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졸 76% 지역서 첫 직장 잡아
- 어떻게든 고향 남으려 하지만
- 일자리 질과 인프라 부족에 낙담
- 결국 떼밀려 서울로 가는 2030
- 변두리 고시원 떠도는 유랑 거듭
- 영화 ‘청년 졸업 에세이’의 감독
- “그들 잘못 아니라는 것 공감해야”
부산 청년은 ‘살고 싶다’. 태어나고 자라고 배운 부산에서, 가족·친구와 함께. 그냥 남고 싶은 게 아니다. 꿈꾸며 일하며 즐기며 연대하며, 그렇게 부산에서 살고 싶다. 삶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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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3일 오후 부산 연제구 ‘오늘, 그림 한 장’에서 청년들이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청년 졸업 에세이’를 관람하고 있다. 영화 상영은 ‘2020 부산청년주간’ 자율 세션의 하나로 마련됐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온라인으로만 진행되는 청년주간 행사는 ‘오늘, 그림 한 장’을 비롯한 지역 내 12개 청년 공간에서도 10명 이내 소규모 인원이 모여 참여할 수 있다. 서정빈 기자 |
여기까진 ‘이상(理想)’이다. 생각의 범위 안에서 가장 완벽한 상태. 그러나 이상에는 실현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두 종류가 있다. 많은 청년에게 부산에서 사는 일은 실현 불가능한, 말 그대로 ‘절대 이상’이다. 시키는 대로 공부하면, 배운 대로 실천하면, 교과서에 나온 대로 따라 하면 되는 일인 줄 알았다. 현실은 달랐다. 다름을 넘어 딴판이었다.
#떠나고싶지않았다. 수영구 망미동에 살다가 2011년 서울 송파구 고시원으로 옮겼다. 지난해 청년을 ‘졸업(만 34세까지)’한 1985년생 신명섭(35) 씨 얘기다. 10년간 서울 송파·강남·관악·노원·마포구를 돌아 지금은 강서구에 산다. 고시원 생활을 끝내고 관악구에 보증금 300만 원, 월세 47만 원짜리 원룸을 구하면서 신 씨의 신분이 바꼈다. ‘부산시민’에서 ‘서울시민’으로.
집값이 싼 곳을 찾아다녔다. 머문 곳마다 서울 토박이가 아닌 타향살이 청년으로 붐볐다. “괜히 ‘집 근처에서 학교·직장 다녀라’ 이런 말이 있는 게 아니었어요.” 서울 사람과 타향 사람의 경쟁은 출발부터 달랐다.
부산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일자리가 정말 없었다. 요즘도 서울에 사는 친구들을 만나면 서로 똑같은 얘기를 한다. “부산에서 살면 좋겠다. 지금 버는 돈을 부산에서 벌 수만 있다면 서울에서 살 필요가 없다. 가족이 있고, 바다가 있는 부산이 좋다.” 하지만 전제가 필요하다. 신 씨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여건, 선택의 폭. 이런 부분에서 부산보다 서울이 훨씬 낫다. 솔직히 비교가 안 된다”고 했다.
떠나고 싶지 않은 청년의 마음은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부산연구원 서옥순 일자리연구센터장은 “부산지역 대학 졸업자의 75.8%가 첫 직장을 부산에서 잡는다. 물론 좋은 일자리라고 할 수는 없다. 임시·일용직이나 단기 일자리일 수도 있다”며 “하지만 이는 부산 청년이 밖으로 나가기보다 어떻게 해서든 지역에서 살고 싶어 한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하지만떠나야할것같다. 계속되는 얘기는 지난 23일 오후 ‘2020 부산청년주간’에서 온라인으로 상영된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청년 졸업 에세이’가 전하는 부산 청년의 목소리다. 영화엔 ‘예비 졸업생’도 나온다. 지난해 9월부터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부산대 재학생 최성아(여·24) 씨다. “부산에서 일하고 싶어서, 부산에 있는 회사에만 지원했어요. 막상 필기·면접 시험을 보면 원하는 일이 아니더군요. 본사에서 마케팅이나 경영 관리 일을 하고 싶은데, 부산에 본사가 있는 대기업은 하나도 없잖아요. 올해 상반기부터는 부산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졌어요.”
부경대 재학생 성윤재(24) 씨도 “부산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아무래도 (일자리) 공급이 적기 때문에 윗지방(수도권)을 선호한다”며 “친구들도 대부분 수도권에 가려고 한다. 비싼 주거 비용을 상쇄할 만큼 수도권으로 갈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고 털어놨다.
부산대에 다니는 박소현(여·26) 씨는 평소 친구들끼리 주고받는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가야 한다’는 말이 싫었다. 그래서 이 말을 반박하는 시나리오도 썼다. ‘왜 부산을 무시하노, 여기가 서울이가’. 그런 박 씨도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수도권을 본다. “부산은 좀 답답해요. 문화·예술 쪽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나서 더 답답해졌어요. 이민도 생각해봤고, 서울은 덜 답답할 거라는 생각도 들고. 가장 큰 이유는 성공하고 싶어서.”
#그래도부산을사랑한다. 청년 졸업생 조현주(여·35) 코이지(KOIZI) 대표는 경남 경기 제주를 돌다가 고향 부산으로 돌아왔다. “고향이죠. 마음뿐 아니라 집안 3대가 부산 출신이기도 하고. 부모님도 경남 김해에서 15년 이상 사셨지만, 다시 부산으로 오셨어요. 저 역시 그래요. 경기·제주가 더 재밌고 살기 좋은 환경일 수는 있지만, 부산이 고향이니까요.” 서울로 떠나 있는 신명섭 씨도 마음에서 부산을 놓은 적은 없다. “서울의 우수한 인프라를 10년간 누릴 만큼 누렸어요. 서울도 살다 보면 거기서 거기일 뿐이에요. 교통은 지옥 같고, 사람은 너무 많고. 부산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부산에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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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3일 영화 ‘청년 졸업 에세이’ 상영 이후 온라인으로 관객과의 대화(GV)가 진행되고 있다. 부산청년주간 페이스북 |
#누군가는공감해주길바랐다. 랜선을 타고 흐르던 영화는 멈췄다. 온라인 ‘관객과의 만남(GV)’이 이어졌다. 신동욱(30) 감독은 “영화를 찍으면서 내내 듣고 싶은 말이 있었다. 누구라도 한 명은 청년에게 ‘미안하다’고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청년의 잘못이 아니다’며 공감해주기를 바랐다”며 “마침 청년이 아닌 인터뷰이 중 한 명이 ‘미안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 장면을 엔딩으로 썼다”고 돌아봤다.
청년이 ‘남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기’ 위한 방법도 제시됐다. 경남에서 최연소 ‘통장’으로 일하는 박준용(23) 씨가 패널로 참여했다. 그는 “흔히 통장이라고 하면 새마을 모자에 민방위 재킷을 입고, 목에 흰색 수건을 두른 할아버지를 떠올린다”며 “그러나 청년이 통장이 되면 지역과 행정을 더 잘 알 수 있고, 애착을 느낄 수 있다. 지역 기업을 찾아가고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청년 스스로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에 주인공이 되려고 노력하자”고 제안했다. 권혁범 신심범 기자