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년 된 주택에 사는 은경이네
- 함께 쓰는 옆집화장실 불 나가
- 동생은 무서워 간이 변기 이용
- 보일러 없어 스토브로 겨울 나
# 폭우로 집 내려앉은 은수네
- 100여 개 계단 올라야 하는 집
- 바닥 기울어지고 벽에 금 쭉쭉
- 1평 남짓 부엌엔 싱크대도 없어
# 재개발구역 옥탑방 사는 나연이
- 잠잘 땐 몸에 벌레 기어가 깜짝
- 비 새는 탓 벽지엔 온통 곰팡이
- 여관서 지낼 때보단 마음 편해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의·식·주’ 중에서도 주거는 저소득 가정에 가장 가혹하다. 어느 정도 수입이 있거나 지원을 받아 당장 먹고 살 수는 있더라도 목돈이 필요한 집수리나 이사는 저소득 가정에 ‘그림의 떡’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2020년인 지금도, ‘아직도 이런 집이 있다고?’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는 곳에 사는 아이가 적지 않다. 주거빈곤에 내몰린 세 아이의 사례를 통해 부산지역 주거빈곤 아동 실태를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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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구 초량동 산복도로에 있는 정현(가명·여·14)이네 집은 40년이 넘은 낡디낡은 주택이다. 정현이네 부엌에서 쥐덫을 놓기만 하면 매번 쥐가 잡힌다. 사진은 정현이 동생(9)이 씽크대에서 컵을 씻는 모습. 김성효 전문기자 kimsh@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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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화장실을 쓰는 은경이네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은경(가명·여)이는 할머니와 아빠, 한 살 어린 남동생과 함께 산다. 서구 남부민동에 있는 은경이네 집은 할머니와 함께 나이를 먹은, 70년이 다 된 낡디낡은 주택이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나오는 손바닥만 한 마당이 은경이네 세탁실이자 샤워실이다.
사춘기로 접어든 은경이는 샤워할 때면 늘 불안하다. 은경이는 “대문만 열면 바깥이니까 내가 씻을 때마다 할머니가 대문을 잠근다”고 말했다. 그나마 더운 여름엔 사정이 낫다. 가스레인지에 물을 데워 써야 하는 데다 천장에 슬레이트를 얹긴 했어도 바깥과 다를 바가 없다 보니 겨울이 되면 씻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그래도 씻는 공간은 집 안에 있지만 화장실에 가려면 아예 대문 밖으로 나가야 한다. 집 안에 화장실이 없어 담장이 맞붙은 옆집 화장실을 같이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 화장실도 ‘푸세식’인 데다 얼마 전 폭우로 전등까지 고장 났다. 초등학교 5학년이지만 지적 장애가 있어 조금만 어두워도 무척 무서워하는 동생 민수(가명)는 화장실에 아예 가지 못해 간이 변기에 용변을 본다. 용변을 치우는 건 할머니의 몫이다.
“냄새가 많이 나고 벌레도 많아서 화장실이 불편해요. 밤에 화장실 갈 때는 솔직히 좀 무섭거든요. 불이 없어서 휴대폰 켜고 가야 해서요. 그래도 ‘나는 지금 집 안에 있다’ 이 생각을 계속하면서 가면 조금 덜 무서워요.”
겨울이 되면 무시무시한 추위가 은경이네 집에 찾아온다. 보일러가 없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연탄보일러가 터져 방 한구석이 내려앉았지만 은경이 아빠가 벌어오는 수입으로는 보일러 교체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 방마다 전기장판을 켜고, 차가운 공기는 가스스토브로 데우지만 온기가 퍼지기까지는 한참이 걸린다. 은경이는 “예전에 스토브 때문에 이불에 불이 붙어서 다 태워 먹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할머니와 생활하는 큰방은 사정이 낫다. 작은방은 온통 곰팡이다. 밖으로 난 창문도 없는 이곳에 20분 정도 앉아 있으니 목이 꽉 잠겨왔다. 민수는 “아빠가 없을 땐 우리가 이 방에서 잔다”며 “누나랑 잘 때가 제일 편하다”고 말했다. “친구를 집에 초대하고 싶었는데 할머니가 절대 안 된대요. 그래서 한 번도 친구를 데려온 적이 없어요. 소원이요? 내 방이 생기는 거요. 침대랑 인형 놓을 수 있는 선반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 화장실도 방에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폭우에 떠내려간 은수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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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수(가명·7)네 주방 모습. 천장이 온통 곰팡이로 뒤덮혔다. |
부산 전역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던 지난달 9일. 동구 산자락에 있는 은수(가명·7)네 집에선 아침부터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두 집 건너 있는 집이 폭우에 무너져내리면서 인근 16가구에 긴급대피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은수네 가족도 급한 짐만 싸 허겁지겁 근처 숙박업소로 피신했다. 일주일 만에 다시 돌아온 집에는 폭우가 할퀴고 간 흔적이 그대로 남았다. 안방 바닥은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집 전체가 뒤틀려 창문이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았다. 온 벽에는 금이 쭉쭉 갔다. 하지만 은수네 가족은 다음 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숙박 비용을 더는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은수네 가족이 10평도 안 되는,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10만 원인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온 것은 지난해 말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좋지는 않아도 큰길가에 있는 전셋집에서 엄마, 아빠, 할머니, 삼촌과 함께 살았다. 하지만 은수 삼촌이 큰 빚을 지면서 보증금을 통째로 날리고 쫓기듯 산복도로로 올라왔다. 1평 남짓한, 온통 곰팡이가 핀 부엌에는 싱크대조차 없다. 100개가 넘는 좁은 계단에다가 가파른 오르막도 한참을 올라와야 하는 탓에 싱크대를 설치해주겠다는 업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도배와 장판 까는 일도 은수 아빠가 직접 했다.
