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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격 높이고 차이 줄이자 <1-3> 마음의 틈새- 섬마을 노인과 청년

같은 영도구민인데 … 노인 "살기 좋다" 청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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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도, 섬 특성상 자연경관 우수
- 피란·조선업 호황기 정착 영향
- 60대 이상 만족도 1위 부산 유일

- "원도심 인프라 열악 미래 불투명"
- 10대 13위·20대 11위와 대조적

- 인구급감·고령화율 1위인 영도
- 방치 땐 도시 소멸 초래할 수도

“익숙하고 편하니까 계속 살아. 여기만 한 곳이 없어.” 한낮 볕이 제법 뜨겁던 지난 15일, 부산 영도구 봉래산 자락 청학동 고지대. ‘해돋이 마을’로 불리는 곳이다. 김미숙(88·가명) 할머니는 텃밭에서 부지런히 호미를 놀렸다. 집 담벼락에 붙은 ‘코딱지’만 한 텃밭이지만, 영도에서의 수십 년 삶을 함께한 공간이다.
지난 20일 드론으로 촬영한 부산 영도구 전경. 바다로 둘러싸인 섬, 영도는 부산항대교(왼쪽부터) 부산대교 영도대교 남항대교 4개 다리로 육지와 연결돼 있다. 영도 가운데 나지막이 솟은 산이 봉래산이다. 김종진 기자 kjj1761@kookje.co.kr
경북 의성이 고향인 김 할머니는 스물셋 꽃다운 나이에 영도로 시집왔다. 영도가 사람으로 붐비던 때였다. 섬마을 영도의 가슴은 넓었다. 난리(6·25전쟁, 제주 4·3사건)를 피해온 서민은 물론 제주에서 이주해온 해녀, 원양어업과 조선업 호황기에 일자리를 찾아 모여든 전국의 가장을 넉넉히 품었다. 그때의 청장년은 지금 60~80대 고령이 됐지만, 자부심만은 여전하다. 청춘을 쏟아부어 성장시킨 영도가 이젠 아늑한 정취와 뛰어난 풍광, 이웃의 정으로 노년의 안락함을 선물해주니 별다른 불편이 없다.

경남 고성에서 살던 박선숙(76·가명) 할머니는 30여 년 전 남편의 직장(조선업)을 따라 청학동으로 이사했다. 봉래산과 마을이 맞닿은 곳에 최근 아스팔트 길이 났다. 매일 이 길을 세 바퀴씩 도는 게 운동 겸 소일거리다. 박 할머니는 “영도를 떠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산 아래 펼쳐진 바다 풍경, 곳곳에 힘들지 않게 걸을 수 있는 산책로, 무엇보다 서로 의지해온 이웃이 곁에 있어서다. 그는 “처음 영도에 들어올 땐 정말 활기가 넘쳤다”며 그 시절을 자랑스러워했다.

20년 전 전라도에서 옮겨온 이수화(74·가명) 할머니, 스물셋에 인근 서구 서대신동에서 넘어와 60년째 사는 최옥순(83·가명) 할머니도 만났다. 둘 다 영도에서의 삶에 만족해했다. 이유는 비슷했다. “도심보다 공기가 좋아. 바로 앞에 시장(청학시장)도 있고, 자갈치 같은 큰 시장도 버스 타면 금방이고.”

취재팀은 청학동을 벗어나 남항·봉래시장 쪽으로 이동했다. 마실 나온 김옥순(83·가명) 할머니는 평상에 앉아 또래 친구와 이야기꽃을 피웠다. 경남 통영 바닷가에서 생활하던 김 할머니는 40여 년 전 영도로 왔다. “당시엔 영도가 먹고살기 훨씬 좋은 곳이었거든. 아저씨(남편)가 시계방을 했어. 손님이 많았지.” 홀로 남은 김 할머니는 “영도가 좋다. 시장에서 놀기도 하고, 고향처럼 바다도 가까이 있고, 타지에서 온 이웃도 주변에 많다. 집에서 나가면 병원(봉래동 해동병원) 건너에 운동기구가 있어 운동도 자주 한다”고 말했다.
※노인은 붉은색, 유소년·청년은 파란색 계열이 짙을수록 비중이 크다. 2000~2020년 영도구 동별 노인 인구는 크게 늘고, 유소년·청년 인구는 매우 줄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뿌리 깊은 자긍심

흔히 영도구는 부산 원도심 쇠퇴의 ‘대표 격’으로 여겨진다. 고지대 열악한 주거환경, 무너지는 경제, 급감하는 인구 탓에 점점 살기 어려워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이는 어느 정도 맞고, 어느 정도 틀리다. 섬마을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60대 이상 영도구민이 느끼는 자부심·만족도는 매우 높다.

