근에 위치한 최치원 역사공원. 좌측이 최치원 역사관, 정면 뒤가 최치원기념관이다. 2018년 10월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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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은 몇 안 되는 그의 지방관 임지 중 하나이며 애민(愛民)의 유적 상림(대관림)으로 뚜렷하다. 또한 거의 알려지지 않은 그의 가족사 중에서 효와 관련해 전해지는 이야기와 함께 상연대라는 근거도 현존한다.
왜 최치원이 천년 넘게 중국인의 마음에 우리보다 더 깊이 각인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그 마음은 수천 년 한·중 역사에 얽힌 어떤 것도 뛰어넘는 공감과 공유의 코드인 것은 분명하다.
인류 역사에서 영원한 우방이거나 적이었던 국가 관계는 없다. 그럼에도 쌓인 은원(恩怨)을 넘어 모두에게 추앙받는 위대한 현자들은 있어왔다. 최치원이 한·중 간에 그런 경우이다. 다만 우리가 깊이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지금은 여러 가지로 어려운 때다. 그래도 준비해야 한다. 함양에는 2018년에야 ‘최치원기념관’이 생겼다. 아쉬운 것은 채워진 내용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유는 있다. 남아있는 과거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 부분은 결코 중국 장쑤성 양저우(楊州)의 ‘최치원기념관’(2007년 준공)을 따라 잡을 수 없다. 그럼에도 중국인들은 최치원의 고국에서 그를 만나고 싶어 한다.
이야기나 기림은 반드시 과거의 진열에 의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남은 물질이 없다면 그의 정신을 기려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채우면 되는 일이고, 어쩌면 중국인은 그것을 기대하는 지도 모른다.
대관림이라는 번듯한 현장에서 그의 애민사상으로 나라와 국민의 관계를 말하고, 인간의 근본이며 동아시아 철학의 뿌리인 유학의 효로 함께 공감하는 이야기를 만든다면 한·중 민간우호의 기지가 되리라 장담한다. 깨어있는 자치단체장의 의식에 민관이 열린 마음으로 호응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