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8m 조형물은 벌써 사라져
- ‘1%미술’법 제정 전 작품으로
- 호텔 측 원상회복 의무 없어
- 작가들 “동의도 없이 이럴 수가”
부산 해운대 한 특급호텔이 증개축되는 과정에서 설치돼 있던 조형물 등 예술작품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작가도 모르는 사이에 작품이 종적을 감추거나 제작 의도와는 무관하게 이전될 처지여서 작가들이 분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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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일 부산 해운대 신세계조선호텔 그랜드조선부산에 있는 ‘Point-산 바람 바다’ 조형물. 1988년 설치된 이 조형물은 25일부터 이전돼 작가와 호텔이 갈등을 빚는다. 왼쪽 사진은 이곳에 설치됐다가 사라진 조형물인 ‘수직 형상’. 전민철 기자·CICA 미술관 제공 |
24일 신세계조선호텔 그랜드조선부산 운영사와 이 건물 임대인 측에 따르면 한국현대조각회장을 지낸 임동락 전 동아대 교수의 조형물 ‘Point-산 바람 바다’를 25일부터 이전한다. 이 작품은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정부가 전국의 고급관광호텔에 조형물 등 예술작품 조성을 권고하면서 설치됐다. 당시 하얏트호텔이었던 이 건물이 이후 노보텔을 거쳐 최근 그랜드조선으로 증개축되기까지 이 작품은 같은 자리에 있었다. 그러다 증개축 과정에서 새 호텔의 이미지 등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호텔 측이 지난 6월 작품의 이전을 추진하면서 작가와 마찰을 빚기 시작했다. 문화예술진흥법은 1995년 7월 이후 건립되는 연면적 1만㎡ 이상 건물을 신·증축할때 건축 비용의 1% 이하 범위에서 조형물 등 예술작품을 설치하도록 규정(일명 1% 미술법)하고, 작품을 폐기하거나 이전하려면 지자체(부산시) 심의를 거치도록 했다. 하지만 임 교수 작품은 이 법이 만들어지기 전 설치됐다. 호텔 측이 부산시를 경유해 문화체육관광부에 질의한 결과 “(해당 작품을) 철거 훼손 용도변경 분실하더라도 관련법이 적용되지 않아 원상회복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았고, 이에 이전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임 교수는 “작품이 설치될 당시 작품의 위치, 공공성 문제 등을 놓고 시의 건축심의를 거쳤다. 심의를 거쳐 지정된 장소인 만큼 이전할 때도 마찬가지 절차를 밟는 것이 마땅하다”며 “30년 같은 자리를 지킨 예술작품을 민간기업 이윤 논리에만 맞게 이전한다는 것은 지역 문화예술 발전 차원에서도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이곳에서 실종된 작품도 있다. 김종호 CICA 미술관장(전 동아대·상명대 교수)의 ‘수직 형상’으로, 1980년대 하얏트호텔 운영 때 이곳에 설치된 높이 8m의 조형물이다. 부산에서는 처음으로 철을 소재로 만든 옥외 조각품이었다. 현재 경기도 김포시에서 미술관을 운영하는 김 관장은 부산의 동료 예술가로부터 작품이 사라진 사실을 전해 들었다. 이후 김 관장은 작품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찾지 못했다. 호텔 측은 “2018년까지 해당 작품이 제자리에 있었던 것을 확인했으며 현재 소재를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관장은 “문화예술진흥법 시행 이전 유명호텔에 설치됐던 예술작품들이 고철로 취급될 가능성이 높다. 작가가 호텔에 설치한 조형물의 행방을 몰라 찾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 법 시행 이전에 설치된 조형물의 경우에도 철거를 해야 한다면 최소한 작가에게 설명을 구하고 논의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민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