2015, 2017, 2019년 부산시 사회조사 마이크로 데이터 10만3854건을 토대로 만든 ‘마음의 틈새’ 지표(국제신문 지난 1일 자 3면 등 보도)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기도 하다. 10대부터 50대까지 모든 연령층에서 상위 1위(순위가 높을수록 심리적 격차가 작음)는 판에 박은 듯 해운대구다. 유일하게 60대 이상에서만 1위가 영도구로 바뀐다. 60대 이상 영도구민은 구·군별 전체 연령대(16개 구·군 × 6단계 연령대 = 1~96위)에서도 해운대구 10대에 이어 상위 2위다. 그만큼 남들보다 부산시민으로서의 자부심, 영도구민으로서의 소속감이 크다는 의미다. 삶과 일은 물론 주거·보행·생활환경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외부의 시선으로는 얼핏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결과를 두고 이런 해석이 나온다. 말 그대로 노년층이 살기에 영도만큼 좋은 곳이 없다는 거다. 섬이라는 특성상 자연환경이 우수한 점이 우선 꼽힌다. 적당한 높이의 산(봉래·중리·태종산)과 어디에서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해안 산책로가 장점이다. 60대 이상 대다수가 영도에 살기 좋은 이유로 “공기가 좋고, 경치도 뛰어나다”고 말하는 것과 맥락이 같다. 여기에다 청장년 시절 부산 전체 부흥을 이끌었던 영도에서, 그 시절 이웃과 함께 편안한 노년을 보낸다는 자긍심도 강하다.

또 외부와 교류가 적은 노년층은 섬마을 영도가 도심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부산(첫 발생일은 지난 2월 21일)에서 가장 늦은 지난 7월 24일에 나왔다. 최근 부산 도심을 대거 습격하는 멧돼지도 아직 영도에선 한 번도 출몰하지 않았다. 특히 노년층에게 영도는 따뜻한 곳이다. 6·25전쟁 전후와 조선업 호황기 제주 경남을 비롯해 전국에서 피란 또는 이주해온 외지인이 대거 영도에 정착했다.

물론 다소 부정적인 해석도 있다. “이미 떠날 사람은 다 떠나고, 현재 열악한 주거환경에 익숙해져 불편을 불편으로 느끼지 않는 사람들 위주로 남았기 때문”이라는 거다.

■추억과 희망의 간격

분명한 건 섬마을 영도 안에서 드러나는 세대 간 격차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인프라를 이용하는 삶이지만, 노인과 달리 청년의 불만은 크다. 영도구 10대와 20대의 ‘마음의 틈새’ 지표는 각 연령대(1~16위)에서 13위, 11위에 그친다. 영도구민으로서의 소속감은 훨씬 더 추락한다. 영도구 10대의 소속감은 같은 연령대에서 15위, 전체 연령대(1~96위)에서 91위까지 떨어진다. 60대 이상 노년층과 확연한 차이다. “영도구에 노인이 추억할 자산은 많지만, 청년이 희망을 품을 기회가 적다”는 분석이 적용될 수 있다.

갈수록 노년층이 모이고 청년층이 떠나는 현상은 부산 16개 구·군 중 영도구에서 가장 뚜렷하다. 2000년부터 올해 7월까지 영도구의 만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은 7.1%에서 27.0%로 19.9%포인트 올랐다. 영도구는 고령화사회(만 65세 이상 비율 7.0% 이상), 고령사회(〃 14.0% 이상)를 넘어 초고령사회(〃 20.0% 이상)에 접어든 지 한참 지났다. 고령화율도 부산 1위다.

반대로 같은 기간 영도구의 만 0~34세 유소년·청년 인구 비율은 51.5%에서 26.3%로 25.2%포인트나 줄었다. 역시 16개 구·군 중 감소세가 가장 가파르다. 영도구의 노인, 유소년·청년 인구 증감이 서로 반대쪽 극단을 향해 맹렬히 달려가는 모양새다.

자연스레 영도구는 부산에서 소멸 위험이 제일 크다. 만 65세 이상 인구수를 만 20~39세 여성 인구수로 나눈 소멸지수를 구해보면, 올해 7월 현재 영도구는 11개 동 모두 소멸 위험 단계(0.5 이하)에 진입했다. 영도구 전체 소멸지수도 0.344로 16개 구·군 가운데 꼴찌다. 수치가 낮을수록 소멸 위험이 커진다. 영도구 노인과 청년 간 심리적 격차가 만들어낸 결과다. 20년 전인 2000년 영도구는 11개 동 모두 소멸지수가 1.5 이상(1.653~3.017)으로, “소멸 위험이 매우 낮다”는 1등급 평가를 받았던 곳이다.

부산시의회 ‘격차 낮추는 모임’ 박민성(더불어민주당·동래구1) 의원은 “60대 이상 영도구민의 자부심·만족도가 높은 건 사실이다. 노인 인구 비중이 아주 큰 영도구에서 부정적으로 볼 일은 아니다”면서도 “그렇다고 뻔히 보이는 격차를 극복하지 않고 방치하면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다. 지금의 청장년이 노인이 되는 가까운 미래에 영도를 어떤 도시로 만들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권혁범 신심범 기자 pearl@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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