“아이고 말도 마소, 모기가 얼마나 많은지. 지난겨울에는 집 안이 워낙 추우니까 애 입술에 뭐 발라줘도 돌아서면 또 터져있더라고.” 은수 할머니는 연신 옆에 앉은 손자 얼굴을 비볐다.
그래도 은수는 겨울엔 엄마, 아빠와 작은방에서 함께 잘 수 있지만 더운 여름엔 그나마 좀 큰 옆방에서 할머니, 삼촌과 함께 자야 한다. 은수는 “사실 엄마, 아빠랑 자고 싶은데…, 더워서 안 된대요”라며 멋쩍게 웃었다. 뭐가 가장 불편하냐는 질문에 은수는 “밖에 있는 화장실 가기가 너무 힘들어요. 쪼그리고 앉아야 하거든요. 밤에 가고 싶으면… 그냥 참아요”라고 말했다. 베트남에서 온 은수 엄마는 “아이가 좋은 집에 살면 좋겠다고 매일 말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너무 가슴이 아프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은수 아빠는 “은수 할머니와 내가 벌지만 아직도 빚이 많아서 대부분 빚 탕감에 쓰인다. 요즘엔 코로나19로 회사도 어려워져서 월급이 밀렸다. 겨우 먹고는 살지만 이사 갈 순 없다”고 털어놓았다.
■“옥탑방이 제일 좋아요”
나연(가명·여·13)이네 집은 부산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동구 산복도로변 옥탑방이다. 전망은 여느 집도 부럽지 않지만 지난해부터 골칫거리가 생겼다. 천장에서 정체 모를 벌레가 비처럼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 한쪽 구석에서만 기어 나오던 벌레는 시간이 지나자 구멍이란 구멍에서 무더기로 나오기 시작했다. “진짜 심할 때는요, 자다가 깨면 몸에 벌레가 기어 다녔어요.” 나연이 아빠는 “단열재와 벽 사이가 뜨면서 벌레가 들어간 것 같다는데, 농약을 치고 구멍을 실리콘으로 다 막았더니 좀 낫다”고 했다.
비가 새는 것도 예사다. 비만 왔다 하면 집 안쪽 벽을 타고 물이 흘러내려서 벽지를 아무리 새로 발라도 또 곰팡이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얼마 전 내린 폭우 때는 누전으로 작은 방 전기가 완전히 끊겼다. 부엌을 제외하고는 큰방이 세 명이 생활하는 유일한 공간이어서 나연이가 집에서 온라인수업을 할 때면 온 가족이 ‘동작 그만’이 된다. 나연이 엄마는 “작은 방을 아이 방으로 꾸며주려고 했는데, 전기가 나간 데다가 벌레가 너무 많이 나와서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나마 지금 집도 언제 쫓겨날지 알 수 없다. 재개발 구역 내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연이는 “지금까지 여섯 번을 이사했는데 여기가 여태까지 살았던 집 중 제일 좋다”고 했다. 나연이 아빠는 20여 년 전 사기를 당하고 큰 빚을 진 후 여관을 전전하다 가족과의 불화로 집을 나와 생활하던 나연이 엄마를 만났다. 생활이 불안정하다 보니 자주 이사를 해야 했고, 그중 대부분은 여관이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나연이에게 살고 싶은 집을 그려달라고 하자 큰 창문이 난 이층집을 그렸다. “마당이 있고, 현관문 앞에는 등도 달려 있으면 좋겠어요. 이왕이면 방도 많으면 좋겠죠?”
하송이 기자 songya@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